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6회) 제4장 혼돈의 계절 - 아, 대왕고래!
2017년 가을, 서울의 한 고등학교 교사 셋이 퇴근길에 괴한으로부터 습격당하는 사건이 발생했다. 이틀 사이에 벌어진 일이었다.
피해자들은 모두 피습 당시의 상황을 전혀 기억하지 못했다. 감전당한 듯한 강한 충격과 함께 의식을 잃었다는 것이 그들이 아는 전부였다. 그 결과, 둘은 허리디스크가, 다른 하나는 목뼈가 탈골되는 중상을 입었다. 범행은 CCTV도, 목격자도 없는 골목에서 이루어졌으며 범인은 어떤 단서도 남기지 않았다.
사건이 발생하기 한 달 전, 세 교사는 한 가지 사실에 연루되어 언론에 이름이 오르내린 적이 있었다. 헌재의 대통령 탄핵에 대한 판결을 앞두고 광화문광장에서 촛불과 태극기가 극한의 대치를 벌이던 때였다. 이들 세 교사는 학교 강당에 학생들을 모아놓고 촛불시위에 나기기 위해 시위 구호를 연습했다. 마이크를 잡은 교사가 ‘세월호!’하고 외치면 학생들은 ‘일곱 시간!’하며 따라 외치는 연습이었다.
그때, 3학년 남학생 하나가 조심스레 손을 들었다.
“선생님, 촛불시위에 나가는 문제는 저희가 선택할 수 있게 해주시면 안 될까요? 시위에 나가는 대신, 남아서 공부하고 싶은 사람은 공부하게 해주셨으면 합니다.”
교사는 그 학생을 날카롭게 노려보다가 ‘너, 일베지?’ 하고는, 이어서 ‘너 대학 갈 생각은 안 하는 게 좋겠다.’라고 했다.
학생의 부모는, 내신 성적이 대학 입학을 결정하는 현실에서 교사로부터 그런 말을 들은 아이가 공부에 집중할 수 있겠느냐며 학교 측에 항의했다. 그러나 학교는 이렇다 할 답변을 내놓지 않았고, 결국 그 사실은 유튜브 등을 통해 세상에 알려졌다. 그 교사들은 전교조 소속 교사였다.
교사 피습사건이 발생하기 며칠 전에 비슷한 사건이 하나 더 있었다. 광화문광장에서 촛불시위를 주도했던 한 시민단체 간부가 자택 앞에서 괴한에게 습격당한 사건이었다. 그의 경우는 치료를 받아도 다시는 일어서지 못할 정도의 큰 부상이었다. 이 사건들 모두, 경찰은 끝내 범인에 대한 단서를 찾지 못했다.
며칠 뒤, 서울시 교육청 인근의 한 카페 별실에서 다섯 명의 남자가 둥근 테이블을 가운데 두고 앉아 있었다. 원형 테이블에 넥타이를 맨 오십 대로 보이는 남자를 중심으로, 양옆에 점퍼나 등산복 차림의 사내들이 둘씩 마주 보고 앉은 모양새였다.
넥타이를 맨 남자가 반쯤 빈 찻잔을 들다가 도로 내려놓으며 말했다.
“이건 단순히 어느 고등학교 하나에 국한된 문제가 아닙니다. 모두 같은 생각이겠지만, 박 동지 사건도 범행 수법으로 보아 동일범의 소행이 틀림없어요. 그리고 무엇보다 범행 수법이 왠지 기분 나쁩니다.”
나머지 사내들은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고, 그중 누군가 한마디를 거들었다.
“자하문 쪽에서 제공한 단서가 유력해 보입니다.”
“그래요. 나도 그렇게 보고 있습니다.”
넥타이 남자는 몸을 앞으로 기울이며 말했다.
“이쯤에서 정리합시다. 위에서는, 생각보다 훨씬 큰 배후를 점치고 계십니다. 길게 끌지 말고 신속히 매듭지으라는 당부도 하셨고요. 우선 자하문의 그 동지와 함께 감시를 붙이고, 뭔가 걸리는 게 있다면… 얘기 한 대로 그 방향으로 처리합시다. 깔끔하게. 무엇보다 사람을 잘 골라야 합니다. 그리고 자주 연락합시다.”
