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악산 유령

(38회) 제5장 관악산 유령(幽靈) - 난 한때 남로당 당원이었소!

by 해암

난 한때 남로당 당원이었소!





커널 문과 배흥수는 길 교수를 찾아보기 위해 북촌로를 걸어 올라갔다. 대통령 탄핵에 대한 헌재의 선고가 있던 날 병원에서 그를 본 뒤, 어느새 해가 바뀌고도 한참이 지나 있었다.

헌재에서 대통령에게 파면을 선고하던 날 길 교수는 혼절하여 쓰러졌다. 급히 병원으로 옮겨 목숨은 건졌으나 늙은 육신은 기력을 회복하지 못하고 점점 고사 되어 갔다.


집에서 요양 중이던 어느 날, 길 교수는 석홍의 전화를 받았다.

“이 선생, 어딘가?” 길 교수는 목소리에 노기를 숨기지 않았다.


“일본이네. 탄핵이 인용된 건 나와 길 선생 모두에게 다행한 일이야. 그 말을 하고 싶었다네.”

석홍의 목소리에는 승리자의 여유가 묻어났다.


“왜, 날 해치지 않아도 되었다는 말인가?”


“그런 일이 있어선 안 되겠지!”


“어쨌거나 자네 다시는 이 땅을 밟지 마!”


“난 평생을 바람같이 살았어. 바람은 언제든 불지. 불어야 한다면.”


석홍의 말에 대꾸하지 않은 채 태선이 물었다.

“한 가지 물어봐야겠어. 팽목항에서 자네와 만났다는 인사동의 정 선생 말이야, 그 사람의 죽음에 대해 자네 할 말이 없어?”


“난 모르는 일이야!”


“만에 하나 상관이 있다면 내가 자네 목을 물어뜯고 말 거야.”


“많이 아꼈나 보군.”


“죽어야 할 사람은 따로 있는데, 세상이 너무나 질서가 없어!”


인사동길에서 율곡로를 건너 북촌로를 걸어 올라가던 중에 커널 문이 혼잣말을 했다.

“어쩌다 카페가 이렇게 많아졌나. 길가에 카페 천지네.”


“외국인 관광객들이 북촌 한옥마을을 많이 찾나 봐요.”
배흥수가 카페 안의 외국인들을 눈으로 가리켰다.


십 분쯤 걷다 오른쪽으로 가파른 경사로를 오르자, 북촌 한옥마을이 모습을 드러냈다. 비슷한 모양의 기와집들이 줄지어 늘어서 만들어낸 긴 처마 선이 고풍스럽고도 그윽한 아름다움을 연출했다. 골목의 끝자락, 능소화 넝쿨이 반쯤 가린 담벼락 밑에서 지팡이를 짚은 길 교수와 그의 부인이 나란히 서서 두 사람을 기다렸다.


한옥의 아담한 거실로 자리를 옮겨 길 교수가 물었다.
“두 분은, 일묵을 다녀서 오시나 봐요?”


“일묵 서예는 없어졌습니다.” 배흥수가 대답했다.


“아니 어쩌다가…?”


“정 사범이 그렇게 된 뒤로 지선 선생은 사는 낙이 없는 사람처럼 지내더니 이듬해 아들이 대학에 들어가자 집을 정리하고 어딘가로 떠났습니다. 마치 세상과 연을 끊고 싶은 사람처럼 말이죠. 정 사범에 대한 그녀의 마음이 예사 마음이 아니란 건 알았지만, 그 정도인 줄은 몰랐습니다.”


“그럼 두 분은 어디에서…?”


“종각 근처의 서예 교실로 옮겼습니다. 마침, 일묵 선생을 그곳에서 모셔가기에 저희도 따라간 셈이죠. 그리고 일묵서예 건물은 인사동길 정비 사업에 포함돼 곧 헐릴 예정입니다.”


“집도 사람도 그렇게 사라져 가는군요.” 교수는 처연한 얼굴로 천장 어딘가를 바라보다가 두 사람에게로 시선을 옮기며 입을 뗐다.

