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말로 하면 책벌레, 나쁜 말로 하면 활자 중독이 아닐까? 나 스스로 의심스러웠던 적이 많았다. 그동안 내가 읽었던 책이 몇 권쯤 될까? 하는 궁금점도 가졌다. 하루에 1~2권씩은 읽으니까 일 년이면 500권, 수십 년이 넘게 읽었으니까 아마 수만 권은 넘게 읽은 것 같기는 한데, 정확하게 읽은 권수는 나도 모른다.
그런데 모든 중독인 것은 후유증을 남긴다. 어릴 때부터 고도 근시에 시달렸는데, 오십 즈음이 되니 눈에 노안이 먼저 왔다. 낮에는 좀 보이는 것 같은데, 저녁이 되면 점점 작은 글자가 뭉개지면서 책 보기가 힘들어졌다. 한동안은 도서관에서 큰 글자책도 빌려 보았다. 책을 그만 보아야 하는데, 카페인 중독처럼 책을 끊기가 쉽지 않았다. 눈으로 책을 보는 것이 쉽지 않아, 귀로 듣는 오디오북을 조금씩 듣기 시작했다.
우리나라 최대 오디오북 사이트인 밀리의 서재와 윌라 오디오북에 순차적으로 가입해서 듣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한 달에 만원 남짓의 돈을 내고(그것도 첫 달은 무료다) 무한정 책을 들을 수 있다는 사실이 좋았다. 그런데 수많은 책 속에서 내가 듣고 싶은 책을 고르는 것이 쉽지 않았다. 무한한 정보의 바다에서 조개껍질 속에 숨겨진 진주를 찾는 느낌이 들었다. 물론 다양한 책 추천 서비스를 하고 있기 때문에 잘 활용하면 내 성향에 맞는 책을 쉽게 찾을 수 있기도 했다. 그렇지만 100% 만족스럽지는 않았다. 오디오북의 청취자로서 오디오북 사이트의 장단점과 앞으로 나아갈 방향을 정리해 보았다.
1. 밀리의 서재
밀리의 서재가 가지는 장점은 많다. 재미있는 것은 장점이 단점이 되기도 한다는 점이다.
첫 번째 장점은 들이는 돈에 비해 이용 가능한 책 양이 많다. 월 만원 정도 내면 무제한으로 책을 읽고 들을 수 있다. 책 한 권 값으로 10만 권이 넘는 책 속에서 무한정 읽을 수 있다는 것은 분명히 큰 장점이다.
두 번째 장점은 전자책과 오디오북을 동시에 이용할 수 있다. 귀로 들으면서 동시에 눈으로 책을 읽어 나갈 수 있다. 종이책을 좋아하기는 하지만, 외출할 때마다 책을 여러 권 가지고 다니는 것이 무거워서 부담스러웠다. 밀리의 서재에서는 휴대폰 하나만 있으면 읽고 듣기를 동시에 할 수 있어 간편하다.
세 번째 장점은 개인화가 잘 되어 있다. 내 서재에서 월간 연간 누적으로 얼마나 많은 책을 읽었는지 실시간으로 알 수 있다. 또 어떤 분야의 책을 주로 읽고 있는지, 독서시간은 어느 정도 되는지, 주로 어떤 요일에 읽고 있는지 등도 통계에서 일목요연하게 보여준다.
물론 장점만 있는 것이 아니라 단점도 있다. 첫 번째 단점은 기계음으로 녹음된 책이 많다는 것이다. 두 번째 단점은 완독도 있지만 요약본 위주로 서비스되고 있다는 점이다. 세 번째 단점은 책 추천이 너무 많아서 한눈에 잘 안 들어온다는 점이다. 디자인을 좀 더 단순화하여 한눈에 들어오게 바꿀 필요가 있어 보인다.
첫 번째는 전문 성우가 낭독해 주어 오디오북의 퀄리티가 높다. 기계음으로 자동 녹음된 오디오북도 있지만, 전문 성우나 배우들이 녹음한 것을 들어보면 질적인 차이가 있다. 다양한 사람 목소리가 주는 따뜻한 느낌도 좋고, 책 내용에 맞는 적절한 배경음을 삽입하여 몰입감을 극대화시켜 준다.
