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년 3월 20일 / 26살 / 대학생
가슴이 너무 답답하다. 충분히 위로받았다고 생각했는데 여전히 보듬어주길 원하고, 충분히 잊었다 생각했는데 슬픈 기억들이 떠오른다. 머리를 미친 듯이 긁는 것을 보니 금단증상도 벌써 시작된 것 같다. 술은 이전에 당한 것이 많아 충분히 참을 수 있다. 그런데 담배는 와...... 이렇게 힘든 줄 몰랐다. 차라리 조금 컨디션 나아졌을 때 다시 금연을 시작하자고 오늘 하루에만 10번은 넘게 생각했다. 아침 조깅으로 상쾌해진 기분은 아침밥을 먹자마자 식후땡 타임에 사라졌고, 도서관에선 글자가 전혀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이러면 안 되는데 하면서도 자꾸만 나쁜 생각들도 떠올랐다. 영어 회화 스터디를 가는데 너무 귀찮아서 눈물이 났다. 감정이 이상해졌다. 귀찮아서 울다니! 어찌어찌 끝내고 집으로 돌아오는 지하철을 탔다. 문득 이세돌의 기사가 떠올랐다. 바둑기사 중 유일하게 흡연자였던 그가 담배를 끊은 이유는 딸이 담배냄새를 싫어해서라고 했다. '그래, 사랑하는 사람이 생겼을 때 끊는 거야!' 내리자마자 편의점으로 달려가기로 마음먹었다.
"그런데 그 사람에게 당당하게 네 모습을 보일 수 있겠니?"
머릿속에서 갑자기 이런 질문이 떠올랐다. 막상 만났는데 전혀 발전하지 못한 그날의 내가 과연 자신 있게 그녀에게 다가갈 수 있을까? 머리숱이 더 없어져있다면? 순간 정신이 번쩍 들었다. 한 번도 보지 못한 그녀에게 미안해졌다. 나도 자기 관리를 잘하는 사람이 좋다. 그에 걸맞은 사람이 되어야 했다. 그리고 엄마. '이제야 엄마가 떠오르네.' 엄마를 위해서라도 끊어야 한다. 생각해보니 끊어야 할 이유가 참 많았다.
이세돌의 기사에서 착안하여 사랑의 힘(물론 가상이지만)으로 의지를 다져보기로 했다. 아래는 미리 쓰는 편지.
'미래의 누구누구야, 밥은 잘 먹고 다니니?
난 지금 컨디션도 안 좋은데 금주, 금연까지 하려니 죽을 맛이다. 마음을 다잡고 바뀌려고 하는데 자꾸 나쁜 생각이 들어. 오늘 하루에도 몇 번씩 포기하려고 했어. 6개월 프로젝트 마음먹은 지 하루밖에 안 지났는데! 하지만 아직 얼굴조차 모르는 널 떠올리니 다시 마음을 잡을 수 있었어. 한 없이 부드러운 손, 장난기 가득한 목소리, 그리고 세상에서 제일 예쁜 너의 두 눈을 생각하니 절로 눈물이 맺혔어.
누구누구야, 부디 건강히 그리고 행복한 나날을 즐기며 기다리고 있어. 네게 어울리는 사람이 될 수 있도록 지금보다 더 멋진 사람이 되어 찾아갈게! 내가 제일 좋아하는 노래 love fiction에 이런 가사가 있어. '이제야 고백하는데 네가 나를 만나기 훨씬 전부터 내 여자였어.' 나에게 있어서 이 노래 가사의 주인공이 진심으로 너였으면 좋겠다.
누구누구야. 마지막으로 부탁이 하나 있어. 우리가 처음 만나게 될 그날, 너를 알아볼 수 있게 조금만 티를 내줘. 그럼 이만 줄일게. 이 편지는 널 만나고 100일째 되는 날 보여 줄 거야. 그럼 이제 난 도서관 간다. 안녕!'
1. 식단
아점 : 시금치, 검은콩, 콘푸로스트 저녁 : 닭갈비, 오렌지 두 개
2. 감사했던 일
오늘 스터디에서 날 mvp로 만들어 준 전공 지식에 감사한다.
노천극장에서 같이 박카스를 마시며 깊은 대화를 나눈 영x이에게 감사한다.
당일배송을 위해 늦은 시간임에도 불구하고 책을 가져다준 기사님께 감사한다.
3. 나 자신이 대견했던 일
조깅을 해서 대견하다.
시금치나물을 만들어서 대견하다.
우울함에 빠져있지 않고 기어코 도서관에 가서 대견하다.
영x이가 옆에서 담배를 피우고 있었음에도 끝까지 참은 내가 대견하다.
3. 몸의 변화
여전히 좋지 못함
가슴이 가끔 답답하다.
4. 짧은 일기
시간이 너무 안 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