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5회) 제4장 혼돈의 계절 - 음모의 끝
촛불시위 군중이 떼창으로 부르는 노래는 ‘이게 나라냐’였다. 작사·작곡자는 주사파 민족해방계열(NL,PDR)에 속한 자로 극좌 운동권 출신이며, 건국 이후 최대의 간첩 사건인 1992년 ‘조선로동당 중부지역당 사건’에 연루되었던 자였다.
“저자가 만든 노래가 촛불시위 주제가뿐 아니라 아주 웃기는 노래들이 많더군요. ‘김일성 대원수는 인류의 태양’, ‘전대협 진군가’, ‘Fucking USA’ 같은 노래도 만들었답니다.”
배흥수는 지인이 그자를 잘 안다며 길 교수와 커널 문이 몰랐던 얘기들을 들려주었다.
촛불시위를 주도하는 ‘비상국민행동’은 반미·반체제 성향을 노골적으로 드러냈다. 시위 군중은 지휘자의 선창에 따라 구호를 외쳤다.
“민족 반역자 박근혜를 처단하자!”
“자본주의가 문제, 사회주의가 답이다!”
“서울에서 미제를 몰아내자!”
“이석기를 석방하라!”
모두 북한의 대남 전략에 호응하는 구호들이었다. 하지만, 탄핵정국 5개월 동안 이런 사실을 보도하는 언론은 없었다.
국민 다수는 촛불시위대의 배후를 모른 채, 시위대를 ‘민주 세력’으로 믿은 나머지 스스로 그자들의 손에 쥐어진 흉기가 되기를 자처했다.
“저년이 나라를 부끄럽게 했다.”
“저년을 당장 끌어내 떼려 죽여야 한다.”
광기의 쓰나미에 휩쓸린 군중은 자신이 옳다고 믿는 신념의 근거가 무엇인지 따위는 관심 밖이었다. 광장에는 독선과 선동만이 독사의 머리처럼 치켜들었다.
여자 대통령의 목을 만들어 죽창에 꽂았고, 잘린 모가지를 공처럼 찼다. 반신상에 소복을 입혀 사약을 들이부었으며, ‘내가 이러려고?’라고 적힌 닭 모형의 목을 비틀어 쥐고는 경동맥에 비아그라 주사를 꽂아 넣었다. 그러면서 낄낄대고 웃었다.
그녀를 모욕하고 능멸하기 위해 그려진 음화들이 민중예술’이란 이름으로 점점이 늘어선 촛불 아래 음산한 모습으로 춤을 추었다.
어느 국회의원은 그녀의 얼굴을 서양 창녀의 누드화에 합성해 붙여 국회의사당에 내걸고 감상회를 열었다. 그들의 수장과 그의 참모들이 함께 그림을 보며 히죽거리는 장면이 뉴스의 전파를 탔다. 그리하여, 여자 대통령은 너무도 간단히, 누구나 돌을 던져도 되는 천한 여자로 전락하고 말았다.
2017년 3월 10일 오전 11시 21분, 여덟 명의 헌법재판관은 만장일치로 대통령을 파면했다. 이틀 뒤, 그녀는 ‘언젠가는 진실은 밝혀질 것’이란 말을 남기고 청와대를 떠났다. 3월 31일, 그녀는 서울구치소에서 알몸 검사를 거친 뒤 3.2평 독방에 구금되었다.
헌재에서 대통령을 파면한 날 저녁, 커널 문의 친구이자 예비역 육군 대령 하나가 “대통령은 억울하다!”라고 외친 뒤 어느 상가 옥상에서 몸을 던졌다. 방송은 그의 죽음을 보도하지 않았고, 몇 개의 신문에서만 작은 구석에 ‘그녀를 사랑한 노인 하나가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주변의 말에 따르면 노인은 오랜 지병을 앓았으며 가족 간 불화가 깊었다.’라고 썼다.
태극기를 든 시민은 ‘탄핵 반대’ 대신 ‘탄핵 무효’를 외치며 광장을 지켰다. 어느 날 시위 군중을 향해 날아든 돌에 노인 하나가 머리를 맞아 죽었다. 창수의 아버지도 그 자리에서 돌에 어깨를 맞았지만, 다행히 치명상은 면했다.
창수는 아버지를 몰아세웠다.
