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0. 출산 계획
딴짓하다 떠오른 나름 심각한 공상.
요즘 아이가 나오는 다큐멘터리를 자주 찾아본다. 작년까지만 해도 아이를 갖고 싶지 않았는데 요즘엔 느낌이 다르다. 어릴 때 동생과 나, 아버지랑 했던 레슬링 놀이가 자꾸만 떠오른다. 엄마 집에 데려가는 상상을 한다. 지하철에서 보이는 아이들에게서 눈을 못 떼겠다. 결혼 적령기가 되어서 그런 건가? 이게 무슨 일이지.
하지만 한편으로는 조심해야겠다는 생각도 든다. 난 아이를 반드시 가질 것이다. 다만 아무도 죽지 않도록 확실한 안전을 확보하고 싶다. 우리 할아버지도 엄마, 아버지도 아인슈타인도 세종대왕도 칸트도 예수도 부처도 경험해 보지 못한 시대가 눈앞에 온건 확실하니까. 여기에 맞는 출산 계획을 세워보자.
2028년: 기존 인간의 AI 보조 업그레이드 시작
2030년 : 인류와 동등한 위치의 제2의 존재 등장, 유기/무기 생명체 공동 국제기구 설립
2030년대 초반~중반 : 난세포 업그레이드 인간 등장
2035년 : 기존 인간과 업그레이드 인간 격차 심화
2040년 : 본격적으로 업그레이드 인간이 주류가 될 가능성 존재
3년 안에 이 세상이 디스토피아가 될지 파라다이스가 될지 판별이 난다.
중간은 없다. 점진적인 발전은 없다.
안 하는 게 좋다.
그 아이도 나처럼 실험용 동물이 될 것이다.
혹은 내가 먹을 것이나 감기약을 구해다 줄 수 없을 것이다.
2030년 이후에 하는 게 좋다.
이미 성장한 개체보다 난세포가 더 업그레이드에 유리하기 때문이다.
그 아이는 2025년 시점까지 발견된 모든 질병에 면역일 것이다.
골격 내구도와 근육, 지능 퀄리티가 2025년 인류에 비해 압도적일 것이다.
영화 '카타카'보다 더욱 극적인 형태의 자식이 태어날 것이다.
디스토피아가 되든 파라다이스가 되든 지금은 출산을 하기 다소 위험한 시기이다.
최소 3년 후에 결정을 해야 한다.
개인적으로 파라다이스가 올 확률이 좀 더 높다고 생각한다.
왜냐하면 인류의 개체수가 너무 많아 멸종시키는데 너무 많은 비용이 들기 때문이다.
왜냐하면 인류의 개체수가 너무 많아 재훈련에 너무 많은 비용이 들기 때문이다.
난세포 설계는 초기에 극소수의 기득권만 이용 가능할 것 같다.
고로 난 그때까지 권력을 어느 정도 잡고 있어야 한다.
이미 성장해 버린 개체인 나는 업그레이드를 하더라도 한계가 있을 것이다.
난세포 설계로 태어난 나의 자식은 3살이 채 되기 전에 나보다 월등한 지능을 가질 텐데 그때 '부모'라는 존재는 여전히 중요한 의미를 지닐까?
물론 지금의 나도 아버지와 엄마에 비해 더 똑똑하고 튼튼하다. 하지만 그건 28살 이후에나 그런 것이다. 즉, 어느 정도 부성애, 모성애를 경험하고 나서였다는 것이다. 그리고 보살핌도 받았고. 내 생각의 요지는 부성애, 모성애, 보살핌을 받지 않아도 되는 존재에게 부모의 존재가 뭐냐는 말이다.
나의 아이는 연민과 공감, 협동, 외로움, 사랑의 개념을 알까? 이미 혼자 완벽할 텐데. 그전에 이 개념들은 인류에게 필수적인 것인가. 아니면 현재 기술적 한계로 인해 어쩔 수 없이 유지되는 습성인가?
고독은 인간을 성장시키고, 사랑의 힘을 낳아 불가능을 가능으로 만들기도 한다. 그러나 고독은 본질적으로 불완전할 때 의미가 있는 법이건만, 나의 아이는 고독을 모를까 봐 걱정이다. 아니 몰라도 되나?
다만 난세포 설계를 거쳤다 하더라도 유기체라는 사실은 변함이 없기에 나의 자식은 감정과 영혼을 지니고 있을 것이다. 그런데 감정과 영혼조차 뭔가 변화가 생기지 않을까?
난세포 설계 인간의 감정과 영혼은 어떤 모습일까?
감정은 어떻게 진화할 것인가?
새로운 감정은 어떤 형태일까?
AI는 그저 우주 진출을 위한 발판일 뿐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