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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광쌤 May 29. 2023

INFP 율곡 이이는 아웃사이더?

실록에는 ‘P’로 끝나는 사람은 없지 않나요?     

질풍노도를 걷고 있는 아들내미의 질문으로부터 탐구생활은 시작되었다. ‘절대 그렇지 않을 것이다’라는 확신을 가지고서.

     

사람들은 ‘선조실록’을 제시하면  아마도 대부분은  이순신 장군을 떠올릴 것이다. ‘임진왜란'이 선조의 가장 강력한 연관 검색어이기 때문이. 하지만 실록을 반복해서 읽으면 여러 방면에서 ‘율곡 이이’ 선생님께 마음이 가게 될 것이고, 그가 바로 ‘J’ 보다는 인식형 ‘P’라는 생각이 들것이다.

    

“'P'를 찾았어! 이이가 잔다르크형’ ‘INFP’ 유형이네!”     

이이가 ‘P’라고요? 에이, 말도 안 돼요. 장원 급제를 9번씩 한 사람이 대책 없는 P일리 없죠.”

"뭬야?"      


‘T’로 무장한 아들의 도발에 ENFP 대표로 나선 내가 반론을 제기하려 하자 오케이 오케이~를 연발하며 자기 방으로 후퇴하는 척했다. TMI는 사절한다면서.


 “다 죽었어! 이눔SKI”

자료를 잔뜩 들고 아들 방으로 진격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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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이이는 15세 때 어머니 신사임당을 여의었다. 모친상을 당한 뒤 인간의 삶과 죽음에 대해 계속 고민을 하다가 방황을 하게 되었고 급기야 금강산 마가연에 들어가 ‘석담’이라는 법명으로 승려가 되었다. 하지만 1년 뒤 불교의 무념 무욕과는 맞지 않는다고 생각하여 하산하였고, 다시 성리학에 몰두한 뒤 ‘자경문’을 집필하였다. 뒤이어 등장한 많은 이들은 그가 한 때 승려였다며 꼬투리를 잡고 비난하기도 한다.


하지만 잔다르크형 INFP는 본인이 원하는 세계를 천천히 만들어 나가는 사람들이고, 보편적인 길보다는 각자만의 길을 찾아가야 한다고 믿기 때문에 그 따위에 절대 마음을 굽힐 리 없다. 그 고집에 대해 비난을 가할 수 없는 까닭은 유교에서 불교로, 다시 불교에서 유교로 유턴하며 만들어 낸 깊이 있는 깨달음의 세계 때문이다. 그 세계관은 곧, ‘조선 성리학’을 집대성하며, 이황과 함께 양대산맥을 이루게 하지 않았던가!          


<2>


이이는 침몰해 가는 세상 속에서 나라와 백성을 위해 구체적 현실에 관심을 쏟았던 인물이다. 눈에 보이는 진짜 보다는 원칙이나 이론을 강조하던 학자들과는 달리 ‘대공수미법’, ‘십만 양병설’ 등을 내세우며 현실 개혁에 앞장섰다. 또한 ‘경장(更張)’을 목놓아 주장하며 무너진 기강을 바로잡고 새로운 세상을 열기 위해 초심으로 돌아가야 한다고 했다.

물론 신랄한 그의 발언과 행보에 많은 이들이 불편했고, 이이는 내내 외로웠다. 많은 사람들이 존경했던 서경덕, 이황, 조식 등의 이론에 대해서도 거침없이 비난하기도 하다 보니, 그는 점점 아웃사이더가 되어갔다.

   

INFP는 옳은 행동을 위해 자신의 신념을 굽히지 않고, 냉철함과 뜨거움을 동시에 가지고 있는 사람들이라 때로는 자주 외롭다. 팩폭에 가까운 그들의 말을 아무도 들어주지 않아서 많이 외로워질 수도 있다. 그렇기 때문에 ‘천재’가 많은 INFP지만 신속한 결단력이 필요한 조직에서는 적응이 쉽지 않다고 한다.