“정 사범을 생각하면 가슴이 찢어질 것만 같아요. 나 같은 늙은이가 대신 죽을 수만 있다면 백번이라도 그렇게 할 텐데.”


“저는 아직도 정 사범의 죽음이 믿기지 않습니다. 꼭 어딘가에 살아있을 것만 같습니다.” 배흥수는 말하는 동안 빠르게 눈동자가 젖어 들었고, 그것을 보이기가 싫은듯 두 사람에게서 시선을 비꼈다.


그러자 커널 문이 슬쩍 화제를 다른 곳으로 돌렸다.
“요즘 세상 돌아가는 꼴이 심상치가 않습니다. 대통령이란 자가 역부로 제주 4·3반란사건을 ‘통일정부수립운동’이라 하더군요. 무슨 일을 꾸미는듯한 신호로 보입니다.”


길 교수가 커널 문의 말을 받았다.

“그건 처음부터 그들의 슬로건이었어요. 유엔이 5.10 총선을 통해 남쪽만이라도 자유민주주의 정부를 세우려 하자, 단선.단정을 저지하라는 소련 공산당의 지령이 북로당과 남로당을 거쳐 제주 인민유격대장인 김달삼에게 전달되었지요. 그 결과 4월 3일 무장 폭동을 일으키며 내건 슬로건이 바로 ‘통일정부수립운동’이었지요.”


그 말을 하고, 길 교수는 고개를 숙인 채 보일 듯 말 듯한 긴 숨을 불어냈다. 잠시 그러고 앉았다가 지팡이에 의지하여 몸을 일으키더니 서재로 들어가 책 두 권을 들고나왔다. 하나는 표지가 푸른 새 책이었고, 나머지 하나는 오래된 노트인데 손으로 흔들면 부서져 흘러내릴 것 같은, 무덤에서 출토하였다고 해도 믿을 만한 낡은 것이었다.


책 둘을 탁자 위에 놓고 교수가 말을 시작했다.

“내가 이 긴 얘기를 간추려서 마무리할 수 있을지···”

교수는 마음속으로 할 말을 정리하듯 잠시 눈을 감고 앉았다가 입을 열고는, 노트를 한 장 한 장 넘기며 긴 얘기를 시작했다.

“대한민국은 이념과 체제가 다른 두 개의 국가가 존재하는 만큼 근현대사의 모든 사건에 대해서는 북한이 쓴 기록이 있고 남한이 쓴 기록이 있어요. 그리고 남한에 내려온 북한의 기록은 남한 좌익 세력의 손을 통해 남한 정서에 맞게 포장되어서, 남한에는 두 가지의 역사책이 공존하게 되었지요. 그러다가 1990년대에 접어들어 역사 뒤집기의 반란이 시작되었고, 그 결과 제주4.3반란 사건은 민주화운동, 민중항쟁, 통일운동으로 탈바꿈합니다.


해방 이전 제주도 사람들은 일본, 중국, 남한 내륙, 중앙아시아 등에 많이들 나가 살다가 해방이 되자 물밀듯이 돌아와 제주에는 15만 인구가 늘었어요. 그들 중에는 일본 군에 종군했던 군인, 군속, 징용 노동자 와 중국에서 유격전 경험을 쌓았던 사람들, 좌익 과격파인 팔로군 출신들도 많았어요. 아울러 해외에서 공산주의에 심취했던 지식인들이 대거 몰려와 사상적으로 백지상태인 제주도 주민의 머리를 쉽게 점령하였지요. 결과적으로 제주 인구 27만여 명 중 80%가 좌경화되었고, 이 중 6만여 명이 남로당의 당원이 됨으로써 비교적 빠르게 남로당의 조직이 견고히 구축되었어요. 더구나 제주도는 해방 후 44일 만에 미군이 진주하여 일본군으로부터 항복을 받긴 하였지만 미군정은 결사의 자유를 보장한다며 공산당을 합법화하고 공산주의의 확산을 방치한 상태였지요.


