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1일간의 좌충우돌 인도 네팔 여행기
마날리에 도착한 나는 단 하루만 숨을 돌리고 바로 델리로 내려가야 했다. 그 이유는 네팔의 카트만두 워크 캠프가 예정되어 있기 때문이었다. 환불을 요청했지만 애초에 워크 캠프의 취지였던 다국적 친구들과의 로컬 체험을 할 수 없다는 게 다시 생각해도 너무 아쉬웠다. 고민 끝에 인도에서 네팔로 지역을 변경하여 워크 캠프 활동을 하기로 했다.
그런데 네팔 축제기간 때문에 델리-카트만두 편도 항공권이 7배로 뛰었다. 바로 옆 나라를 40만 원을 넘게 주고 간다고? 내 사전에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어떤 고생을 자처하더라도 나는 육로로 국경을 넘어야 했다. 마날리에서 델리 가는 버스와 델리에서 네팔의 국경 근처 도시인 고락푸르로 가는 열차, 이렇게 두 개의 표를 예매했다.
마날리 버스 스탠드로 가기 위해 릭샤를 잡았다. 아직 초보 여행자 티를 벗지 못해 요셉 오빠가 릭샤꾼과 대신 요금 흥정을 해주었다. 앞으로는 정말 혼자 모든 걸 해결해야 할 텐데 괜찮을까? 걱정과 두려움이 밀려왔다. 요셉 오빠는 익살맞은 표정으로 불안해 보이긴 하지만 잘 다닐 수 있을 거라며 무슨 일이 생기면 연락하라는 말을 남겼다. 홀로 릭샤에 올라탄 나는 다시 미지의 세계로 떠나는 기분이었다.
7시간을 달려 델리에 무사히 도착한 나는 기대 반 걱정 반으로 오후에 예약돼있는 기차를 타러 갔다.
인도 기차는 여행자들 사이에서 악명이 높은 걸로 유명한데 열악하고 더러운 것은 기본이고 10시간이 넘는 장시간 연착도 다반사, 소매치기 때문에 화장실 갈 때도 짐을 비밀번호가 달린 체인으로 좌석에 묶어야 하는 등 조심해야 할 일이 많았다. 그렇기 때문에 한편으로는 인도를 진하게 느낄 수 있는 곳이었다.
놀랍게도 표에 쓰여 있는 도착 시간이 되자 기차가 다가오는 것이 보였다. 객실도 텅텅 비어 있었다.
이런 운이 있을 줄이야. 역시 난 운이 좋은가 봐.
서서히 속력을 줄이던 기차가 정차하자마자 승강장에 있던 사람들이 벌떼 같이 달려들었다. 순식간에 기차 안이 북새통이 되었다. 멍하니 지켜보고 있던 나는 어안이 벙벙했다. 단 3초 만에 이뤄진 광경이었다. 도저히 방금 전에 본 기차와 같은 기차가 아니었다.
정신을 차려 기차에 올라탔다. 앞뒤 합쳐서 20kg 육박한 배낭을 메고 사람들을 헤치며 예약한 좌석을 찾았다. 그러나 무질서와 혼돈으로 점철된 곳에서 예약한 좌석을 따지는 일만큼 의미 없는 일은 없어 보였다. 앉을자리는커녕 통로에 발 디딜 틈도 없는 후였다.
인도 기차를 너무 만만히 봤어, 앞으로 반나절은 꼬박 서서 갈 생각에 망연자실해하고 있을 때 제복을 입은 차장이 나타났다. 그곳을 지나가던 그는 까만 인도인들 틈 사이에 껴 있는 나를 보고 단번에 외국인임을 알아챘다. 그가 내게 티켓을 달라고 했다. 일순간 기차에 타고 있던 인도인들의 커다란 흰 눈동자가 모두 나에게 쏠렸다.
그는 티켓을 잠시 들여다보더니 굳게 다문 입술로 내 좌석에 천연덕스럽게 앉아 있는 남자에게 비키라는 손짓을 했다. 흰 눈들이 다시 그 남자에게 쏠렸다. 지목을 받은 남자는 운이 나쁘다는 표정을 지으며 일어섰다. 그제야 붙박이 같던 사람들도 모세가 홍해를 가르듯 그가 나가도록 비켜주었다.
차장은 내가 사람들 사이를 비집고 들어가 짐을 내려놓고, 안정적으로 착석할 때까지 지켜봐 주었다. 완전히 자리를 잡은 걸 확인하고서 떠났다. 떠나면서 본 그의 표정은 마치 인도의 시민 의식과 세계 평화를 수호했다는 엄숙하고 당당한 그런 표정이었다. 인도를 잠시 원망했던 나는 인도가 다시 좋아졌고 입가에는 옅은 웃음이 새어 나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