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고 생각하면서도 최면에 관심을 갖는 사람들이 많다. 나 또한 그랬다.
심지어 나는, 최면을 배우고 이후에 공부해 가는 과정의 상당기간 동안에도 최면에 대해 미심쩍은 마음이 있었던 것이 사실이다. 실제로 최면이라는 도구를 쓰는 입장인 내가 그러한데, 최면에 대해 모르는 사람들의 입장에서는 오죽할까.
그러나, 내가 그랬듯 그러면서도 사람들이 최면이라는 단어에 끌리는 데에는 이유가 있다고 본다. 그것은 삶이 쉽지 않기 때문이다. 내 마음이 힘들고, 삶이 쉽지 않아서, 뭐라도 조금 이 힘듦과 어려움을 한 번에 팍! 하고 해결해줄 그런 대단한 힘이 없을까? 하고 생각해본 적이 한 번씩은 있을 것이다 다들.
그리고 놀랍게도, 최면은 마법은 아니지만 그 바람에 상당 부분 부응할 수 있다. "에~ 그거 사기 아니야?"라고 생각하는 분들은 앞으로 발행될 글들에 관심을 가져주시길 부탁드린다. 최면으로 어떻게 내담자의 문제를 치유할 수 있는지, 그 원리는 무엇인지, 최면에 대해 우리가 일찍이 알고 있는 선입견과, 실제 최면은 어떻게 다른지, 그리고 무엇보다, 최면상당에 관심 있는 클라이언트가 있다면 알고 가면 좋을 내용들에 대해서 이야기할 계획이니 말이다.
그럼으로써 보다 많은 사람이 최면이라는 기예의 효과를 누릴 수 있게 되고, 최면상담의 도움을 받고 싶어 하는 내담자분들이 좀 더 편안한 마음으로 최면에 접근할 수 있게 되었으면 좋겠다.
이 장에서는, 최면이 작동하는 원리 중 하나를 소개하려 한다. 그럼으로써 최면이 어떠한 초자연적인 현상이 아니라 현실적인 근거를 가진 심리치유 도구라는 사실을 간단하게 피력할 것이다. 그렇게 물꼬를 터보자.
1. 최면은 ‘재경험’이다.
실제로 존재했던 일들로부터 파생된 감정의 경우, 보통은 드러나 표현되기보다는 억눌리게 된다. 그 이유 중 하나는, 본인이 상대의 행동에 상처를 입은 사람 즉, 피해자인 경우, 가해자는 ‘상처를 입힘’에 대해 대부분 무책임하거나 심지어 자신이 그 사람에게 상처를 입혔다는 자각조차 없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또한 때로는 감정은 논리의 영역이 아니라, 누군가가 보기에는 별거 아닌 일이지만, 그 경험을 한 당사자에게는 매우 고통스럽고 상처가 되는 일일 수 있다. 그래서 가해자는 그럴 생각이 없었거나, 외부에서 봤을 때는 상처받을 만한 일이 아니더라도 상처받은 본인은 아파한다.
두 번째로, 그렇게 발생한 감정이 본인을 힘들게 하는 감정이라면, 대게는 그 감정을 스스로 ‘부정적인 감정’으로 규정하고 느끼지 않으려 한다. 즉, 회피한다. 그리고 자연스럽게 감정은 억압된다.
감정은 에너지다. 우리가 외부환경으로부터 자극을 받았을 때, 생명체인 이상 필연적으로 ‘반응’할 수밖에 없다. 이때 ‘반응’ 하기 위해서 ‘행동’이 일어난다. 맞서 싸우든 도망치든 아니면 모든 것을 포기하고 그저 그 자극이 나를 괴롭히도록 내버려 두든, 결국 싸우고 회피하고 버티는 행동을 하는 것이다.
그리고 모든 행동에는 에너지가 필요하다. 감정은 이렇게 행동을 일으키기 위한 생리적인 에너지로서 발생하는 것이기도 하다. 그런데 그런 에너지가, 특정 시점에 특정한 외부 자극에 대응하기 위해 나타났다. 그런데 그것이 본연의 목적을 다하지 못하고 억압된다. 그러면 어떻게 될까?
