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이야기 - 네 번째
수백 개의 향들이 피라미드처럼 쌓여있는 그 앞에서 나는 갈피를 잃고 눈동자를 파르르 떨었다. 무자비하게 진열된 빽빽한 향들이 어디 골라볼 테면 골라봐, 하는 투로 맹렬하게 나를 노려보고 있었다. 이 수많은 향들 중 뭘 골라야 하지? 알 수 없는 언어가 적힌 육각형의 곽을 집어 들고 입구를 킁킁거리며 일일이 냄새도 맡아보았으나 도무지 뭘 골라야 할지 알 수 없긴 매한가지였다.
이대로는 안 되겠다 싶어, 자신의 가게 앞에서 킁킁거리는 외지인에게는 관심도 두지 않는 직원에게 어떤 향이 좋을까 물었더니 자기도 잘 모른다는 대답이 돌아왔다. 그래, 여긴 멕시코였지. 그들의 철저하지 않음을 내가 잠시 잊었다. 결국 나는 가장 무난한 라벤더 향 하나를 골라잡았다. 향을 받쳐줄 나무로 만든 작은 받침 하나도 골랐다. 물건을 집어 들고 페소를 내미니 그제야 직원이 희미하게 웃는다. 참 솔직한 사람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