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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까롱 Dec 14. 2023

지브리 영화 리뷰 해석 :: 그대들은 어떻게 살 것인가

지브리 맛 성장 백일몽

[해당 포스팅은 일부 스포일러를 포함합니다.]

블로그를 시작하고 처음으로 썼던 글이 영화에 대한 하찮은 평론 글이었습니다. 당시 영화를 하루도 빠지지 않고 챙겨봤는데 그때로부터 10년이 더 지났네요. 영화관으로 발걸음이 잘 떼어지지 않는 요즈음, 어쩌다 미야자키 하야오 감독의 <그대들은 어떻게 살 것인가>를 관람하게 되었습니다.



'그대들은 어떻게 살 것인가' 추천 대상

1. 지브리 맛 작화를 감상하고 싶으신 분

2. 미야자키 하야오 감독의 세계에 빠져들고 싶으신 분

3. 나의 관계를 되돌아보고 싶으신 분






그럼에도 불구하고 영화관까지 나를 이끌었던 것은 마음에 들었던 메인 포스터 작화, 담백한 느낌의 영화 제목, 그리고 지브리의 신비주의 마케팅이었다. 미야자키 하야오 감독의 10년 만의 복귀작인 <그대들은 어떻게 살 것인가>는 제작에만 7년이 소모되었다. 또한 온전히 영화의 재미와 관객들의 입소문에 의존하는 신비주의 마케팅 전략을 펼쳤다. (최초 개봉일은 2023년 10월 25일이며, 지브리 역대 최고 제작비가 들었다)






영화의 시놉시스


화재로 어머니를 잃은 11살 소년 ‘마히토’는 아버지와 함께 어머니의 고향으로 간다.


어머니에 대한 그리움과 새로운 보금자리에 적응하느라 힘들어하던 ‘마히토’ 앞에 정체를 알 수 없는 왜가리 한 마리가 나타나고, 저택에서 일하는 일곱 할멈으로부터 왜가리가 살고 있는 탑에 대한 신비로운 이야기를 듣게 된다.


그러던 어느 날, ‘마히토’는 사라져버린 새엄마 ‘나츠코’를 찾기 위해 탑으로 들어가고,


왜가리가 안내하는 대로 이세계(異世界)의 문을 통과하는데…!



시놉시스에서 볼 수 있듯이, 영화는 판타지적 요소가 들어있다. 미야자키 하야오 감독은 소설 <그대들, 어떻게 살 것인가>의 제목과 주제만을 빌려온 것이며 실질적인 스토리는 본인이 구상하였다고 밝혔다. 하지만 극 중 스승의 역할인 큰 할아버지의 "네 손으로 다툼 없는 세상을 만들 수 있다"라고 말하는 대사에서, 원작 소설의 성장 과정에 담긴 사람과 사람을 연결하는 방식의 감동과 닮아있음을 알 수 있다.



또한 영화를 보면 알 수 있지만 왜가리, 잉꼬와 같이 새가 극 중에 자주 등장하는데 이는 미야자키의 인생 애니메이션 '왕과 새'의 영향을 받은 것을 보인다. 그리고 본인이 또 하나 감명받은 존 코널리의 판타지 *<잃어버린 것들의 책> 은,  오히려 <그대들> 원작보다 원안에 닮아있는 내용으로 볼 수 있다. 이처럼 <그대들은 어떻게 살 것인가>는 미야자키 하야오 감독이 살아온 시대상에 본인과 주변의 이야기를 녹여낸 작품이라고 할 수 있다.



*<잃어버린 것들의 책>은 2차 세계대전 영국을 배경으로, 전쟁 중에 어머니를 잃고 세상에 마음을 닫은 소년이 나무뿌리 사이에 난 구멍을 통해 이세계로 넘어가며 성장하는 모험에 관한 책으로, <그대들은 어떻게 살 것인가>의 내용과 많이 닮아있다.





마히토

마히토의 한자 이름 의미는 한자로 마(眞, 참 진) + 히토(人, 사람 인) 즉, 진실한 사람이라는 뜻이다.



극 중 마히토는 멀끔하고 침착한 성격으로 보인다. 말을 하는 왜가리의 존재를 만났을 때도, 이세계로 떨어지고도 감동의 동요 없이 냉정함을 유지하는 것을 볼 수 있다. 이는 <읽어버린 것들의 책>의 내용에서 백일몽을 담은 것처럼, 극 중에서도 의식의 흐름으로 마치 꿈을 꾸듯이 흘러가는 장면으로 보인다. 마치 대낮에 꿈을 꾸듯이, 주어진 상황에 크게 동요하지 않는 것이 작품의 흐름인 것이다. 때문에 상황의 복선을 발견하기 어렵고, 이음새를 찾을 수 없기에 맨 정신으로 작품을 보는 관객들은 이러한 흐름이 난해하다고 느껴질 수 있겠다.