그 이후, 지속적으로 그 감정을 억압하기 위해 부차적인 에너지가 들어가게 된다.
그 감정이 고통스럽기에, 계속해서 외면하고 억압하려 하거나, 어떨 때는 특정한 ‘행동’을 반복함으로써 이 본래 표현되어야 하고 해소되어야 할 감정을 억압한다. 이때 감정을 마주하지 않고 회피하기 위해 반복되는 행동이 그 사람을 괴롭게 한다면, 그것은 ‘문제적 행동’으로써 그 사람 본인을 괴롭힐 것이다.
또한 감정에는, 특정 경험에 붙어, 특정 시점의 경험이 기억으로 저장되는 것을 돕는 힘이 있다. 그렇기에, 감정을 억압하는 것이 아니라, 감정과, 그 감정을 이루는 몸의 감각을 충분히 느끼면서 최면가의 안내를 받으면, 그 감정과 연결된(기억으로 저장하기 위해 붙어있는) 특정 시험의 경험으로 돌아갈 수 있다. 이를 최면에서는 리그레이션 즉, 연령역행이라고 한다.
그리고 그렇게 돌아간 과거의 시점에서, 당시에 충분히 느끼고 표현되었어야 했지만, 그렇게 하지 못했던 감정들, 생각들, 이런 것들을 최면가의 지지와 안내를 받아 마음껏 표현하게 된다. 여기서,
포인트는 역시나 ‘재경험’이다.
최면상태에서는 특정 대상 또는 상황에 대한 몰입도가 극적으로 증가한다. 그렇게 몰입도가 증가함과 더불어 최면가의 안내에 의해 내담자는 자신이 마음속에서 경험하고 있는 상황에 대해 디테일하게 인지하게 된다. 그럼으로써 그 상황에 대한 ‘현실감’은 더욱 증폭된다. 그렇게 현실감이 증폭된 상태에서는 비록 실제로 일어난 일이 아니더라도 마치 그 일을 실제로 겪고 있는 것과 같은 생리적인 반응들(감각과 감정)이 일어난다.
'그리고 이는 내담자가 이미 최면 상담을 받으러 오기 전에도 충분히 겪고 있던 현상이다.'
왜냐하면 내담자에게 상처를 준 과거의 사건은 현재 시점에서는 이미 ‘없는 것’ 임에도 불구하고, 내담자는 과거의 사건으로부터 발생한 굉장히 리얼한 감각(->감정) 정보에 의해 ‘현재에도 그 악몽을 재경험 하고 있었던 상태’였기 때문이다.
즉, 애초에 내담자를 고통스럽게 했던 문제 자체가, 이러한 자동적으로 발생한 굉장히 리얼한(감각과 감정이 동반되므로) 가상현실(현재에 존재하지 않는 과거사건)에 의해 발생한 문제였던 것이다. 즉, 일종의 자신을 괴롭히는 자기 최면이었던 것.
최면은 이 원리를 그대로 활용하여 내담자가 기존의 완결되지 않은, (그래서 끊임없이 완결을 바라며 ‘현재’ 감각과 감정으로 나타나 내담자를 괴롭히는) 사건들을 충분히 재경험 하게 한다.
(그런 의미에서 최면은 사실, 탈 최면, 탈 자기 세뇌 프로세스이기도 하다.)
그럼으로써 그때 당시에 표현되고 해소되었어야 할 감정들이 해소되도록 돕는다. 그렇게 감정이 충분히 해소되고 나면, 당연히 감정은 자신이 나타났어야 할 본연의 목적을 다 하고 해소되었기 때문에 더 이상, ‘현재’까지 따라와 내담자를 괴롭힐 수가 없다.
그럼으로써 ‘현재’의 내담자는 ‘과거’의 감정에 영향받지 않게 되고, 그 감정을 회피하기 위한 방어전략으로써 만들어낸 행동들을 반복할 필요가 없어지는 것이다.
그렇게 내담자는 자유로워질 수 있다.
모두가 안심하고 최면이라는 기예의 효과를 누릴 수 있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