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4회) 제4장 혼돈의 계절 - 단식
길 태선 교수가 단식을 시작한 날은 2017년 3월 2일, 삼일절 기념집회를 마친 이튿날이었다. 그는 광화문 앞 빈터에 작은 텐트를 치고 단식에 들어갔다.
조금 떨어진 광화문 담장 아래엔 또 하나의 작은 텐트가 보였다. 길 교수 부인의 텐트였다. 태선은 아내가 곁을 지키는 걸 허락하면서 텐트 안에 과자 부스러기 하나라도 보여선 안 된다고 못을 박았다.
길 교수의 부인은 교수의 단식 텐트 안에 끓인 물을 담은 길쭉한 알루미늄 용기를 양쪽 구석에 하나씩 들여놓고, 교수의 무릎을 덮은 담요 속에는 보온병을 넣어 냉기를 막아주었다.
태선이 단식을 시작한 이튿날 오후에 커널 문과 배흥수가 교수의 텐트를 찾았다.
“교수님, 헌재는 아무래도 정치판과는 다르지 않겠습니까.” 커널 문이 조심스럽게 입을 뗐다.
“저들을 몰라서 하는 말입니다. 법리를 따져 판결하도록 두고 볼 자들이 아니에요.”
교수의 목소리는 단호했다.
“그렇다면 교수님의 단식 역시도 도움 될 리가 없지 않겠습니까?”
“누군가는 의로움을 위해 목숨을 걸었다는 기록 한 줄쯤은 있어야겠지요.” 교수는 쓸쓸히 웃었다.
다음 날 오후, 배흥수의 전화를 받은 동지는 길 교수에게로 가기 위해 집을 나섰다. 동지가 광화문을 향해 가던 그 시간에 한 노인이 단식 텐트의 문을 열었다. 깃이 납작한 오래된 스타일의 회색 반코트 차림에 헌팅캡을 쓴 노인은 이석홍이었다.
“왜 안 보이나 했더니 역시 와 있었군.”
마주 앉는 석홍에게 태선이 대뜸 한 말이었다.
“진즉에 왔지. 기대를 접긴 했지만, 기어이 이런 일까지 벌이는군, 길 선생!”
석홍의 시선에 짙은 실망이 어른거렸다.
태선은 아랑곳하지 않고 물었다.
“결과를 어떻게 보나, 이 선생은?”
“인용이지!” 석홍은 거의 고함을 질렀다.
“인용이라고? 이 사람아, 대한민국 헌재가 그렇게 만만한 줄 아나!”
태선의 목소리에도 노기가 뿜어나왔다. 하지만 이내 가쁜 숨을 몰아쉬며 눈을 내리감았다.
“며칠만 지나면 세상이 바뀔 거야. 두고 봐!”
“그래, 두고 보자구. 난 우리 헌재의 양심을 믿어!”
“길 선생, 예전에 내가 한 말 기억하지? 우정은 영원하지 않다고 한 말. 자넨 날 많이 실망시켰어!”
“왜, 이젠 나까지 어쩌겠다는 건가? 텐트 주변에 세워 둔 것들 박살 난 거, 자네 짓이야?”
“허허, 날 너무 우습게 보는군. 그런 시시한 짓은 안 해. 하지만 분명히 해두지. 만약에··· 만에 하나라도 탄핵이 인용되지 않는다면 그때는 자네에게 정말 많이 화가 날 거야.”
동지가 광화문 앞에 도착했을 때 텐트 주변은 소란스러웠다. 경찰의 차단선을 경계로 양편으로 갈라 선 일단의 사람들이 서로를 향해 온갖 쌍욕과 야유를 퍼부어대는 가운데, 길 교수가 탄핵의 부당성을 적어 세워둔 보드 판의 잔해들은 부서진 채로 바닥에 나뒹굴었다.
동지가 막 텐트의 문을 열려는데 안에서 한 왜소한 노인이 문을 젖히고 나왔다. 시선이 마주치자 두 사람의 입에서 동시에 ‘아’하는 작은 탄성이 새어 나왔다.