이이가 살던 세상은 모두가 알다시피 곧 임진왜란이 터지기 직전이었기에 그의 ‘경장’은 피로감을 주었을 것이다. 듣고 싶은 말보다 바른말만 피곤하게 해 대는 이이는 그토록 애정을 쏟아내던 선조마저 손절케 하여 이내 탄핵되지 않았던가!      

참고로 ESTP는 INFP를 ‘찐따’라고 생각한다고? ‘모험을 즐기는 사업가’인 ESTP의 대표 주자를 선조라고 했을 때 퍼즐이 조금은 맞춰지는 기분이다. 선조가 이이를 무척 아껴주고 애정했다고 하는데, 그렇다면 그의 이야기를 다 들어줬어야 했다. 하지만 자기애 충만한 선조에게 달콤한 말 대신 조언만 해댄 이이는 진작에 아웃이었을지도 모르겠다. 선조는 속으로 이렇게 생각했을 것이다.

'그래 너는 떠들어라, 몇몇만 열심히 일해도 세상은 돌아간다.'


에잇! 자꾸만 인정하게 되는 진리가 하나 있는데 일은 결국 하는 사람만 하고, 공은 딴 놈이 받는 게 이놈의 세상인 것을... 이이는 열심히 하면 세상도 변할 것이라고 믿었던 조선에서 가장 유명한 INFP이다.


<3>


INFP는 조화롭게 사는 것을 원하여 분쟁을 막기 위해 노력하는 사람들이다. 그 때문일까? 이이는 붕당 간의 싸움을 반대하며 중립을 지켰다. 상대 당이라고 해서 전부 소인배들만 있는 것은 아니며, 사람은 각자 사상이 다를 수 있다고 주장했다. 붕당은 국가정치를 문란하게 하는 무리가 아니라 뜻이 맞는 이들끼리의 모임이라는 그의 생각에 정말 동의한다. 자기 당의 말만 맞기 때문에 진실도 오류요, 오류도 진짜라고 주장하며 나뉜다면 싸움 밖에 더 나겠는가? 하지만 이이의 노력은 실패했다. 결국 탄핵되었고, 붕당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고 눈을 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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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면 아웃사이더였던 이이는 실패한 인생일까?

 

그렇지 않다. 이이의 사상은 서인의 기반이 되었고,  숙종 때 문묘에 종사되었으며, 현재 5000원권 지폐 속에서 세상 미남인 얼굴로 웃고 계시니까 말이다. 다만, 임진왜란이 터지기 전 이이의 주장이 하나라도 관철될 수 있었다면 얼마나 좋았을까라는 생각은 든다. 그러기 위해서는 힘을 기를 때까지 약간은 굽힐 줄도 알고, 눈멀고 귀는 막아버린 사람들을 설득할 수 있도록 타협점을 찾아야 했다. 그리고 모든 것을 바꾸기가 불가능하다면 가장 중요한 문제 한 가지라도 해결하기 위해 집중하고 또 집중해야 했다.


'P'는 분명 미래에서 온듯한 사람들이 많다. 그렇기 때문에 너무 앞서가거나 이상해 보일 수도 있다. 아들의 말대로 지도자 급인 인물 중에는 'J'가 더 많아 보인다. 지극히 질서적인 사람들이니까. 하지만 그들에 의해 조선은 임진왜란으로 큰 위기를 맞았으니 그들만이 정답이 아니라는 것은 알 수 있다.


적어도 힘을 가진 'J'는 미래형 'P'의 말에 귀를 기울여야 하고, 'P' 또한 하나씩 하나씩 해결하기 위해 여러 가지 일을 벌이지 말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J만으로는 세상이 돌아갈 수 없기 때문에 실록 속에는 이이 선생님 말고도 수많은 P가 존재한다고 확신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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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때? 인정?"


'드르렁드르렁...'

언제부터 자고 있었던 것일까? 한숨 한번 쉬고 불을 꺼드리고 나오며 하늘에 기도해 본다.


"하느님, 우리 아들에게 공감능력 한 스푼만 넣어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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