"아, 제주도에는 미군이 늦었었군요." 커널 문이 혼잣말처럼 반문하였고, 교수는 말을 계속했다.


1948년 2월 17일 결성된 제주도 민민전은 명예회장으로 스탈린, 박헌영, 김일성, 허헌, 김원봉, 유영준을 추대함으로써 제주도 남로당 인민군은 스탈린, 김일성, 박헌영의 추종세력임을 분명히 합니다. 제주도 인민유격대(인민해방군) 총사령관인 김달삼이란 자는 본명이 이승진으로 남제주군 대정읍 영락리 출신인데, 같은 제주 출신이며 남로당 중앙당 선전부장인 강문석의 가명인 김달삼을 이어받고 그의 딸 강영애와 결혼해요.


김달삼은 약 5백 명 정도의 인민유격대를 조직하고 일본군이 철수할 때 한라산에 매립한 무기와 탄약을 찾아내어 무장을 갖추는 한편, 팔로군 출신으로 하여금 그들이 중국에서 사용했던 유격전술을 가르치게 합니다.

유격대는 제주읍을 포함 8개 면에 조직되어 점차 확장되어 갔어요. 무장병력 500명 정도에 169개 마을에 10명씩 배치한 자위대 1700명 정도를 포함하여 2200명 규모에 이르렀지요. 자위대는 마을에 은신하여 유격대와 군중을 연결하면서 정보수집, 식량 보급과 마을의 반동분자를 극비에 처단하는 임무를 수행했어요. 그들은 남한이 곧 공산화된다는 신념을 굳게 가지고 제주도를 장악하기 위해 경찰과 행정력을 공격하였으며 그들에 반대하는 우익 인사를 학살하고 그들의 집을 불태웠어요. 그들은 경찰을 ‘검은개’, 경비대는 ‘노랑개’, 그들 노선에 반대하는 자는 ‘반동분자’로 호칭했어요.


교수는 힘이 드는지 잠시 숨을 몰아쉬었다가 말을 이었다.

1948년 4월 3일 새벽 2시, 김달삼은 320명의 무장병과 각 부락에 심어놓은 민애청과 남로당원 수천 명을 동원하여 89개 오름에서 일제히 봉화를 올리고, 민항가와 적기가를 부르며 새벽 제주 도민을 공포의 도가니로 몰아넣습니다. 12개 경찰지서를 싹쓸이하고 애국인사들을 일거에 처단할 계획을 세우고 무장 반란의 신호탄을 쏘아 올렸지요. 4월 3일 당일에 경찰지서 2개소를 불 지르고, 경관 등 파악된 애국인사 32명을 처단하였으며, 5명에게 중상을 입히고, 다수의 무기를 노획해요.


1948년 4월 3일부터 7월 23일까지 110일 동안 인민유격대는 31회에 걸쳐 지서를 습격하여 경찰관 74명과 경찰 가족 7명을 살해하고 23명에 상해를 입혔으며, 우익 민간인 226명을 살해하고 50명을 납치 상해하였어요. 그밖에 가옥 120채 소각, 전선 940개소 차단, 도로 170개소를 파괴합니다. 이 과정에서 인민유격대원은 3명이 죽고, 1명 생포되는 피해를 입어요.

선거 기간인 4월 18일부터 5월 10일까지 3주 동안은 거의 매일 투표소를 기습하고, 선거관리 요원과 공무원을 살해하고, 선거인 명부를 탈취하여 불태우고, 주민을 산으로 끌고 가 투표장에 가지 못하게 하는 만행을 저질렀지요.

1946년 11월 1일 모슬포에 국방경비대인 9연대가 창설되었으나 미군정이 이념 중립을 선포함에 따라 9연대에는 남로당이 좌익들을 대거 입대시켜 연대 병력 8백 중 4백이 좌익이었다니 국방경비대가 아니라 인민유격대의 2중대라 해도 할 말이 없는 형편이었어요.