“생각지도 못한 곳에서 은인을 만났군요.”
노인이 두 손으로 동지의 손을 덥석 잡았다.
“네, 선생님 건강은 괜찮으십니까?”
“보시다시피!” 노인은 어깨를 으쓱 들어 보였다.
“안에 있는 사람과 볼일이 있어서 왔는데, 선생께서는 어떻게 오셨나요, 혹 저 사람과 아는 사인가요?”
노인이 손으로 텐트를 가리켰다.
“네, 제가 존경하는 분입니다.”
“아, 그러시구나.”
동지는 노인과 작별 인사를 나누고 텐트 안으로 들어갔다.
“정 사범께서 오셨소?”
힘겹게 인사를 건네는 교수는 며칠 사이에 영락없는 초췌한 노인의 모습으로 변해있었다.
“교수님, 집회에 나가셔서 연설하시는 편이 낫지 않을까요?”
“인제 와서 애국자인 양 떠들어 본들···”
교수는 입가에 실낱같은 미소를 보이며 말끝을 흐렸다. 그리고 방금 떠난 석홍을 가리키듯 텐트 입구로 시선을 보냈다.
“저 사람을 아시오?”
“네, 제가 팽목항에 갔을 때, 저분이 방파제 앞에 서 계시다가 갑자기 쓰러지셔서 제가 그곳의 임시병원으로 업고 갔었습니다.”
“그냥 내버려뒀으면 좋았을걸.”
교수는 입속말로 중얼거리고는 조금 머뭇거리다가 입을 뗐다.
“저자는 이십 대 청년 시절부터 남로당에 가담해 공산 사회주의 혁명 전사로 활동한 인물이오. 50년대 말, 자유당 시절에 교원 노조 결성에 앞장섰다가 수배자가 되어 일본으로 건너갔었고, 그 후 오랫동안 소식을 못 들어서 죽은 줄 알았는데, 알고 보니 지금까지도 최일선에서 활동하고 있었소. 그래서 밖으로는 알려지지 않은 인물이지.”
“그렇다면 왜 그냥 보고만 계시는 겁니까?”
“이미 때는 늦었어요. 들춰봐야 지금 우리 사회에서 활동하는 늙은 반체제 인사쯤으로 치부되고 말 테니까.”
“교수님께서는 많은 걸 알고 계시는 것 같습니다. 아직도 그런 쪽의 활동이 있는 겁니까?”
“물론이오! 이들 반체제 세력은 베를린 장벽이 무너지고 동구 권이 몰락하자 한때 혼란에 빠져 갈팡질팡한 적도 있었고, 일부는 전향하기도 했어요. 하지만, 그 후 좌파 정권이 들어서자 그중 몇 사람이 행정부의 요직에 기용되는 걸 시작으로 하여 서로 끌어주고 밀어주며 우리 사회 각계의 헤게모니를 빠르게 장악합니다. 우리가 상상하는 이상의 빠른 속도로. 그리고 이젠 ‘자신들의 투쟁노선을 민족해방 민중민주주의 혁명이라고 공공연히 밝히기까지 하고 있어요.”
“그들 모두가 아직도 공산주의자란 말씀입니까?”
“골수 공산주의자로부터 유사 공산주의자까지, 그리고 소수의 진보주의자에 이르기까지 스펙트럼이 다양해요. 그리고 이들은 카멜레온처럼 변색하며 정체를 숨기거나, 정치적 목적에 따라 서로 공생 관계를 형성하기 때문에 그중에서 몇 안 되는 합리적 진보를 분별해 내기란 극히 어려워요. 그러나 이들 모두 자본주의와 자유민주주의를 부정하고 있으며, 그중 소수가 부정하지 않더라도 온전히 동의하지도 않는다는 공통점을 갖고 있기에, 이들을 통틀어 반체제 세력이라 부르지요.”
교수는 길게 한번 숨을 내쉰 뒤 말을 이었다.
