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째 날 - 변하는 게 있을까?

2016년 3월 19일 / 26살 / 대학생

by 혀노

오늘은 금주 선언 15일째 되는 날이다. 그리고 그날 이후로 열한 번째 술에 취한 밤을 보냈다. 발밑에서 빈 술병이 닿았고 옆에선 친구가 코를 골고 자고 있었다. '하....... 또 마셨네.' 몸을 돌려 머리를 쥐어뜯었다. 그때 베개 위에 떨어져 있는 수많은 머리카락이 보였다. 순간, 자신에 대한 분노로 한심함에 소리를 질렀다. '아아!! 술 마시면 머리 빠지는 거 뻔히 알면서!' 지난 6개월 전부터 머리를 감을 때 머리카락이 조금씩 빠지기 시작하더니 점점 감당할 수 없을 만큼 빠지고 있었다. 덜컥 겁이나 이틀 전, 피부과에 가서 탈모약을 처방받았다.


“선생님. 아직 안 늦었죠?”

“뭐, 관리만 잘하면 괜찮지.”

“아 네.......”

“가족 중에 탈모 있는 사람 있나?”

“제 아버지가.......”

“어휴, 그럼 더 조심해야 해. 생활 습관도 개선해야 하고, 일단 약 한 달치 처방해줄게요.”


'미친놈아, 미친놈아. 그날 머리카락 지키려고 10만 원 써놓고 어젠 머리카락 뽑으려고 5만 원 썼네. 그럼 왜 병원 간 거야.' 바닥에 아무렇게나 널브러져 있는 담배를 입에 물었다.


“술은 자제하고, 아 특히 담배는 진짜 안 좋아.”

“헉 꼭 끊을게요.”


의사 선생님의 경고가 떠올랐지만. 몰라. 담배에 불을 붙였다.

혜x가 보고 싶다. 내가 조금만 참을 걸. 사귈 땐 원수 같더니 막상 헤어지고 나니 너무 괴롭다. 주위가 온통 그녀가 떠오르는 것 투성이다. 그 귀찮던 아침인사 카톡을 이제 보낼 필요가 없다는 사실에 눈물이 난다. 익숙한 것과의 이별은 언제나 적응이 안 된다. '그때 그랬다면. 그때 그러고 그랬다면. 또 그날 그러고 그랬다면.......' 더 생각하지 말자. 미칠 것 같다.

노트북을 켜고 학교 홈페이지에 들어갔다. 어? 근로장학생 발표 났네. <문자가 가지 않은 학생을 선발되지 않은 학생임.> '뭐지. 문자 안 왔는데.' 불안감이 엄습했다. 선발자 명단을 확인했는데 내 이름이 없다! 큰일이다. 월세! 통신비! 전기비! 가스비! 술값! 밥값! 어떡해! 교무처에 전화를 걸어 어떻게 된 영문인지 물었다.


“아 학생이 소득이 높네요.”

이건 또 무슨 소리인가.

“그럴 리가 없는데요? 저 3분위에요.”

“그건 한국장학재단 기준이고 여긴 다르게 심사해요.”


선발자 명단에 친한 친구의 이름이 보인다. 그 녀석 부모님은 자가에 사시고, 월세를 받는 원룸도 소유하고 계신다. '10분위라 국가 장학금도 안 나온다 그랬다고.'

반면 우리 집은 전세에다 차도 없다. 이 자취방은 국가에서 빌려줬다. '게다가 부모님 사는 집 팔렸다던데.......' 또 우울한 게 떠올랐다. 서류는 거짓말을 하지 않는다. 다만 이렇게 적용하면 안 되지. 결국 근로장학생 문제는 해결하지 못했다. 이번 학기는 혼자서 학교 다니겠구나. 근로장학생 활동은 나에게 많은 것을 선물해줬다. 생활비는 물론 공부할 공간, 수많은 시험 정보, 친구들, 그리고 여자 친구까지. 그 모든 게 이번 연도에는 없다. 누리던 게 없어지자 두려움과 함께 엄청난 허전함이 몰려온다. 머리카락 한 올이 바닥으로 떨어졌다.