"참과 거짓은 홀로 존재할 수 없어. 모든 것이 그렇듯이"



학교에서 적응하지 못한 마히토는 일부러 자신의 이마에 상처를 내고 이를 '악의'라고 표현한다. 그리고 아버지가 사랑하는 그녀, 새엄마에게 이러한 사실에 대한 거짓을 고한다. 후반에 큰 할아버지에게 말하는 대사 “이 상처는 제가 만들었어요. 제 악의의 증거에요. 저는 그 돌을 만질 수 없어요. 제 세계로 돌아가겠습니다.”에서도 거짓 뒤에 진실한 마히토의 모습을 볼 수 있다. 이는 참과 거짓이 공존하며, 그 둘은 홀로 존재할 수 없는 성질임을 본연히 알린다. 극 중에서 거짓을 상징하는 왜가리와 참을 상징하는 마히토는 티격태격 하지만 결국 서로를 도우며 모험하고, 이는 참과 거짓의 대립과 화해를 의미하는 것으로 볼 수 있겠다.





어머니

미야자키 감독은 어릴 적 어머니의 모습을 강하고 무서운 어머니 상으로 기억한다. 이는 <미야자키 하야오의 원점 - 엄마와 아이의 이야기>의 구절에서 확인할 수 있으며, 미야 감독의 작품에는 마더 콤플렉스, *강인한 여성상과 같은 자신의 로망이 깔려있다. 하지만 여장부였던 미야 감독의 어머니는 척추에 결핵균이 퍼져서 어린 미아를 업어줄 수도 없게 되었는데, 이러한 배경은 극 중에서 강인해 보이면서도 침대에 몸 져 누워있는 새엄마 "나츠코"에게 반영되었다고 볼 수 있다. 또한 미야 감독의 아버지는 군수공장으로 비행기를 만들었으며 때문에 부유한 환경에서 자랐고, 이 또한 작품에서 마히토의 배경과 유사하며 결국 <그대들은 어떻게 살 것인가>는 미야 감독 본인의 이야기를 작품에 녹여낸 것으로도 볼 수 있다.



*이러한 작품 중 대표적인 강인한 여성상은 <천공의 섬 라퓨타>의 어머니 '도라'와 같다.






나츠코는 입덧과 함께 몸져누웠고, 마히토가 자신에게 보인 악의와 소홀한 관계를 자신의 탓으로 돌리며 이세계로 사라진다. 탑으로 떠나는 마히토에게 할머니가 전한 대사에서도 나츠코가 사라지길 원하는 마히토의 소망을 확인할 수 있다. 마히토는 금기라 불리는 산실에 입장하게 되고, 이 모습을 본 나츠코는 마히토에게 이전과 달리 화를 내며 상처 주는 말들을 뱉는다. 이것은 나츠코가 삶과 죽음이 교차하는 이세계로부터 마히토를 지키기 위해 뱉은 말들이며, 마히토는 산실에서의 사건 이후로 나츠코를 어머니라 부를 수 있게 된다.



이세계에서 만나 불을 다루며 마히토를 조력하는 소녀 '히미'는 나츠코의 언니로, 이세계에 살고 있는 마히토의 엄마이다. 병원에서 불로 인해 죽었지만, 이세계에서는 그러한 불을 자유자재로 다루는 히미의 모습은 건강한 어머니상에 대한 미야 감독의 염원으로 볼 수 있다. 



극 중에서 히미는 마히토에게 토스트에 잼을 듬뿍 발라서 먹이는데, 잼이 담긴 통에는 'TOMORROW'가 적혀있다. 이것은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의 후속작인 '거울 나라 앨리스'에 등장하는 '내일의 잼'으로, '어제의 잼'과 '내일의 잼'은 있지만 오늘의 잼이 없기 때문에 앨리스는 결국 잼을 먹지 못한다. 이처럼 '내일의 잼'은 먹을 수 없는 아주 귀한 잼을 상징한다. 극 중에서 그러한 내일의 잼을 토스트에 듬뿍 발라 주는 히미의 모습과 그것을 맛있게 먹는 마히토의 모습은 어머니와 자식 간의 사랑, 그리움으로 연결된다.





펠리컨과 와라와라




극 중에는 귀여운 캐릭터 '와라와라'가 등장하는데, 이들은 이세계에서 머물다가 성숙해지면 환생을 위해 하늘로 승천한다. 와라와라를 승천하도록 돕는 것은 이세계의 바다에서 만난 '키리코'이며 그녀는 마히토와 함께 이세계로 떠난 하녀 할머니로 연결된다. 그리고 승천하는 '와라와라'를 잡아먹는 '펠리컨'이 등장하는데, 여기서 삶과 죽음이 공존하는 이세계의 모습을 볼 수 있다. 극 중에서 히미가 와라와라의 승천을 도우고, 그중 불에 타서 죽기 직전의 펠리컨과 마히토가 대면하게 된다.