“체제 전쟁이 본격적으로 불붙은 건 2008년 광우병 파동이 시작입니다. 광우병 파동에서 가능성을 본 그들은 여자 대통령이 당선되자마자 작정하고 덤벼들었어요. 국정원 댓글 사건으로 첫 시동을 걸었는데, 때마침 세월호라는 호재가 터졌지요.”
“아, 세월호!” 동지가 입속말로 중얼거렸다.
“아무리 확대하여 해석해도 대통령이 책임질 일이 아닌 단순한 해상 사고였음에도, 저들은 온갖 유언비어를 날조하여 대통령 개인 책임으로 몰아갔어요. 전형적인 혁명투쟁 전술이지요 ‘미군 잠수함 충돌설’, ‘세월호 국정원 소유설’, ‘고의 침몰설’, ‘대통령의 사생활 의혹’까지 모두 선전 선동을 위한 조작극이었어요. 그런 조작된 유언비어로 국민의 분노를 끌어올리던 중에 이윽고 구닥다리 태블릿 PC 하나가 나타나 나라 전체를 뒤집어놓았지요. 언론 권력을 움켜쥔 그들에게 대중 선동은 식은 죽 먹기였으니까.”
“결국 탄핵으로 몰아갔군요.”
“저들의 원래 계획은 선전 선동과 폭력시위를 통해 대통령을 강제 퇴진시킨 후 ‘비상시국 회의’ 같은 초헌법적 기구를 세워 새로운 체제를 만드는 것이었어요. 작년 말 ‘전국 노동자 정치협회’의 글에 분명히 적시하고 있어요. ‘대통령 퇴진 이후는 반자본주의 혁명이며, 이는 곧 반제국주의 혁명이다.’라고 말이에요. 이 선전 선동에 정치인이 보조를 맞추고, 대중은 세뇌되어 그들의 손에 쥐어진 흉기로 변했지요.”
“그런데 왜 방향을 바꿨습니까?”
“예상치 못한 반격 때문이지요. 자유민주주의를 지키려는 시민들이 태극기를 들고 광장으로 나선 겁니다. 촛불과는 비교도 안 되는 압도적인 인파가 모여들었어요. 그러자 반체제 세력은 결국 불법을 포기하고 합법적인 탄핵으로 방향을 틀었고.”
그때 텐트 문이 열리며 커널 문과 배흥수가 들어왔다. 배흥수가 두 손으로 교수의 손을 잡으며 말했다.
“법리로 볼 때 헌재에서 기각될 가능성이 높다는 게 법조계의 분위기입니다.”
교수의 노쇠한 눈에서 강한 안광이 쏟아져나왔다.
“법리? 그걸 저들이 모를까요? 다 알아요. 하지만 국민은 저들을 몰라요. 저들은 상식의 틀로는 해석이 불가능한 존재들이에요. 우선 탄핵 절차부터 위헌이에요. 열세 가지 사유를 따로 표결하지 않고 일괄 표결했어요. 이건 어떤 법치국가에서도 있을 수 없는 일이지요. 그리고 특검은 조사도 시작 안 했는데 탄핵부터 진행했어요. 그리고 대통령이 돈 한 푼 챙긴 게 없고, 어느 정권에서나 하던 통치행위를 뇌물로 몰아가고 있어요. 헌재의 판결을 앞두고 저들이 어떤 공작을 꾸미고 있는지 우리는 모릅니다. ”
교수는 말하다 말고 허리를 앞으로 꺾어 가쁜 숨을 몰아쉬었다.
“교수님, 그만 말씀하세요. 이러다간 큰일 나겠습니다.” 배흥수가 교수를 말렸다.
힘겹게 고개를 든 교수는 천천히 낮은 목소리로 몇 마디 더 말했다.
“만약 탄핵이 인용되고, 저들이 정권을 잡는다면 바로 그날부터 내전은 새로운 국면으로 접어들 겁니다. 과거 동유럽의 전례로 보아, 정권을 쥐고 나면 이전의 모든 흔적을 부정하기 위해 ‘적폐 청산’이란 이름으로 대대적인 숙청이 시작될 것이고, 대북 정책은 물론, 헌법까지 바꿔서 체제 자체를 바꾸려 할 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