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서운 전세 쉬운 매매, 나는 20대였다_2

운빨망캐

by 첨chum



"로또나 당첨됐으면 좋겠다."



퇴근할 때마다 입에 닳도록 하는 말이다. 지금도 가끔 생각날 때 연금복권 사이트에 들어가 갈겨보곤 하는데 별 소득은 없다. 인생에 단 한 번이라도 내게 행운이 온다면. 딱 한 번이면. 이런 사념으로 품에 넣은 사직서처럼 복권은 나만의 종교였다.


당첨된 적도 없으면서 당첨금을 어디에 쓸지 요목조목 따져봤다. 건물 하나를 사서 1층은 카페를 주고 싶다. 아, 아니다. 일단 서울에 아파트를 작은 걸 사서 버텨보는 것도 좋겠다. 희망에 찬 듯 절망적인 꿈을 꾼다. 그도 그럴게 나는 평생 운빨망캐였다. 일명 운빨로는 망한 캐릭터의 줄임말로 평생토록 자잘하게 운이 없었다.


줄을 서면 내 앞에서 끊기는 일은 다반사였고 하다못해 학창 시절 수행평가 점수도 잘못 나왔다. 나랑 이름이 같은 친구가 아랫 번호였는데 그 점수가 내 점수로 기록됐다. 대학시절에는 내 점수만 엑셀 파일에서 누락되었다. 하필이면 내가 그 시험에서 1등을 했는데 아무도 알지 못했다. (이건 좀 마음이 아프다)


가위바위보를 하면 90% 확률로 진다. 물론 이와 같은 사례로 시험 때는 찍으면 틀린다. 말로만 하면 이 정도 가지고 뭘, 할 수도 있다. 운이 지지리도 나쁘다는 건 아무래도 증명하긴 어렵다. 그럼에도 나는 내 인생을 살아아 했으므로. 사시사철 실내화 가방에 접이식 우산을 들고 다녔다. 어디에 놀러 가면 가방에서는 도라에몽 주머니처럼 끊임없이 준비물이 터져 나왔다. 본의 아니게 준비성이 철저한 계획적인 학생으로 학창 시절을 보내야 했다.


그럼 내 운은 어디로 갔을까?


사람마다 일정량의 운을 타고난다면, 나는 30대가 되어 비로소 말할 수 있다. 운몰빵캐. 내가 바로 운이 몰아서 오는 몰빵릭터였다. 내 인생을 결정하는 가장 중요한 순간 인생운이 터진다.


중학교 때는 1 지망 중학교에, 고등학교 1 지망은 하필 내가 지원할 때 미달이 나서 쉽게 진학했다. 설마 대학교도 그랬겠나 싶을 거다. 그랬다. 가장 원하는 대학교 학과에 이른 시기에 수시 합격했다. 여기까지는 그냥 노력으로 치부할 수도 있다. 하지만 취업까지 한방이었다면?


가장 마음에 드는 취업자리에 졸업 전에 합격했다. 심지어 2년 계약직 후, 정규직 제안을 받아 잘리지 않는 선에서 계속 일을 할 수 있었다. 전례 없이 남들이 말하는 신의 직장에 덜컥 앉았다.


그리고 30대인 지금. 정신없이 매매한 나만의 작은 스위트 홈이 재건축에 들어갔다.


운몰빵캐


일 평생 운이 없다는 건 참 힘든 일이다. 집 매매를 결심했을 때도 그랬다.


처음에는 전세로 이사 갈 생각이었다. 이사를 위해 조언을 구하면 열에 일곱은 월세에서 전세로 천천히 늘려가는 게 좋다고들 한다. 좋은 게 좋은 거라고. "전세"라는 시스템이 괜히 웅장해 보였다. 큰돈을 담보 삼아 그 집을 2년 정도 점유할 수 있다니. 게다가 이사 갈 때는 큰돈을 돌려주기까지 한다. 글자로만 보면 황홀하기까지 했다. 전세라는 달콤한 유혹에 빠져 미끼를 물었던 나는 결국 "허위매물"에 시달렸다.