이와 같은 내용은 4·3무장반란 세력들이 남긴 유일한 문서인 ‘제주도 인민유격대 상황일지’와 북한에서 발간한 논문에 있는 내용 그대로입니다. 그 결과 5.10 선거는 전국 200개 선거구 중 북제주 2개 선거구에서 무효 처리되었어요. 주동자 김달삼은 박헌영의 지령에 따라 지하 선거를 통해 52,350명의 투표지를 가지고 월북하여 북한으로부터 국기훈장 2급을 받고, 평양 애국열사릉에 묻힙니다.”


거기까지 말을 한 교수는 입술을 꾹 다물고 잠시 문밖의 어딘가를 노려보듯이 응시했다. 그러다가 목기침을 한 번 한 뒤 이어서 말했다.

“대한민국의 모든 공식 기록이 제주4.3사건을 반미, 반국가, 친북, 단선·단정 반대, 적화통일을 위한 폭동이라고 규정하고 있고, 북한마저도 ‘4·3폭동은 그들이 지휘한 5.10선거 저지 투쟁이며 폭력 테러 행위’라 인정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오직 대한민국의 좌파 정부만이 제주4.3사건을 미군정과 경찰의 횡포에 반기를 든 ‘민중항쟁’이라고 뒤집어서 우기고 있지요.

제주 4.3사건은 대한민국 건국의 시발점이었던 제헌 국회의원 선거를 방해하기 위하여 공산당이 일으킨 반란이었으며, 무장 유격대에 의해 많은 경찰과 공무원, 양민이 피살되었어요. 경찰과 군인이 폭도들을 진압하는 과정에서 피아 식별이 안 되는 가운데 양민의 피해 역시 불가피하였지만 제주4.3사건을 무장 폭동이 아닌 민중항쟁이라 규정하는 것은 터무니 없는 역사 왜곡이며 날조예요.

1948년의 제주 무장 폭동이 ‘현실 반란’이라면 2003년 12월 15일 좌파 정부가 내놓은 ‘제주4.3사건 진상규명 조사보고서’는 ‘역사 반란’인 셈이지요.”


커널 문이 교수의 말을 받아 말했다.

“맞습니다. 앞으로도 저런 식으로 근현대사를 교묘하게 비틀어 갈 겁니다. 얼마 전 5월에는 새로 쓴 역사 교과서가 배포되었습니다. 몇 가지 종류의 교과서가 있었지만, 결과적으로 저들 입맛에 안 맞는 교과서를 채택한 학교는 전국에 단 한 곳도 없다는군요. 이제 저들은 역사를 자기들 입맛대로 아무런 눈치 볼 일도 없이 가르치게 된 겁니다. 그리고 차마 책에 담기조차 민망한 것은 지금까지처럼 역사 선생의 입으로, 또는 따로 작성한 종이로 가르치겠죠.”


커널 문의 말에 이어 배흥수가 말했다.

“저들은 역사를 왜곡하는 것도 모자라서 국가 경제의 근간을 무너뜨리려 시도하고 있습니다. 안전하고 싸고 친환경인 원전을, 위험하고 비싸고 반환경이라며 거꾸로 뒤집어 말하더니, 멀쩡한 원전을 없애려고 미국은 원전을 80년 사용하는데 40년 된 우리 원전을 ‘세월호’라고 합니다.”


길 교수가 다시 입을 열었다.

“우리 원전 산업이 얼마나 눈물겨운 기적의 역사인지 아는 사람이 많지 않습니다. 원자력의 아버지는 이승만 대통령이에요. 1956년 이 대통령은 문교부에 원자력과를 설치하고 문교부 창고에 모여 원자력을 독학하던 물리학과와 공대 출신 수백 명을 국비로 미국에 유학 보내지요. 1인당 국민소득이 100달러도 안 될 때 한 사람에게 6천 달러가 들었다고 해요.

