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광쌤 Jun 12. 2024

계단참 넌 좀 그래

feat.자기자비

[작전명:계단] 7


"계단참? 그게 뭔데?"

"응, 네가 서 있는 그곳!"


 계단참 (階段站)이란, 계단을 올라가다가  다음 층계를 시작하기 전만나게 되폭이 제법 넓은  말합니다. 고보면 계단이나 사다리의  길이가 긴 경우에는 그 도중에 계단참이 반드시 존재합니다. 물론 대부분의 사람들은 이전 것보다 조금 큰 계단이라고 생각하기도 합니다.  통행하는 사람의 휴식 또는 추락에 의한 위험을 감소시키기위해  '안전규칙', 건축법에 의거하여 정해진 규격이 있을만큼 옵션이 아닌 필수사항인 계단참이지만 오늘따라 좀 신경 쓰입니다.




 

새해 첫 날, 아들과 함께 약속했습니다. 1년동안 매일 계단을 정해진 개수만큼 올라보자고요. 물론 그 약속은 이미 희미해진지 오랩니다. 저와의 약속인 108 계단 프로젝트 역시 중단된 상태입니다.


바빠서, 아파서, 정신 없어서......

온갖 핑계와 변명을  늘어놓다보니 온몸에는 울룩불룩 무덤이 생겼습니다. 저마다 핑계있는 무덤이라는 듯 무지막지한 살이 되어 도합 5kg에 달하는 무게가 되었습니다. "핑계 없는 무덤 없다."는 그럴 때 쓰는 말이 아닌데 말이죠. 하다하다 속담도 핑계로 쓰고 있었네요. 물론 계단을 오르다 것이지, 내려간 것은 아닙니다. 사람들이 오고 가는 길을 막으면 되니까 잠시 계단참에 서있는 셈이네요. 그래서일까요? 계단참이 shelter가 아니라 자꾸만 숙제로 느껴지는 겁니다. 나태지옥에 빠져 드러누워 있는 자신과도 자꾸 겹쳐졌고요. 


그래서 몸을 일으켜 계단을 올랐습니다. 숨이 찼지만 계단참은 그저 계단으로 삼고 쉬지 않고 올랐어요. 그간의 마음이 조금 해소될까 싶어서요. 웬걸요. 내게 남겨진 것은 해방감 보다는 무릎과 발목에 전해지는 강렬한 통증 뿐이었습니다.


 아마도 계단참에 오래도록 서있는 동안에 내 앞을 슝슝 지나갔던 사람들을 따라잡고 싶었나 봅니다. 이미 놓쳐서 사라져버린 사람들이 떠올라 발걸음이 무거웠나 봅니다. 운동은 커녕 몸을 혹사 시키면서 눈앞에 놓인 일들을 처리하며 지내는 동안 근육은 사라지고 울퉁불퉁 셀룰라이트만 생겼고요. 몸과 마음에 쌓인 무게들은 고스란히 고통이 되어 전해졌습니다. 집으로 돌아오는 계단에서는 1층을 겨우 올랐고, 1층과 2층 사이 계단참에 서서 '아이고 아이고~' 곡소리도 나오더라고요.


샤워를 하고 발목에 파스를 붙여주고는, 아이스라떼를 마시며 다이어리를 폈습니다.

그 안에는 '언제 올라가나?', '내일은 꼭!!!' 등, 칭찬보다는 반성과 각오의 말들이 느낌표 세개와 함께 존재했습니다. 너무 바빠서 아무 내용도 없는 칸들도 많았습니다. 그 안에는 구두 신고 애쓰게 뛰어다녔을 내가 의무적으로 매일 오르내렸을 계단은 없었습니다. 매일 녹초가 되어 퇴근을 하며 올랐던 아파트 계단도 없었습니다. 계단참에 서있을 여유도 없이 준비물을 챙겨서 5층까지 뛰어 다니던 나도 없었습니다.



어째서 우리는 매일 계단을 오르내리면서도 계단참에 서서 아무것도 하지 못하고 있다고 생각하는 것일까요? 나태지옥이라니! 이렇게 매일 열심히 일했는데 말이죠.


오늘이야 말로 나에게 '자기자비(Self-compassion)'가 필요한 순간이 아닐까 합니다. 자기 자비란 고통스러운 순간에 자신을 비난하지 않고 자비로운 태도를 취하는 것이며, 너그러운 마음으로 자기 자신으로 바라 보는 것을 말합니다. 누군가가 나를 자애와 연민을 다해 바라보고 있다고 상상해 보는 것입니다. 갑자기 호흡을 길게 하게 되는 것은 기분탓일까요?


계단참은 필요하면 쉬어가면 되는 곳입니다. 체력이 떨어진 것도, 호흡이 가뿐 것도 다 살펴줘야 하는 것들이니까요. 그저 이를 악물고 나를 이겨 내고, 이겨내지 못하는 나를 질책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해요. 분명한 것은 계단을 올라가고 있다는 것이니까요. 내려갈 마음은 더더욱 없고, 올라가는 과정이라는 거니까요.


자기 자신에게 조금만 더 너그러워집시다! 일단 저부터요.


계단참 : "넌 좀 그래!"

계단참이 자꾸만 건네던 이 말이 질책인 줄 알았는데 드라마 <연인>의 장현 도령처럼 계단참도 츤데레였나봐요. 괜시레 기분이 좋아집니다. 다음 계단에 이제 한발 내딛을 수 있을 것 같아요.


힘내세요.


 


 


매거진의 이전글 계단 말고 엘리베이터 짜증!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