폭력은 왜 미덕이 될 수 없을까?

나는 어떤 도덕을 따라야 하나

by 혀노

아무리 봐도 폭력과 살인이야말로 인류 문명을 이끌어 온 원동력인데 왜 미덕으로 인정받지 못할까?

강대국의 조건은 과거에 얼마나 효율적으로 학살을 자행했는가에 있다. 최소한 G7 국가의 부의 원천만 추적해 봐도 이 조건이 빠지지 않는다.



미국 : 영국 이주민의 북미 원주민 학살, 서부 개척 정책, 노예제를 활용한 대규모 농업 등


일본 : 조선 식민화, 만주 정벌로 자원 확보, 인체 실험으로 인한 기초과학 발전, 625 전쟁 무기 수출 특수 등


독일 : 나미비아 20세기 최초의 제노사이드, 1, 2차 세계대전을 통한 과학 기술 자료 습득, 유대인 자본 흡수 등


영국 : 해적, 대서양 노예무역, 카리브해 사탕수수 농장, 아편전쟁, 인류 역사상 가장 큰 식민지 영토 등


프랑스 : 대서양 노예무역, 알제리 식민 통치, 나폴레옹 전쟁을 통한 대륙별 문화 흡수 등


이탈리아 : 메디치 가문의 전쟁 투자, 도시 국가에서의 농민 착취, 에티오피아 침공, 마피아와의 결탁 등


캐나다 : 이누이트족 토지 강탈, 모피 무역 전쟁, 철도와 광산 개발, 원유 생산 등으로 인한 자연 파괴 등


이러한 사건들이 없었다면 인류의 문명은 철기 시대에 머물러 있었을 것이다. 내가 누리는 모든 풍요는 말 그대로 누군가의 피로 결제되었기 때문에 나를 대신하여 학살을 자행한 지도자들에게 감사함을 표해야 한다. 하지만 나는 왜 역사에 역겨움을 느끼고, 양심의 가책을 호소하는 걸까? 그 와중에 현대 문명을 즐기고 있으니 위선적이기 짝이 없다. 어쩌면 도덕의 발전은 '위선적 양심의 가책'을 약물 치유하는 방향으로 가야 할 수도 있다. 일단 이 문제는 나중에 생각하기로 하고.

일단 오늘은 폭력과 살인이 왜 비난받는지만 생각해 보자. 의외로 단순할 수도 있다.



- 1890년 2월 경, 어떤 지도자가 누군가 목이 잘리는 모습을 보고 역겨움을 느꼈기 때문이다.


- 1943년 6월 경, 어떤 지도자의 가족이 성폭행을 당했기 때문이다.


- 1968년 11월 경, 어떤 지도자의 집에 강도 살인이 발생했기 때문이다.



​이처럼 결정권자가 불편함을 느껴서 그런 것 아닐까? 최초의 반전 시위나 반폭력 운동을 추적해 보면 시작점은 서너 명의 목소리 큰 사람들일 것이다. 그리고 비슷한 비극을 겪은 서민들의 참여가 이어진 것이다. '나의 것을 빼앗겼다'라는 원초적인 불만. 이것이 폭력과 살인이 미덕으로 인정받지 못하는 이유이지 않을까?


​'존엄성 보호'라는 표현은 체면을 위한 껍데기일 뿐이다. 어떤 미친 지도자가 멋없게 "저는 누군가의 장기가 뱃속에 온전히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그래서 이 학살극을 멈추고자 합니다"라고 외치겠는가. '존엄성 보호'라는 말은 지도자들의 자기 이미지 관리를 위한 수사일 뿐, 폭력을 멈추는 근본적 이유는 아니다.


​나는 어떤 마음가짐으로 살아가야 할까? 그리고 인류의 발전을 위한 '진짜' 옳은 행동은 뭘까? 누군가 숨김없이 정답을 알려줬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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