괜찮은 집을 집어 보여달라고 하면 다 나갔다던가 비슷한 집을 보여줬다. 한두 번은 간곡한 말에 속기도 했다. 또 빌라 최상층을 리모델링했다며 이 금액에는 못 산다고 흥정당했다.(산다고 한적도 없는데) 덜컥 속아 전세 들어가 뻔했지만 나는 제1 금융권 은행 대출을 받아야 해서 빌라나 주택은 들어갈 수 없었다.


그러던 어느 날, 허위매물에 지친 내게 부동산에서 나를 가르치듯 말하던 부동산업자가 있었다. 지금도 나이가 어리다고 반말을 하던가 민폐라며 가르치는 사람은 종종 있지만. 그때는 마치 인생선배라도 된듯 나를 혼을 냈다.


왜 전세를 살려고 하는 거죠? 전세와 매매가 천만 원 차이밖에 안 나는데. 이 금액이면 차라리 매매를 하지.


대충 이런 식의 이야기였다. 들어보니 그럴듯했다. 그러게? 전세랑 매매가랑 차이가 없는데 왜 전세를 살지? 그냥 사서 내 집 마련해서 사는 게 마음 편하지 않나. 만약 운이 좋아 시세가 올라가면 더 좋은 거니까.


단순한 사고는 언제나 막연한 행동파를 만든다. 나는 위의 간단한 프로세스로 전세가 아닌 매매를 결심했다. 그 부동산업자 말대로 당시 매매가와 전세가의 차이가 거의 없었다.


매매가 > 전세가


매매금액보다 전세금액이 낮은 건 당연하다. 하지만 차이가 1000만 원도 나지 않는다면 의심해야 한다. 첫 전세살이를 하거나 큰돈을 빌려야 한다면 유심히 보자. 나는 하루 정도 시간을 내서 부동산을 공부했다. 검색도 하고 책도 찾아 읽었다. 전세라는 전례 없는 시스템은 어떤 구조로 돌아가는 걸까. 전세금액이 매매가와 다를 바 없이 높다면, 2년 후 이사를 갈 때 내 돈을 돌려받을 수 있을까? 대체 전셋집 주인들은 전세금을 받아 뭘 해 먹고사는 걸까?


그렇게 꼬리를 물어보니 아, 바로 눈에 보였다.


1억 전세금을 받아 9천만 원짜리 집을 또 사는 거였다. 아, 이마에 전구라도 달린 듯 반짝였다. 그런 식으로 집을 사고 또 사고해서 늘려가 몇 채를 매매한다. 계약은 짧아도 2년 계약이니 시간은 집주인 편이다. 만약 주택 시세가 오른 다는 확신이 있다면 충분히 도전할만했다. 1년 전 1000원과 지금 1000원의 가치가 다르듯이 주택도 그렇다. 시세가 오른 만큼 집주인은 전세금을 올릴 수 있다. 1억 전세 집이 1억 5천 전세가 되는 건 일도 아니었다. 그래, 그 차익으로 돈을 버는 거였다. 돈으로 돈을 번다는 말이 새삼 이런 거구나 싶었다.


눈도 입도 코도 얼얼했다. 부동산이 문제다 하는 말은 들었지만 하루 정도 공부한 나도 부동산 시장바닥을 알겠다. 그 정도로 간단한 시장구조였다. 머지않아 깨달음은 무서움으로 변했다. 등골이 서늘했다. 내가 황홀하다고 여겼던 "전세"는 바닥 없는 외줄 타기나 마찬가지였다. 예를 들어, 집값이 떨어지면 전세금보다 매매금액이 낮아질 수 있다. 이 포인트에서 아차! 셀프로 뒤통수를 세게 때렸다. 이게 바로 깡통전세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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