박정희 대통령 때 고리 1호기가 첫 가동에 들어간 이후 우리 원자력 산업은 비약적으로 발전합니다. 믿을 수 없게도 어느 분야에서는 미국을 능가했어요. 우리가 개발한 APR 1400 원자로는 세계에서 가장 안전한 것으로 우리만 만들 수 있으며, 미국엔 그걸 만드는 공장이 없다고 해요. 미국 기업이 수출 계약을 따내도 우리가 만들어줘야 한다는군요. 탈원전 정책만 없었다면 세계시장에서 대활약을 펼쳤을 텐데, 탈원전 이후 중국과 사우디에서 우리 원전 기술자들을 수백 명이나 빼 갔다고 하더군요. 사람을 해치는 일은 정파의 이익을 위해 반대편을 궤멸하는 과정이란 설명이라도 가능하겠지만, 이건 정말로 괴이한 일입니다.”

배흥수가 교수의 말을 이어받았다.

“취임한 지 얼마나 됐다고 국가부채는 단기간에 2천조로 껑충 뛰어 지금까지 쌓인 외채의 두 배로 늘어나고, 집값은 하늘로 날아오르고 있어요. 치솟는 실업률을 위장하려고 국민이 낸 세금으로 노인 용돈을 쥐여줘서 고용률을 높이고, 공공요금을 동결하는 임시방편으로 물가를 붙들어 매고 있어요.”

커널 문은 더는 말하기조차 싫은 듯 물끄러미 배흥수를 바라보았고, 배흥수는 다시 말을 이었다.

“그것만으로 안 되었던지 급기야는 국가 통계 자료까지 조작한다네요. 도대체 왜 저런 짓을 할까요? 그리고 항간에 떠도는 소문이 더 소름 끼쳐요. 북한과 경제력 격차를 줄이기 위해 남한 경제를 자해하고 있다는 고의 자해설마저 떠돌고 있어요. 오죽하면 그런 말이 나올까요. 그럼에도 언론은 핵심을 피해 가고요.”


커널 문이 조심스레 입을 열었다.

“백약이 무효인 듯합니다. 새로운 시대를 열어갈 리더가 필요해요. 진짜 영웅 말입니다.”


“걸출한 인물이 나타난다고, 이 나라의 깊은 병증이 치유될까요?”


배흥수가 묻자, 커널 문은 마치 화라도 난 사람처럼 목소리에 힘을 실었다.

“이순신이 아니어도 스물세 번 싸워 스물세 번 이기고, 세종대왕이 없었더라도 한글이 탄생했을까요? 다 사람이고 인물이지요! 세종대왕이 한글을 만들었고, 이순신이라서 이겼고, 이승만이 있었기에 해방 후 극심한 혼란 속에서도 자유민주주의 국가를 탄생시켰으며, 전쟁을 극복하고 한미동맹체제를 끌어냈어요. 아무것도 가진 게 없는 나라와 세계 최강국 간의 군사동맹이라니, 상식적으로 불가능한 일을 이루어낸 거지요. 그리고 박정희가 있었기에 수천 년 천형처럼 따라다녔던 가난을 극복하고 오늘날 세계 10대 경제 강국을 이룩한 겁니다!”


“경제적 성공과 함께 독재라는 그늘도 있었죠.”

배흥수가 짐짓 떠보는 투로 말했다.


대답은 길 교수가 대신했다.

“오늘날의 지도로 그 시대의 길을 찾으려 하기 때문이지요. 해방 당시, 이 나라에서 자유민주주의를 제대로 이해한 이가 이승만 말고 누가 있었을까요?. 우리 국민의 칠팔십 퍼센트는 사회주의 사상에 물들어 있었고, 그렇지 않은 사람도 그저 공산주의에 반대하는 정도였지요. 자유민주주의와 시장경제를 이해하는 진정한 우파 국민은 없었던 겁니다. 그런 열악한 토양에서 지도자는 국가를 세우고, 분단 상황을 관리하는 한편 세계 최빈국의 국민을 먹여 살려야 했어요. 그리고 왕정과 식민 시대를 살았던 국민을 자유민주 시장경제에 적응토록 일깨워야 했습니다. 지도자의 고충이 얼마나 절박했을지 상상되지 않는가요? 독재란 소리를 듣더라도 무지한 국민을 앞장서서 끌고 갈 수밖에 없었어요. 그렇게라도 하지 않는다면 나라를 지탱할 수 없는 부득이한 상황이었지요.”