여기서 펠리컨은 "우리 일족은 와라와라를 먹기 위해 이 지옥에 끌려온 것이다."라고 말한다. 펠리컨들은 굶주림에 시달리며 살기 위해서 와라와라를 잡아먹는 것이고, 펠리컨들을 이세계로 불러온 것은 큰할아버지이다. 이것은 윗세계로 환생하는 인간의 수를 적절히 조절하려는 큰할아버지의 설계로 볼 수 있다. 그리고 히미가 잡아먹히는 와라와라를 도와주는 것은, 윗세계를 욕심과 탐욕이 그득한 세계로 생각하는 큰할아버지에 대한 저항으로 볼 수 있다.





잉꼬(사랑앵무)




잉꼬는 사랑앵무로 평화와 부부 사이를 상징한다. 하지만 극 중 잉꼬는 앵무새이지만 자유롭게 하늘을 거느리는 것이 아닌, 인간과 같은 생활을 하며 사람을 잡아먹는 폭력적이고 욕망적인 모습으로 지엽적인 존재로 나타난다. 작품의 시대적 배경인 태평양 전쟁을 고려하면, 이러한 앵무새들은 군대를 상징하며 잉꼬 대장은 군사독재의 우두머리를 의미하는 것으로 볼 수도 있다.



그리고 극 후반에 큰 할아버지가 유지하던 탑(이세계의 평화)이 잉꼬 대장의 이기심과 욕심으로 한순간에 무너지게 된다. 이것은 본인들의 세계를 스스로 파괴하는 것으로, 마치 전쟁 중 전범국 독재자가 자멸하는 모습으로 바라볼 수 있겠다.





그대들은 어떻게 살 것인가

이세계가 붕괴하기 시작하며 히미와 마히토는 큰할아버지의 정원에서 도망쳐 나오고, 나츠코도 산실을 빠져나온다. 그들은 현실 세계로 돌아가기 위한 문 앞에 서게 되는데, 여기서 히미는 마히토를 낳은 다른 현실 세계로 돌아가려고 한다. 그녀는 자신이 돌아가면 죽을 것을 알면서도, 마히토를 낳는 것은 기쁜 일이라고 말하며 본인의 현실 세계로 돌아간다. 현실 세계로 돌아간 마히토에게 왜가리가 이세계의 일을 기억하는지 묻는데, 마히토는 여전히 기억한다. 이것은 마히토가 큰할아버지를 만나고 가져온 둘 조각 때문이며, 왜가리는 마히토가 점차 이세계의 일을 잊을 것이라고 말하며 떠난다. 이처럼 덤덤히 잊힐 일로 이세계의 사건들을 마무리하는 것은, 작품이 시사하는 의미가 관객이 느끼기에 크게 대단한 것이라기보다 자연스러운 인간의 성장과정과 관계들을 담담하게 연결 지은 것으로 볼 수 있다. 



잉꼬 군단의 한 앵무새가 천국이라 말했던 큰할아버지의 정원에서 큰할아버지가 맡은 이세계의 조율자이자 계승자 역할을 거절하고 본인의 현실 세계로 돌아간 마히토. 마히토는 본인에게 악의가 있음을 솔직하게 받아들이고 자신의 세계에서 사람들과 관계를 맺으며 살아가기로 한다. 즉, 스스로 악의를 현실 세계를 살아가던 마히토는 이세계에서 만난 '히미', '왜가리', '키리코'와 같은 친구를  만들고 싶어 하는 소망이 생기게 된다. 마히토가 탑의 세계에서 최초로 마주했던 '황금문'에는 "나를 배우려는 자, 죽음에 이르게 된다."와 같은 글귀가 적혀 있었다. 펠리컨들에게 떠밀려서 죽음의 문으로 들어간 마히토는 그곳에서 마주한 경험들을 통해 성장하고, 본인의 삶을 살아가기 위한 생명력을 지닌 영혼이 되어 현실 세계로 돌아온다.






영화 <그대들은 어떻게 살 것인가>는 제목 그대로에 대한 메시지를 작품 곳곳에 녹여내고 있다. 어쩌면 미야 감독의 어릴 적 생각이 마히토에 투영되어서, 참되지만 악의를 보였던 모순적인 소년 마히토의 성장 모험을 그린 것으로 보인다. 이세계에서의 경험을 통해 변화된 과정은 감독과 주변인에 대한 오랜 소망이 깃들어져 있고, 이것은 지브리 세계관과 연결되어 작품으로 나타났다. 



미워하던 존재들을 더 이상 미워할 수 없게 되는 것, 불합리한 현실 속에서 악으로 보이던 존재들의 억압과 해방, 그리움과 사랑에 대한 관계의 연결, 그러한 관계에 대한 생각의 변화와 결정의 과정을 의미 있는 일장춘몽의 형태로 녹여냈다. <그대들은 어떻게 살 것인가>는 마치 한 소년이 현실로 오는 지브리 맛 성장 백일몽이다. 그리고 그는 현실에서의 관계들과 어울리며 지금을 살아가기로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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