두 번째는 오디오북뿐만 아니라 클래스도 같이 이용할 수 있다. 클래스를 듣고 있으면 눈으로 보이지는 않지만, 생각보다 다양한 지식들이 귀에 쏙쏙 들어온다. 일부러 시간 내어 강의를 보지 않아도, 다른 것들을 하면서 동시에 강의를 들을 수 있는 것도 큰 장점이다. 출퇴근 시간이나 자투리 시간들을 활용하여 클래스를 들어 보면 생각보다 배우는 것이 많다. 특히 대한민국 명강을 만나다 코너에는 정말 좋은 명강의들이 많다.
세 번째는 추천 큐레이션이 다양하다. 분야별 인기, 주간 베스트, 평점, 댓글, 최신 등 다양한 방법으로 추천해 준다. 개인별로도 추천해 주는데, 내가 기존에 읽은 책이나 들은 클래스를 바탕으로 좋아할 만한 오디오북이나 클래스를 추천해준다. 성별, 연령대별, 주제별로도 다양하게 추천해준다.
물론 단점도 많다. 재미있는 점은 밀리의 서재와 윌라 오디오북은 상호보완적인 장단점을 가지고 있다는 점이다. 첫 번째 단점은 밀리의 서재와 다르게 윌라 오디오북은 텍스트를 볼 수 없고 오디오북 위주로 되어 있다. 두 번째 단점은 전문 성우가 녹음하는 방식을 사용하기 때문에 오디오북을 일시에 늘리기 힘들어 책의 절대량이 부족하다. 세 번째 단점은 디자인이 깔끔하기는 한데 개인별 분석과 같은 개인화 기능이 약하다.
물론 기계음으로 자동 녹음하면 오디오북의 절대량을 순식간에 늘릴 수 있는 장점이 있다. 그렇지만 아직은 기계가 읽어주는 오디오북은 인간의 목소리에 비해 한계가 있다. AI로 오디오북을 만드는 것도 하나의 방법이고, 밀리의 서재에서 한 것처럼 내가 만든 오디오북도 또 다른 방법인 것 같다. 배우 봉태규가 직접 녹음해서 오디오북을 만드는 것처럼, 개인들이 자기만의 오디오북을 만들면 빠른 시간 안에 다양한 목소리의 오디오북을 확보할 수 있을 것 같다.
두 번째는 오디오북의 질적인 향상이다. 단순히 종이책을 그대로 읽어 주는 방식이 아니라, 라디오 드라마처럼 오디오북 연출을 통해 전문 성우가 읽어 주고, 책 내용에 적합한 배경음도 같이 곁들여주는 방식이 좋다. 예를 들어 주인공이 비 내리는 날 카페에서 만나는 장면이면 빗소리도 들리고, 배경음악도 들리고 하는 식으로 표현해 줄 수 있다. 오디오북은 기본적으로 보는 책이 아니라 듣는 책이다. 시각이 아닌 청각이 주는 효과를 극대화할 수 있도록 제작에 질적인 변화가 있어야 한다.
세 번째는 책 추천의 진화이다. 지금도 이달의 오디오북, 이주의 오디오북, 분야별 오디오북, 작가 추천 오디오북 등 다양한 방법으로 책 추천을 하고 있다. 모든 사람에게 동일한 책 추천뿐만 아니라, 개인별로도 그동안 읽었던 책 정보를 기반으로 OO님이 좋아할 만한 오디오북도 추천해 주고 있다. 그런데 책 추천을 보고 있으면 넷플릭스에서 볼 만한 영화 추천 알고리즘이랑 비슷하다는 생각이 절로 든다. 영화 몇 편 보고 나면 그 비슷한 영화만 계속해서 추천해 준다. 사람마다 좋아하는 음식 취향이라는 것이 있지만, 새로운 음식에 대해서는 이게 내 취향에 맞는지는 먹어 보기 전에는 알기 어렵다. 책도 비슷한 것만 추천해 주면, 다른 장르의 책을 읽을 기회를 점점 잃게 된다.
