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물둘째 날 - 알코올 중독 병원

28살 / 16번째 시도

by 혀노

종합병원 안의 정신건강과에서 진료를 맡고 있었다. 절차는 다음과 같았다.


1) 알코올 중독 자가 진단서 작성

2) 의사 상담 (이때 입원 여부를 판단하는 것으로 보임)

3) 약 처방


먼저 자가진단. 작년에 갔던 병원에서는 이 단계가 없었다. 병원마다 다른 것 같다. 대략 60문항 정도로 이루어져 있었는데 '음주로 인해 타인이나 자신에게 상해를 입힌 적이 있는가?'라는 질문에 멈칫했다. 타인을 다치게 한 적은 없지만 나 자신을 다치게 한 적은 몇 번 있었다. 여러 번 넘어져서 한 번은 앞니가 깨졌고, 또 다른 날에는 눈 위가 골절됐었다. 그리고 16년도엔 건강에 심각한 손상을 입어 죽음 직전까지 가기도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3년을 더 술을 처마셨으니 미친 거지.......

합산 점수는 5단계에 해당, '심각한 의존증 수준이며 전문의의 진료 필수'라고 나왔다.


곧이어 상담이 이어졌다. 진료실 안은 특별한 것이 없었다. 의사 선생님과 마주 보는 책상, 간의 침대가 다였다. 의사 선생님이 질문하고 내가 답하는 방식이었다.


"혹시 자신의 성격이 어떤 것 같으세요?"

"음, 그냥 호기심이 많은 것 같아요"

"..."

"어, 그리고 가끔 열정적이고 아니, 소심한 면도 있고......."


상담은 꽤 힘들었다. 왜냐하면 의사 선생님이 상당히 오랫동안 침묵을 유지했고, 말똥말똥 내 눈을 응시했기 때문이다. 더 할 말이 없냐는 듯이. 그 시선이 부담스러워 스스로도 무슨 말을 하고 있는지 모를 대답을 이어갔다. 다음에 이어진 질문들은 알코올 중독과 상관없어 보였다. 나의 행동을 관찰하는 걸까? 말투? 행동? 동공의 변화? 나름의 진료법이 있을 것이라고 믿기로 했다.

괴로운 질문 시간이 끝나고 드디어 의사 선생님이 대화를 주도했다. 그녀가 말하길 알코올 중독은 예후가 좋지 않다고 했다. 다이어트와 비슷해서 본인의 의지가 상당히 중요하다고 한다. 그러면서 다이어트는 대부분 실패한다는 말을 덧붙였다. '뭐야 무섭게. 의지 좀 잡게 도와달라고 온 겁니다만.' 장기적인 추이를 지켜보자며 주 3회 정도 방문하길 권했다. 직장에 다니고 있어서 수요일 야간 진료를 최대한 활용해야 할 것 같았다.


진료비는 얼마 나오지 않았다. 건강보험 적용 대상이라 18,000원 정도 나왔다. 약값도 몇 천 원 수준이었다. 한 봉투에 엽산, 비타민B, 항불안제가 담긴 3일 치 약을 받았다. 비타민과 엽산은 알코올로 손상된 뇌를 보호하기 위함이라고 했다. 항불안제는 음주의 시작을 막는데 도움을 주고, 혹은 술이 깬 직후 우울감을 완화시키는 역할이라고 했다.

가장 걱정이 되었던 것은 어쨌거나 정신과 진료이고 목적도 '알코올 중독 치료'라는 달갑지 않은 항목이었기에 혹여나 추후 직장이든 개인 프로젝트든 언젠가 불이익을 받지 않을까라는 점이었다. 하지만 그럴 필요가 없었다. 감기나 물리치료 등 여타 진료와 똑같은 정보보호를 받고 있기에 자신의 동의 없이는 아무도 열람할 수 없다고 했다. 그러니 필요하다면 전문가의 도움을 적극적으로 받아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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