“아버지, 끝난 일이잖아요, 왜 이러십니까? 제 말을 왜 귓등으로 들으시는 겁니까? 아버지가 돌아가시기라도 했다면 도대체 저더러 어쩌라구요!”
아버지는 말했다.
“차라리 살고 싶지도 않다. 돌에 맞아 돌아가신 그분이 촛불을 들다가 죽었다면 어땠을까? 노제다 뭐다 하며 전국을 매고 다녔겠지. 억울한 죽음을 기린다며 광장은 눈물바다가 되지 않았을까? 언론도 난리법석을 떨었겠지, 그런데 신문도 방송도 쥐 죽은 듯 조용하구나. 네가 기자가 되었을 때 난 자랑스러웠다. 하지만 지금은 부끄럽기 짝이 없다. 이것이 언론이며, 기자냐? 사람 목숨이 촛불은 귀하고 태극기는 파리 목숨이더냐?”
“무모한 죽음과 억울한 죽음은 다르죠, 아버지!.”
“억울한 죽음? 그 억울함의 기준이 뭐냐? 언젠가 서해에서 불법 조업하는 중국어선을 단속하다가 우리 해경이 중국 어부의 낫에 찔리고 몽둥이로 맞아서 둘이나 죽었지. 우리의 바다를 지키려다 죽은 그들은 무모한 죽음이더냐, 억울한 죽음이더냐? 그때도 너희들은 해경의 죽음에 대해서는 한마디 말없이 오직 중국 어부들의 인권만을 들먹였어. 만약에 우리 해경을 죽인 자가 중국인이 아니고 미국이나 일본인이었다면 어떤 일이 벌어졌을까? 아마 강산이 흔들리고 나라가 뒤집어졌을 거야. 그게 촛불의 실체고 정체야. 물론 개중에 소수는 선동에 속은 선량한 시민도 있겠지. 하지만 그 역시도 죄야. 몰랐다고 지은 죄가 어디 가는 게 아니야!”
그는 격앙된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그리고 북한 핵 그거 어디를 겨냥한 거 같으냐? 미국? 일본? 말이 된다고 생각해? 그거 만약에라도 사용한다면 남한밖에 없어. 사용하지 않더라도 목적은 남한을 위협하기 위한 거 아니냐. 그런데도 촛불은 왜 조용하지? 오히려 북한의 핵무장을 막아보려고 애쓰는 미국과 한국 정부만 물어뜯고 난리지. 그게 너희들 촛불이야! 그런 자들이 이나라의 국민이냐?”
“아버지, 그만 하세요. 아버지 말씀대로 죄가 있기에 벌을 받아 탄핵당한 겁니다. 괜히 그렇게 된 게 아니잖습니까?”
“에라이, 등신 같은 놈…”
아버지는 그 한마디를 남기고 입을 다물었다.
[예들아, 미안하다! 고맙다!]
22017년 5월 9일, 탄핵을 주도했던 세력의 수장이 대통령에 당선되었다.
그는 두 달 전 3월에 대통령 후보로 나서며 팽목항을 찾아가 방명록에 이렇게 적었다.
“얘들아, 미안하다! 고맙다!”
‘미안하다.’는 말은 당연했다. 죽은 아이들과 동시대를 사는 어른으로서 또는 사회 지도층의 한 사람으로서 미안해야 마땅했다, 그러나 왜 고마웠는지의 속내를 아는 사람은 없었다.
누군가 쓴 글이 SNS상에 한동안 돌아다녔다. ‘죽은 아이들에게 고맙다! 라고 쓴 까닭은, 그 순간 차오른 감격을 주체하지 못하여 의도치 않게 본심을 드러냈을 뿐’이라고. ‘그냥 그자의 경박함" 때문이라고.
그해 봄은 자연도 경박하여 순리를 잃었다. 봄꽃들이 순서 없이 마구 피더니 5월에는 85년 만의 무더위로 산과 땅이 엿가락처럼 늘어졌다. 대통령 선거에 대한 조바심도, 자유민주주의 국가의 운명에 대한 걱정도 봄 더위 속에 녹아들어 무력했다.
새로 탄생한 정부의 사람들은 매우 특이했다. 그들은 태극기와 애국가를 존중하지 않는 듯했다. 어쩌다 실수로 유출되었는지는 모르나, 그들이 구두를 신은 채 태극기를 밟고 선 사진이 돌아다녔다. 국가 행사의 애국가 순서에서는 입만 달싹이며 속으로는 혁명 투쟁가를 부를거라고 사람들이 수군거렸다.