이때 필요한 것이 책 큐레이션이다. 원래 큐레이션(Curation)은 추천이라는 뜻으로 빅데이터 분석을 통해 개인 맞춤 정보를 제공하는 행위를 말한다.(용어 출처 : ICT 시사상식) 콘텐츠가 많아질수록, 좋은 책을 찾기가 점점 더 힘들어진다. 책을 다양한 방식으로 분류하고, 개인의 선택을 돕는 유용한 정보를 제공해야 한다. 이왕이면 오늘의 날씨와 오늘의 이슈와 오늘의 내 기분까지도 고려한 오디오북 추천을 해 주면 더 좋겠다. 나에게 맞는 오늘의 책 추천을 통해 하루를 알차게 보내게 해 주면 좋겠다.
양질 전환의 법칙이라는 것이 있다. 독일의 철학자 헤겔이 한 말인데, "일정한 양이 누적되면, 어느 순간 질적인 비약이 이루어진다"는 개념이다. 보통 사회 발전 쪽에서 많이 인용되지만, 개인에게도 적용된다. 독서에 있어서도 처음에는 절대적인 읽는 양의 확보가 필요하고, 그다음에 질적인 변화가 일어난다. 오디오북도 마찬가지이다. 처음에는 양을 늘려야 하지만, 궁극적으로는 그 늘어난 양이 질로 전환되어야 한다.
* 오디오북과 공유경제가 무슨 관계가 있을까 궁금해하는 분들이 있을까 싶어 사족을 단다. 제레미 리프킨의 한계비용 제로 사회(사물인터넷과 공유경제의 부상)라는 책이 있다. 책에서는 소유 중심의 교환 가치에서 접속 중심의 공유 가치로 옮겨 가는 대전환이 새로운 경제 시대를 이끌 기술적 사회적 동력이 될 것이라고 분석한다.
쉽게 예로 들어 보자. 과거 종이책은 내가 서점에서 돈 주고 사면, 나만이 그 종이책 한 권에 대한 소유권을 가진다. 내가 그 종이책을 읽고 있는 동안은 다른 사람은 그 책을 읽을 수가 없다. 오디오북은 접속해서 책을 듣는 개념으로, 내가 그 책을 듣는 동안에도 수많은 다른 사람들이 동시에 그 책을 들을 수 있다. 종이책은 만드는데 종이, 인쇄 비용, 배송 비용 등이 개별적으로 계속 들지만, 오디오북은 한 권을 만들어 한 사람이 들으나 백만 명이 들으나 추가 비용이 거의 발생하지 않는다. 결국 한계비용 제로에 가까워 공유하기가 쉬워진다. 오디오북이 공유경제의 가장 접속하기 쉬운 대상이 되는 이유다.
* 얼마 전에 눈 수술을 받고 다시 선명한 시력을 되찾았다. 눈 수술 자체는 10분 남짓 걸릴 정도로 간단했지만, 당분간 눈에 충격이 가지 않도록 조심해야 한다. 눈이 피곤하지 않도록 종이책 읽는 것을 줄이고, 오디오북으로 전환했다. 오디오북의 세계는 기대했던 것 이상이었만, 종이책에 비해 아쉬운 점도 많았다. 활자중독에서 벗어나는 것은 생각보다 쉽지 않았다. 오디오북을 듣다가 잠드는 날들도 많았다. 백문불여일견이라는 말이 있다. 백번 듣는 것이 한 번 보는 것보다 못하다는 뜻으로 직접 경험해야 확실히 알 수 있다는 뜻이다. 눈은 귀보다 믿음직하다는 뜻이기도 하다. 그렇지만 더 중요한 것은 무엇을 보고 듣느냐일 수도 있다. 결국 양이 질을 만든다.
직접 들어 보면서 오디오북이 나아갈 방향을 양과 질 측면에서 정리해 보았다. 많은 분들이 오디오북에서 새로운 지식과 즐거움을 얻는데 미약하나마 도움이 되었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