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서운 전세 쉬운 매매, 나는 20대였다_1

평범하게 살아보고 싶다

by 첨chum


기억나는 대로 쓰는 매매일기 그 첫 번째 이야기


평범하게 살아보고 싶다




내 어릴 적 꿈은 우습게도 '평범하게 살기'였다. 담임선생님이 나를 불러 평범하게 사는 게 꿈이니? 하고 물었을 때 당연히 고개를 끄덕였다. 추울 때는 보일러를 켜고, 더울 때는 에어컨도 켜고, 가끔은 가족과 외식하고, 주말에는 백화점 마트로 장을 보러 가는 거다. 그러다가 휴가 때는 제주도나 해외로 여행도 가보고 싶었다.

드라마에서 보면 다 그러던데. 티브이를 보다가 망상에 빠지기도 했다. 거실이 있어서 소파를 두고 가족끼리 과일을 잘라먹으며 이번 주 용돈을 다 썼다며 짜증 내는 삶은 대체 어떤 걸까.


내 방이 있고 침대가 있는 건 어떤 느낌일까. 내가 혼자 방을 쓴다고? 이런 망상은 꼭 춥고 덥고 궁상맞을 때 더 심했다. 특히 전기매트 위에 간이 책상을 두고 문제집을 풀다가 손이 시릴 때 자주 상상했다. 나도 내 방만 있으면 반에서 3등이 아니라 1등도 할 수 있다고. 아니 반대로 심술이 났다.


고3 때 자기소개서를 쓰면서 나는 가난이나 한부모가정 따위를 고난이라며 써 내려가야 했기 때문이다. (고3이 어떻게 저딴 걸 극복 한단 말인가?) 내게 더 나은 기회가 있었다면, 사회가 정한 가난을 극복한 나보다 훨씬 대단한 사람이 되었을 것이다. 무슨 고난을 겪어내야만 좋은 사람이 되는 걸까. 쓰다 보니까 화가 나네?


가난하게 살아는 봤을까? 주방 서랍을 열면 바퀴벌레가 기어가는 벌레 많은 집. 누수가 나서 전기가 내려가고 보일러는 고장 나서 따듯한 물을 끓여 써야 하고 화장실에는 입김이 나는 집. 너무 배가 고파서 한 끼를 겨우 라면을 끓여먹는 일 같은 걸 겪어는 봤고?


세상에는 잘나고 대단한 사람이 많아서 통상적으로 하는 말이 있다. 내게 이런 고난이 있어서 결국 이렇게 좋은 결과가 나온 거라고. 물론 그 사람은 그럴 수 있다. 하지만 난 아니다. 개풀 뜯어먹는 소리 하네.


나는 겨우 대학교에 입학 그리고 다이렉트 졸업에 취업까지 했다. 여행은 무슨 학교 식당에 1700 원하는 가락국수를 점심으로 먹으며 "나 우동 되게 좋아해." 이런 말이나 하고 다녔다. 덕분에 자존감은 바닥을 뚫어 맨홀 뚜껑 아래로 흘러들었다. 뭐, 등록금 등 지출은 많았지만 구구절절 하기는 그러니 다음에 길게 이야기하는 걸로 하고 이제 슬슬 집산 이야기를 해야겠다.


그러던 내가 덜컥 취업을 하고 돈을 벌기 시작했다. 사회초년생이라는 꼬리표를 달며 월 200만 원을 받았다. 점심마다 심각한 가락국수 러버였던 내가 한 끼에 덮밥도 먹었다. 밥을 먹고 나면 가볍게 카페에서 음료도 사 먹었다. 카페인에 민감해서 레몬에이드 같은 달달한 음료를 고르는 호사도 누렸다.

지갑이 두둑해지는 순간 다른 세상이 눈앞에 폭포처럼 흐르기 시작했다. 다들 이렇게 산 거였다. 먹고 싶을 때 먹고 사고 싶을 때 사고. 눈 딱 감으면 할 수 있었다.


하지만 비극적 이게도 이런 호사스러운 삶에는 대가가 있다. 통근 4시간. 풀타임 1시간 이상 지하철 안에서 보내야 했다. 직장인이라면 한 번쯤 퇴근시간 지하철과 버스를 겪어봤을 거다. 지금 당신이 상상하는 상황, 그 상황에 곱하기 3배쯤 하면 된다. 지하철을 1시간쯤 타고 다니면 자리가 많을 때 탈 것 같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다. 동인천 급행은 시작 역인 용산에서 자리가 다 차고. 용산 급행도 동인천에서 자리가 다 찬다.


심지어 나는 지하철도 갈아타고 버스도 갈아탔다. 서울에서 인천까지 매일매일 여행을 다녔다. 여기에 직장 스트레스까지 더해 식도염을 달고 살았다. 구내염은 자고 일어나면 생겨있는 일과였고 옆사람 냄새를 맡아가며 출근하는 일상은 뭐 입이 아프니 더 말하지 않겠다.


그러던 어느 날, 지하철을 두 번 갈아타고 버스에 허겁지겁 뛰어 탔던 날이다. 버스가 출발하기만을 기다려야 했던 시간에 회의감이 들었다. 초등학교, 중학교, 고등학교 그리고 대학교까지. 내가 취업을 위해 준비했던 모든 스펙. 이게 겨우 4시간 통근을 위한 거였나? 다시 머리를 굴렸다. 나는 왜 돈을 벌지?


왜? 직장에 나가고 돈을 벌고 있더라?


사람마다 이유는 있다. 결혼을 위해서, 혹은 식구가 있어서 등등 말이다. 그렇게 떠올렸다. 초등학교 담임선생님에게 당당하게 써 제출했던 "꿈". 평범하게 살기.


나는 여전히 벌레 나오고 추울 때 춥고 더울 때 더운 집에 살고 있었다. 겨우 2년 벌어먹은 돈이 있지만 전세는커녕 매매는 택도 없는 돈이라고 여겼다. 이사는 꿈도 꾸지 않았다. 왜? 왜 꿈도 꾸지 않았지?


생각을 꼬리에 꼬리를 물고 잡아봤다. 왜 나는 그 거지 같은 집구석을 벗어나지 못하는 거지?

자꾸 물어보니 답이 나오긴 했다. 내가 벗어나려 하지 않아서였다. 발버둥 치지 않아서였다. 이사를 결심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내가 하지 않으면 현실은 언제나 그대로였다.


아뿔싸.


"나는 30대가 되면 차도 끌고, 집도 사고 할 거야." 막연하게 꿈꾸던 멋진 어른이 되려면 차도 사고 집도 사야 하는 거였다. 뒤통수를 거하게 맞아 아릿한 통증이 이어졌다. 맞네? 그러네? 집을 사야 집주인이 되는 거고. 이사를 가야 이 집에서 벗어날 수 있는 거구나??


그날 당장 통장에 있는 돈과 당장 쓸 수 있는 금액을 정리했다. 내가 가진 돈으로도 좋은 집을 구할 수 있을까? 그 당시 내 나이는 25살, 4년제 대학교를 나와 바로 취업한 뒤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