넥타이 사내가 반 남은 찻잔을 내밀자, 나머지 사내들도 찻잔을 들어 서로 부딪혔다.
빈 찻잔을 테이블에 내려놓고, 넥타이 사내가 두 손은 벌리며 네 사람에게 번갈아 시선을 주었다. 그것을 신호로 그들은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날 저녁부터 일묵서예 주변에 수상한 인물들이 어슬렁거렸다. 그들은 길 건너편 이층의 미술전시실 창가에 자리를 잡고 일묵서예 쪽을 주시했다. 그러다가 동지가 옥상으로 올라오면 그를 향해 카메라 셔터를 누르기도 하고, 그가 요양병원으로 가면 그 뒤를 밟기도 했다.
며칠 후 저녁, 요양병원을 다녀오던 동지가 일묵서예 골목으로 막 들어섰을 때였다. 키가 크고 체격이 우람한 두 사내가 동지의 앞을 막아섰다. 사내들은 체격에 비해 발놀림이 놀랍도록 민첩했다. 어느새 동지의 등 뒤에도 두 사내가 모습을 드러내었고, 그들 뒤편, 조금 떨어진 어둠 속에는 왜소한 체격의 사내 하나가 조용히 서 있었다.
앞을 막아선 자들의 뒷짐 진 손에는 그립이 알맞은 크기의 쇠 파이프가 쥐어있었다. 뒤에서 다가선 사내들은 한 뼘 남짓한 비수를 손에 쥐고 있어 보안등 불빛에 번들거리는 칼날이 언뜻언뜻 드러나 보였다.
그때, 뒤편에 은신한 왜소한 사내가 ‘흠’하는 작은 목기침 소리를 냈다. 그 소리에 동지가 뒤를 돌아보는 순간, ’휙’ 소리와 함께 앞을 막아선 사내의 손에서 쇠 파이프 하나가 동지의 머리를 향해 빗 선을 그었다. 뒤이어 ‘푹’하는 둔탁한 소리가 들리고, 쇠 파이프를 휘두른 사내가 동지의 어깨 위에 상체를 걸친 채 미끄러져 내렸다. 그 순간 틈을 두지 않고 또 하나의 쇠 파이프가 동지의 머리를 향해 떨어졌다. ‘툭’,‘윽’하는 소리와 함께 그 사내 역시 동지의 어깨를 짚고 미끄러졌다.
동지는 몸을 한 차례 휘청하고는 담벼락에 등을 붙여 서며 오른손으로 왼쪽 팔을 감싸 쥐었다. 그는 왼쪽 어깨와 상박에 극렬한 통증이 밀려왔지만 내색하지 않은 채 칼을 든 두 사내를 노려보았다. 동지가 칼을 든 사내와 대치하며 통증이 가라앉기를 기다리는 사이, 바닥에 쓰러졌던 두 사내는 비틀거리며 일어나 제 편 쪽으로 물러갔다. 그때, 어둠 속에서 ‘삑’ 하는 호루라기 소리가 들림과 동시에 사내들은 빠르게 골목길을 빠져나갔다.
동지는 그날의 일을 입 밖에 내지 않았다. 두 번째의 쇠 파이프에 왼쪽 상박을 맞아 상처를 입었지만, 골절은 아니었다. 하등의 경계심도 없는 무심한 상태에서 당한 일이었다.
의식을 되찾은 재희는 다른 사람의 말에 반응하려 애썼다. 눈동자를 움직여 사람을 바라보지는 못했지만, 가까이서 응시하는 이와 시선을 맞추며 서로의 마음을 읽는듯해 보였다. 완벽히 밀폐된 공간에 작은 틈이 생겨 외부의 공기가 드나드는 길이 열린 것과도 같았다.
간호하는 방법도 달라져서 병실에는 늘 누군가가 그녀의 곁을 지켜야 했다. 동지 역시 이전보다 더 많은 시간을 재희 곁에서 보냈다. 하루 두 번 기력을 투사하였고, 틈날 때마다 시선을 맞추며 어린 시절의 추억을 얘기해 들려주었다. 동지의 말을 듣는 동안 재희의 얼굴에는 조금씩 표정의 변화가 나타났다.
“재희야, 네가 내 말을 들을 수 있어서 정말 좋다.” 동지가 자주 하는 말이었다.