어둑하고 눅눅한 방이 답답해 무작정 밖으로 나왔다. 정처 없이 걷다가 박카스 한 병을 사서 학교 야외무대로 가서 앉았다. 속도 아프고 머리도 어지럽지만 또다시 담배를 물었다. 어디서부터 잘못된 걸까. 불과 1월까지만 해도 영어회화수업을 듣고 한국사 자격증도 따고 꽤 유익하고 알차게 보냈다. 그런데 하나씩 마주치면 충분히 견딜 수 있는 문제들이 몇 주 사이에 한꺼번에 몰려왔다. 1대 17로 맞짱을 깔 때도 한 명씩 나온다고 한다. '그런데 이건 뭐야. 너무 가혹한 것 아니야? 그리고 나란 놈도 문제다!' 금주 선언, 금연 선언 지금까지 얼마나 시도했던가. 항상 이런저런 이유로 3일도 못 채우고 실패했다. 작심삼일이 꽤 어렵다는 걸 깨달았다. 하....... 의지박약. 담배는 많이 피우는 편이 아니니 그렇다 치자. 근데 술 먹고 얼마나 많은 사고를 쳤는가. 넘어져서 앞니 깨 먹고, 친하지도 않은 사람한테 전화해서 헛소리하고, 다음날 수업 빠지고, 토하고, 기절하고....... 도대체 얼마나 많은 일이 있었는지 셀 수도 없다. 이쯤 되면 당연히 마시면 안 되는데 오늘 또 술 약속 있다. 나 자신이 정말 한심하다. 하지만 살아야겠기에 아버지에게 전화를 걸었다.


“예 아버지 저 그, 이번 학기는 생활비를 좀 받아야 하겠습니다.”

“얼마 필요한데”

“음, 30만 원?”

“그거 갖고 되나.”

“잘 모르겠습니다. 이번에 근로장학생 떨어져서.”

“됐다. 아르바이트하지 말고 공부나 열심히 해라. 학생이 뭔 일이고.”


20살 때 술에 취해 막차를 탄 기억이 떠올랐다. 막차 버스기사는 아버지였다. 종점에 도착하고 내렸는데 정말 추웠다. 집에 가면서 울었었다. '아버지가 뼈 빠지게 번 돈으로 난 술이나 처먹고 있구나.' 그날 이후로 절대로 술을 먹지 않겠다고 다짐했었다. 그리고 그날 이후로 수 백 번의 술자리를 가졌다.

담배를 다 피고 나니 헛구역질이 났다. 몇 번을 기침을 하다가 갑자기 두려워졌다. 최근의 나날들은 인생 패배자가 되어가는 첫걸음일지도 모른다. '그냥 가만히 있다간 큰일 나겠구나. 졸업까지 1년 남았는데 취준생 생활 10년 더 하게 생겼다. 보고 싶어. 혜x야! 나 너무 힘들어! 내가 잘못했어 다시 돌아와 줘!'

이렇게 다양한 생각들을 동시에 한 적은 처음이다. 가슴이 답답하다가도 순간 개운하고 또다시 참을 수 없는 두려움이 엄습한다. 전엔 이런 적이 없었다. 아무래도 뇌의 한 부분이 고장 난 것 같다. 술 마시면 얼굴이 전보다 빨게 지는 걸 보니 간도 더 이상 버티지 못하는 게 분명하다. 인생이 하향곡선의 시작점에 와있다. 뭔가 조치를 취하지 않으면 안 된다. '그래 까짓것 한번 해보는 거야. 오늘부터 뭐라도 정하자. 금연하고 금주하고 책도 꾸준히 읽고 뭐든 다 하는 거야! 그런 의미로 담배를....... 근데 몇 개 남았지?' 13개가 있었다. '아까운데....... 아 몰라 꺾어!' 담배와 라이터를 쓰레기통이 던져 넣고 자리를 박차고 일어났다. 난 이 절망 속에서 벗어나 더욱 멋진 사람이 되겠다! 이 다짐이 이제 백 번째 지만 나 진짜로 변한다. 아무도 말리지 마라.


30분 후.

'못해. 너무 힘들어! 죽고 싶다. 다 포기하고 싶다! 우울해!' 엄청난 흡연욕구가 끌어 오른다.





1. 목표(6개월)

1) 지금보다 1.5배 풍성한 머리숱을 얻는다. 뭔가 변화의 기간을 정해야 하는데 머리카락 양이 객관적이고 좋겠다. 머리카락은 보통 6개월이 지나야 눈에 띄게 자란다고 한다. 그래서 6개월 프로젝트가 되었다.

2) 학점을 3.6까지 끌어올린다.

3) 음주와 흡연을 하지 않는다. 음주와 흡연이 문제 해결에 도움 되지 않는다는 걸 충분히 알았다. 이를 대체할 만한 오락거리를 찾아봐야겠다.

4) 결혼할 인생의 여자를 찾는다. 난 그녀를 온 힘을 다해 사랑할 것이다.


2. 일기

잠이 온다. 아직 잘 모르겠다. 또 포기하면 어쩌지 하고 걱정이 되지만 일단 해보자.


3. 식단

아점 : 푸드코트 저녁 : 햄버거


4. 오늘 하루 감사했던 점

감사한 걸 쓰는 게 진짜 효과가 있을까? 음. 내 다짐을 들어준 병x이에게 감사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