“맞습니다.” 커널 문이 말을 받았다.

“빈곤국의 지도자가 ‘압축적 국가 건설’에 성공하기 위해서는 ‘강한 정부’와 카리스마적 리더십이 필요해요. 만약 이승만, 박정희 두 분 대통령이 민주주의 원칙에만 충실했다면 오늘의 한국이 존재할 수 있었을까요? 그건 절대 불가능한 일이에요. 하지만 남로당은 그 틈을 파고들어 지도자를 악마화하고, 순진한 학생들을 세뇌했지요. 소위 민주화운동이란 허울을 쓰고 공산주의와 주체사상까지 받아들이도록 몰아갔어요.”


“저들이 정권을 잡은 뒤 무슨 일을 벌일지는 이미 짐작한 일이지만, 앞으로가 더 걱정이에요.” 길 교수는 얼굴에 깊은 시름을 담은 채 입을 뗐다.

“저들은 좌파 정권을 유지하고 국회의 다수를 차지해야만 추구하는 목표를 이룰 수 있다는 걸 잘 알고 있어요. 문제는, 정상적인 선거로는 그게 어렵다고 판단할 경우예요. 그때는 선거마저도 혁명 전략 전술에 의지하려는 유혹을 뿌리치기 어려울 겁니다. 선거에 대한 신뢰는 민주국가 존속의 출발점이에요. 여기에 대한 국민의 신뢰가 무너지면 나라는 나락으로 떨어지게 되어 있어요.”

그 말을 한 뒤 교수는 입을 닫고 생각에 잠겼다. 두 사람 역시 말이 없었다.


다른 무언가를 예고하듯 한 묵직한 침묵이 이어질 때 배흥수가 입을 뗐다.

“왜 반체제 분자들은 불의한 행위를 하고도 양심의 가책을 느끼지 못할까요? 대개의 사람은 태생적으로 부끄러움이란 걸 알기 마련인데, 저들은 수치심 자체가 아예 없는 것 같거든요. 나랏빚을 단 2년 만에 배로 늘여 2천조로 만들어놓고도 반성도 사과도 없죠, 탈원전으로 원자력 생태계를 망쳐놓고도 반성이 없어요. 해수부공무원 피살사건에도 탈북어민북송사건에도 낯빛 하나 바꾸지 않잖아요.”


세 사람은 한동안 말이 없었다. 그러다가 교수가 천천히 입을 뗐다.

“내가 저들을 빨갱이라 한다면, 저들은 나를 잡아먹겠다며 덤빌 겁니다. 그러나 저들은 민주화운동을 하는 과정에서 ‘민주집중제’를 체득하고 그것에 적응되었다는 사실을 스스로는 잘 모를 겁니다.”


“민주집중제가 무엇입니까?” 배흥수가 급히 물었다.


“민주집중제란 레닌이 만든 공산당 조직 원칙으로서, 토론할 때까지는 민주적이나 결정된 뒤에는 그 결정에 철저히 복종한다는 원칙이에요. 공산주의자들은 노동자 농민에게 '민주집중제'를 주입합니다. 노동자와 농민은 공산사회의 주체이긴 하지만, 무식하기 때문에 모든 권한을 당에 위임해야 하고, 권한을 위임받은 당은 명령권자가 되는 것이지요. 노동자 농민은 당의 명령을 수행해야 할 의무를 지게 되는데, 당의 명령에 따르는 한 모든 죄는 사면되며, 때론 그 죄가 영웅시되기도 하지요.

따라서 공산주의자는 당의 명령에 따르는 한 무슨 일을 하더라도 잘못이 없습니다. 잘못이 없기에 당연히 수치심도, 반성도, 사과도 불필요해요. 그러므로 또 다른 죄를 아무런 가책 없이 저지르게 되고, 죄를 반복하다 보면 마침내 인간성마저 사라지게 되는 것이지요. 이것이 공산주의자의 속성입니다.”


“인간성이 사라진다고요?” 배흥수가 물었다.