(난 오히려 갑갑하고 힘든걸. 전엔 창밖을 내다보기도 했고, 오빠를 안을 수도 있었거든. 그때는 오빠의 마음속 생각까지도 읽을 수 있었어.) 재희는 지금의 상태가 오히려 힘들고 불만스러웠다.
그날은 궂은 날씨 탓에 인사동길에 발길이 뜸했다. 일묵서예가 바라다보이는 전통찻집 이층 창가에 한 사내가 앉아 줄곧 일묵서예 쪽에 시선을 고정하고 있었다. 노변의 가로등이 하나둘 켜지기 시작할 무렵, 골목길을 빠져나오는 동지를 확인한 사내는 테이블 위에 놓아둔 전화기를 집어 들었다.
동지는 두 시간쯤 재희 곁을 지키다가 평소보다 조금 늦은 시간에 요양병원을 나섰다. 그는 병원 정문을 나와 차도까지 대략 백 미터쯤 되는 이면 도로를 천천히 걸었다. 보안등이 켜진 골목은 사람의 통행이 불편하지 않을 만큼 밝았다.
이면 도로 중간쯤의 건물 모퉁이에서 한 사내가 슬며시 나타났다. 그와 동지 사이의 거리는 대략 20m쯤 되었다. 동지는 그자의 몸짓만으로도 자기를 기다린 자임을 직감하고, 뒤를 돌아보았으나 뒤에는 사람의 기척이 없었다. 사내는 두 손을 외투 호주머니에 꽂은 채 동지가 다가오기를 기다렸다.
인사동에서 괴한으로부터 습격당한 뒤로는 늘 경계심을 늦추지 않았던 동지였다. 그는 걷던 걸음 그대로 눈앞의 사내를 향해 다가갔다.
두 사람 사이에 서너 걸음 정도의 거리를 남겨두었을 때, 사내가 호주머니 속에서 손을 빼 동지의 가슴 앞으로 쑥 내밀었다. 사내의 동작에는 일말의 망설임도 없었다.
그 순간, 사내의 손끝에서 불꽃이 튀었다.
‘탕!’
저녁 10시 무렵, 첫 총성이 어둠을 찢었다. 동지의 몸이 휘청했다.
뒤이어, ‘탕!’
두 번째 총성이 울렸다. 동지는 다시 비틀했다.
그때 바로 옆 모퉁이에서 또 다른 사내 하나가 나와 동지 앞으로 다가왔다. 그가 비틀거리는 동지 곁으로 다가선 순간 동지는 온몸을 던져 총을 쏜 사내의 팔을 움켜잡고 함께 바닥으로 넘어졌다. 그때 한 번 더 총성이 울렸다.
동지는 쓰러지면서 발을 휘둘러 다른 한 사내의 다리를 걸어 넘어뜨렸다. 그리고 한 손을 뻗어 그자의 바짓단을 붙잡아 끌어당겼다. 동지는 먼저 쓰러뜨린 사내의 목을 한 손으로 꾹 누르며, 나머지 사내를 가까이 끌어당겨 목덜미를 움켜쥐었다.
“창수!”
절박한 외침을 끝으로 동지의 머리가 땅바닥에 툭 떨어졌다.
세 사람이 병원으로 옮겨졌을 때, 총으로 동지를 쏜 사내는 바로 시체실에 안치되었고, 창수는 응급처치 후 일반 병실로 옮겨졌다.
동지는 긴급 수술대에 올랐다. 자정을 넘긴 시간, 수술이 한참 진행 중일 때 진국과 인경이 병원에 도착했다. 수술은 꼬박 여섯 시간이 걸려 이튿날 새벽 5시가 조금 지난 때에야 끝났다. 총탄 셋 중 하나가 가슴에, 또 하나는 허벅지 근육에 박혔고, 나머지 하나는 어깨 근육에 상처를 내고 지나갔다. 가슴의 실탄은 한쪽 폐의 가장자리쯤에 박혀 있었다.
수술이 진행되는 동안 낯선 사내 하나가 병원 복도를 서성거렸다. 사내는 수술이 끝난 뒤에도 병원을 떠나지 않고 중환자실 주변을 맴돌았다. 그는 가끔 병원 건물 밖의 벤치에 앉아 담배를 피고는 다시 들어와 멀찍이서 동지의 병실과 주변의 사람들을 지켜보았다.