길 교수가 우려했던 대로 피바람이 불었다. 적폐청산이란 명분 하에 수많은 사람이 잡혀가 혹독한 조사를 당했다. 검찰에 불려 가 조사를 받던 중에 스스로 목숨을 끊은 사람만 다섯이었다.
파면된 대통령에 대한 재판은 빠르게 진행되었다. 그녀는 1주에 세 번씩 법정에 불려 나가는 살인적인 재판 일정을 감당해야 했다.
최 여인의 변호인은 태블릿 PC에 문서 수정 기능이 없다는 의문을 줄기차게 제기하며 검증을 요구했으나 특검은 이를 거부했다. 우여곡절 끝에 2017년 11월 21일에야 국립과학수사연구원에서 그 태블릿 PC에 문서 수정 기능이 없다는 감정 결과를 법원에 통보했다. 태블릿 PC 보도가 나가고 1년이 지난 뒤였다.
2018년 10.29일에 열린 법정에서 검찰 측 증인으로 나온 방송국의 취재팀장에게 판사가 물었다.
“태블릿 PC에 문서 수정 기능이 없다는 사실은 언제 알았습니까?”
“태블릿 PC를 입수하고 한 달쯤 지나서 알게 되었습니다.”
그는 대답을 모호한 말로 얼버무렸다.
그러자 판사는 콕 집어서 다시 물었다.
“2016년 12월 8일 1차 해명 방송 전에 알기는 알았나요?”
그러자 그는 마지못해 대답했다.
“예, 그때는 알고 있었습니다.”
그럼에도 잘생긴 미남 앵커와 여기자는 세간의 의문을 해명하겠다며 뉴스데스크에 나와서는 ‘그 여자가 대통령의 연설문을 하도 많이 고쳐서 태블릿 PC가 빨갛게 보일 지경입니다’라고 전국의 시청자를 향해 거짓말을 쏟아냈다.
천한 여자로 전락한 대통령은 24년의 징역형을 선고받았다. 대통령의 주 범죄는 뇌물죄였다.
법정에서 그녀는 ‘사람을 어쩌면 이토록 더럽게 만듭니까? 뇌물을 받는다면 몰래 받지, 전 국민이 다 아는 공익재단을 만들어서 출연을 받겠습니까? 재단 출연금까지 뇌물로 본다면 그동안 정부가 주도하는 일에 기업들이 성금 낸 것도 다 뇌물이라는 것인데 이것은 말이 안 되는 것입니다.’라고 했다.
하지만 법정은 귀 기울이지 않았다. 아니 귀 기울일 수가 없었다는 편이 옳을 것이다. 청와대에는 이미 새로운 대통령이 앉아 있는 마당에, 파면된 대통령의 유죄는 필요불가결한 요구 조건이었을 터였다. 특검은 그녀를 기소하며 표준법률용어집에 없는 ‘묵시적 청탁’과 ‘경제공동체’란 말을 창조해 냈다. 사람들은 대통령의 혐의를 유죄로 결론 내기 위해 어쩔 수 없었을 거라고 짐작했다.
한편, 여자 대통령의 비자금을 확인해 보이겠다며 독일로 출국했던 국회의원은 독일의 어느 호텔에서 사우나를 즐기며 쉬다가 사람들의 관심이 다른 곳으로 옮겨지기를 기다려 슬그머니 돌아와 집안에 칩거했다. 그가 기자들 앞에서 한 말들은 모두 그가 벌인 날조극이었다. 그런 사실들은 모두 한참 나중에야 밝혀졌다.
태블릿 PC 뉴스를 내보내 문제의 발단을 마련했던 앵커와 올해의 여기자상에 빛나는 여기자는 그 후 별일도 별말도 없었다. 방송국의 보도 담당 사장을 겸임하였던 잘생긴 앵커는 ‘어쩌면 태블릿 PC는 중요하지 않았는지도 모른다.’라는 아리송한 말로 그 사태를 마무리 지었다.
낡은 태블릿 PC가 씨앗을 뿌린 기막힌 음모는 결국 대통령을 끌어내려 감옥에 넣고서야 끝이 났다. 세상은 이미 그래도 되는 세상으로 바뀌어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