“제자가 스승을 고발하고, 자식이 부모를 고발하는 패륜은 오직 공산주의에서만 볼 수 있는 풍경이에요. 자유 사회의 법은 부모와 자식 사이에는 범죄자 은닉죄를 묻지 않아요. 법도 천륜을 보호하고자 함이지요. 그러나 공산주의자는 천륜보다 당의 명령을 우선합니다. 공산사회를 구축하기 위해서는 그 대상이 친구이건 스승이건 부모 형제건 처단을 가리지 않으며, 오직 당의 명령에 충실하는 것만이 죄에서 벗어나는 길이라고 세뇌합니다.

적당한 예가 될지 모르겠으나, 1917년 볼셰비키 혁명 당시 공산당 당원 수는 당시 러시아 제국 인구의 약 0.02%에 불과하였고, 모택동의 공산당 혁명 역시 0.01% 미만의 공산당원으로 중국을 공산화하였어요. 물론 여러 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그런 극단적 야수성이 없었다면 불가능했을지도 몰라요.”


그때 교수의 부인이 교수를 걱정했다.

“여보, 오늘 너무 무리하고 계세요. 이젠 좀 쉬셔야 해요.”


“맞습니다. 교수님, 저희는 일어날 테니 좀 쉬시는 게 좋겠습니다.”

커널 문도 교수를 말렸다.


“알았어요. 괜찮아요. 이분들이 늘 오시는 것도 아니잖아요.”

교수는 부인을 향해 고개를 끄덕여 보였다.


배흥수가 말을 마무리하려는 듯 궁금했던 한 가지를 교수에게 물었다.

“교수님, 그 오래된 노트는 뭘 기록해 두신 겁니까? 그리고 교수님께서는 제주4.3사건과 같은 역사적 사실에 대해 깊이 알고 계시고, 또 언젠가 말씀하셨던 '교적'이란 것 역시 보통 사람이 알기 어려운 것인데, 그런 점이 참 궁금했습니다.”


교수의 얼굴에 웃음기가 사라졌다. 교수는 입을 꾹 다물며 깊은 생각에 잠긴듯했다. 그렇게 조금 어색한 침묵이 지나간 뒤 다시 얼굴에 웃음을 되살리며 교수가 입을 열었다.

“허! 이건 간단히 설명할 주제가 아닌 것 같소만.” 그러고는 조금 더 뜸을 들였다.

“사실, 내가 일부러 감추려던 건 아니오만, 난 한때 남로당 당원이었소!”


매우 놀라운 말이었으나, 커널 문과 배흥수는 가만히 눈을 내리깐 채 듣고 있었고 교수는 말을 이었다.

“1950년대 말이었어요. 난 경상북도 달성군 구지면 소재지의 조그만 국민학교에 교사로 발령받아 갔어요. 나의 두 번째 발령지였지요. 그곳에서 동갑내기 동료 교사를 만났는데 우린 둘 다 남로당에 가입한 동지임을 알고 급속히 친해졌지요. 당시 남로당에서는 교원 노조 결성을 추진하였는데, 정부의 허락을 얻지 못하자 교사들이 단식투쟁을 하였어요. 그러나 곧이어 군사정부가 들어서면서 그 동료 교사는 핵심 인물로 지목되어 일본으로 도주하였고, 난 학교를 그만두고 우연한 기회를 만나 미국 유학을 떠나게 되었지요.

남로당 활동을 할 당시 우리는 방학이면 가까운 비슬산의 한 사찰에서 지역별 연수 교육 같은 걸 했었어요. 그때 강사로 온 사람 중에 과거 제주4.3폭동 때 김달삼이 밑에서 인민유격대 상황일지 기록 등 서기 노릇을 하던 사람이 있었어요. 이자는 육지로 피신해 지리산 유격대에 합류하여 빨치산 활동을 하였는데, 우리들의 하계 연수 교육에 강사로 와서 제주 4.3반란 때 인민유격대가 저지른 일들을 생생하게 들려주었지요. 그때 기록했던 노트가 바로 이것입니다. 난 미국 유학을 떠나며 남로당을 버렸지만 언젠가 증거물이 될지도 몰라서 지금까지 보관하고 있었지요.”