병실에는 진국과 인경이 동지의 곁을 지켰고, 희경과 미여 스님과 지선은 병원 휴게실에 앉아 뜬눈으로 밤을 새웠다. 동지의 제자 셋도 초조한 얼굴로 복도를 서성이고 있었다.
아침 여섯 시를 조금 넘긴 무렵, 진국이 다급하게 의사를 불렀다. 잠시 후 당직 의사와 간호사가 병실로 뛰어 들어왔을 때는 이미 사태가 심상치 않았다. 동지의 팔목에 연결된 바이털 장치의 파형이 불안하게 흔들리다가, 이내 몇 차례 플랫을 그린 뒤 뚝 멈춰 섰다. 의사와 간호사가 달려들어 전기 충격기로 심폐소생술을 시도하였으나 바이털 장치의 화면에는 어떤 변화도 나타나지 않았다. 의사는 동지의 호흡과 동공을 확인한 뒤, 조용한 목소리로 사망을 확인했다.
의사의 사망선고가 내려지고 간호사가 시트를 끌어 동지의 얼굴을 덮을 때 인경은 그 자리에서 혼절해 무너졌다. 의사와 간호사가 급히 그녀를 안아 들고 응급실로 달려갔다. 몇 사람이 그 뒤를 따랐다.
진국은 아들의 시신 위에 얼굴을 묻고 흐느끼다가 고개를 들어 화난 목소리로 외쳤다.
“내 아들과 단둘이 있고 싶소. 모두 이 방에서 나가주시오.”
잠시 후, 진국은 지선을 불러 사설 구급차를 준비해달라고 부탁했다. 반 시간쯤 지나 지선이 구급차가 준비되었다고 알리자, 진국은 아들의 시신을 구급차에 싣고, 막 의식을 되찾은 인경과 함께 병원을 떠났다. 마치 병원에는 잠시도 더 있기가 싫은 사람 같았다.
복도에서 동지의 병실을 감시하던 낯선 사내는 의사와 간호사가 병실로 뛰어가고, 이어서 병실에서 울음소리가 터져 나오는 걸 지켜본 뒤, 엘리베이터를 타고 일반병동으로 향했다.
사내는 창수의 병실이 보이는 곳에서 얼쩡거렸다. 얼마 후 병실에서 한 노인이 나와 화장실 쪽으로 가는 걸 확인한 사내는 병실 안으로 들어갔다가 금방 도로 나왔다. 창수의 아버지가 병실로 돌아왔을 때는 창수도 죽어있었다.
이틀 뒤, 동지는 목련당 뒤 스승의 무덤 곁에 묻혔다. 동해가 영정 사진을 들었고, 두 제자와 동지의 고교 친구들이 목련당에서 수련장으로 가는 낙엽 쌓인 언덕길을 따라 관을 운구했다.
취재진 사이에는 4년 전 대왕고래 여기자도 보였다. 장례가 끝난 뒤, 그 여기자는 동지의 무덤 앞에 꽃 한 송이를 놓고 잠시 서 있다가 돌아섰다.
장례식이 진행되던 중에 취재진 틈에서 한 사내가 휴대폰으로 사진을 찍었다. 그는 이틀 전 병원에서 동지와 창수의 병실을 감시하던 사내였다.
경찰이 살인 사건을 조사하였으나, 가해자와 피해자가 모두 죽어 입을 여는 사람이 없었으므로 기댈 곳은 오직 정황증거뿐이었다. 총으로 동지를 쏜 범인은 과거 조폭 세계에 몸담았던 자로 밝혀졌다. 하지만, 그와 동지 사이에는 원한 관계는 물론 서로 옷깃 한 번 스친 인연마저 드러나지 않았다. 창수와도 범행을 함께 할 만한 인과관계를 밝혀내지 못했다.
동지와 창수가 고교 동창이라는 사실이 유일하게 의미 있는 정황으로 떠올랐으나, 조사 결과 고교 시절 3년 동안 서로 말다툼 한 번 한 사실조차 찾아내지 못했으며, 인사동에서 재회한 후에도 서로 마음 상한 일은 발견되지 않았다. 결국 범행 목적도 동기도 성립하지 못한 사건이 되고 말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