껍데기만 남은 글

망각의 두 얼굴

by 혀노

종종 지난 일기를 살펴보곤 한다.

내 나름의 스트레스 해소법인데 당시 느꼈던 불쾌함을 최대한 떠올려본다. 하지만 대부분 경우 감정의 동요는 일어나지 않으며 '아 이런 일이 있었던가?'하고 갸우뚱하고 만다. 껍데기만 남은 글이 지금의 용기를 담는 항아리가 되는 순간이다.


그렇다고 망각이 마냥 반갑지만은 않다. 사랑하는 이들의 고통 또한 잊고 말기 때문이다. 아니, 외면했다는 걸 깨닫고야 말았다. 심지어 그들에게 부담에 부담을 얹기까지 했다. 지금 이 순간에도 아버지는 버스에서 진상 고객을 상대하고 있을 것이다.


'그런 와중에 난 전화 한 통 하지 않았구나.'

꿉꿉한 습기가 무겁게 내려앉는 언덕을 오르며 땅만 보고 걸었다. 왼손에는 바닥에 끌릴 듯 말 듯 이마트 장바구니가 들려있었다. 제로 사이다가 아스팔트 열기에 미지근해지지 않을까 장바구니를 힐끔 바라보는데 문득 보라색 빛이 보여 고개를 들었다. 연세대 캠퍼스가 보이고 그 앞으로 열차가 지나가고 있었다. 철로 위엔 뭉게구름, 할퀸 구름, 솜털 구름들이 아무렇게나 쌓여 있는데 빛도 보랏빛이었다가 갑자기 주황빛으로, 자기 마음대로 제 모습을 뽐내고 있었다.

항상 의문이다. 과도한 불균형 속에서도 자연은 이토록 아름답다니. 절로 사랑하는 사람들이 떠오를 정도다. 그러나 그들도 어쩌다 고개를 들면 다 볼 수 있는 풍경. 이보다 더 큰 선물을 주어야 하지 않을까?


어디 가족뿐이랴. 이름조차 기억나지 않는 많은 이들, 내 삶의 풍요를 위해 분명 누군가는 희생했다. 일기와 망각을 섞어 조물조물 빚은 게 지금 내가 가진 항아리들이다. 그 안에는 원치 않는 망각까지 섞여 있다. 대부분의 항아리들을 깨고 다시 빚어야 할 판이다. 감사함을 잊는 건 결국 내가 행복하다는 사실을 잊는 또 하나의 망각이니까. 결국 항아리를 깨고 다시 만드는 일조차 나 좋자고 하는 일이다.

가장 작은 사랑부터 껴안도록 하자. 말로만 다짐했던 것들이 점차 행동으로 증명되어 갈 때 비로소 마음이 편해질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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