커널 문과 배흥수는 신기한 물건이라도 보듯 노트를 조심스레 몇 장 넘겨보았다. 육십 년의 시간을 넘어 한 젊음이 영혼을 받쳐 기록한 글자들이 빼곡히 노트를 채우고 있었다.


“이 책은 최근에 어떤 사람이 쓴 책이에요.” 교수는 노트와 함께 가져나온 책을 살짝 들었다가 다시 탁자 위에 놓으며 말했다.

“이 책은 어떤 퇴역 군인이 쓴 책인데 우리나라 좌익의 뿌리와 북한의 대남 공작 역사를 물 흐르듯이 일목요연하게 정리하였고, 그 가운데 왜곡된 제주4.3사건의 진실을 명확한 논거를 바탕으로 바로잡고 있어요. 그리고 내가 알고 있는 제주4.3사건과도 놀라우리만큼 일치하였어요. 궁금해서 알아보니 이분은 이 책 말고도 광주 5.18에 대해서도 책을 썼더군요. 두 사건은 모두 역사학자들이 겁먹고 손을 못 대는 사건 아닙니까. 참으로 대단한 분입니다. 나는 장담컨대 훗날, 언제가 될지는 모르나, 우리 역사학계가 이분의 업적에 고개 숙일 날이 오리라 믿어요.”


길 교수와 헤어져 북촌로를 내려오던 중, 배흥수가 길 한복판에서 걸음을 멈추었다.
“이대로 나라가 망하는 건 아니겠지요?”


“글쎄요. 요즘 세상을 보면, 선이 반드시 이긴다는 법은 없는 것 같군요.”


“결국은 누가 더 집요하게, 더 오래 힘을 비축하느냐의 싸움인 것 같아요. 상대적으로 더 큰 힘을 비축한 쪽이 역사의 승자가 되었다가 언젠가 힘의 무게 중심이 바뀌면 다른 쪽이 역사의 무대를 장악할 테고, 결국은 선과 악이 번갈아 역사의 주인이 되는 거겠지요.”


“문제는,” 커널 문이 걸음을 옮기며 말했다. “역사가 선의 방향으로 돌아서기까지 국민은 지치고, 국가는 병들고, 어쩌면 많은 피를 흘리게 되겠지요.”


“그래도 종국엔 신이 선의 손을 들어주지 않을까요?”


“사람들은 역사의 흐름을 권선징악으로 읽고 싶어 하죠. 그러나 지난 몇 년 동안 우린 너무 많은 실망을 맞봤어요. ‘정의는 반드시 이긴다’며 희망을 품었다가, 번번이 배신당했죠. 기다리다 실망하고, 또 기다리고, 또 실망하고.”


“신의 존재를 부정한다는 말씀으로 들리는데요?”


“글쎄요. 신은 인간이 만든 선악의 기준에는 관심이 없는지도 모르겠어요. 그래서 초월 신이라 하는지도 모르지만.”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어느새 둘은 율곡로를 건너 북인사마당에 도착해 있었다. 배흥수가 한숨을 쉬며 돌의자에 털썩 앉았다.

“태초에 신이 세상을 설계했다면, 설계도가 있지 않았을까요?”


“누가 알겠어요. 양심하고는 만리장성을 쌓은 것들도 잘만 살잖아요. 대의를 위해 자기 삶을 희생한 분들도 목불인견으로 고달프게 사는 사람 많고요. 그럴 때 늘 하는 말이 있지요. 신께서 더 중히 쓰기 위해 시험에 들게 하셨다고.”


“하기야, 요즘 같아서는 신이 세상을 주관하는 기준이 뭔지, 그게 있기나 하는지 도무지 모르겠어요.”


“그 대답은 영원한 수수께끼로 남지 않을까요? 그걸 인간이 밝혀내는 날에는, 신은 신의 자리에서 내려와야 할지도 모르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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