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르바이트도 하지 않고, 내가 하고 싶은 걸 하겠다며 빈둥거리기를 몇 달째. 이렇다 할 성과도 없고 오히려 하면 할수록 내가 뭘 좋아하는지, 뭘 하고 싶은 건지 더 모르게 되었다. 그림도 그려보고, 글도 써보고, 영상 편집도 해봤지만, 너무 욕심을 부린 탓일까. 지쳐서 아무것도 하지 않은 채 하루를 보내는 날이 점점 많아졌다.
이렇게 회피하는 날들이 이어지다 보니, 내가 좋아한다고 생각했던 것들이 사실은 타인의 의견 때문이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남들이 잘한다고 칭찬해 주는 것이 곧 내가 좋아하는 것이라 믿게 되었다. 그러다 보니 좋아하는 걸 꾸준히 해보자고 다짐을 해도, 결국엔 남들의 반응을 기다리게 되고, 예상했던 반응이 돌아오지 않으면 금방 식어버린다. 이런 상황이 반복될수록 '내가 정말 좋아하고 잘하는 게 있어서, 남들의 반응에 신경 쓰지 않고도 꾸준히 해나갈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라는 바람이 커진다.
몇 년째 해오던 인스타툰에도 흥미가 식은 지 오래다. 이미 많은 사람이 하고 있고, 그 안에서 내가 특별히 재능이 있는 게 아니라는 걸 깨달았고, 사람들과의 소통이 좋으면서도 부담스럽게 느껴졌기 때문이다. 게다가 이것도 지인이 "너 잘할 것 같아"라고 추천해서 시작했던 일이라, 내가 진짜 좋아했던 게 맞나 싶다. 진짜 좋아서 하는 거라면 이렇게 하기 싫은 날이 많을 리 없다고, 그래서 좋아하지 않는 것 같다는 결론에 이르렀다.
글도 비슷했다. 블로그에 심심풀이로 글을 올리곤 했는데, 애인이 글을 잘 쓴다고 말해준 뒤로는 본격적으로 써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애인은 오랫동안 글을 써왔고, 글을 업으로 삼고 있는 사람이다. 그런 애인의 칭찬을 들으니 괜히 진지하게 써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처음엔 재미있다고 느꼈고, 브런치에 글도 올려봤다. 그런데 이렇다 할 반응이 오지 않으니 흥미가 금방 식어버렸다.
유튜브도 마찬가지였다. 남들이 다 하니까 나도 해볼까 싶어 시작했고, 편집도 그리 싫지 않았는데, 시간이 갈수록 영상편집도 너무 못하는 것 같고 내 일상이 그리 재미있어 보이지도 않았다. 화면 속 나는 그렇게 매력 있는 사람도, 재치 있는 사람도 아니라는 생각만 커졌다. 결국 또 원동력을 잃은 채 어영부영해나가고 있다.
예전에는 하고 싶은 게 많고 어느 정도 성과를 내는 게 다재다능함이라고 생각했고, 나의 장점이라고 여겼다. 그런데 요즘엔 다재다능이 아니라 소재소능에 가깝다는 생각이 든다. 하고 싶은 건 많은데 특출 난 재주도, 능력도 없는 상태. 살면서 여러 경험을 해왔고 다양한 도전을 했던 것 같은데 남은 게 없다는 기분만 든다. 이렇게 살 바에야 하나만 뛰어나게 잘해서 그것만 파고들 수 있었다면 얼마나 좋을까. 한 가지에 깊이 몰두하기보다, 늘 이것저것 조금씩만 해온 탓에 이 나이 먹도록 뭐 하나 제대로 할 줄 아는 게 없으니 불안하고 답답하다.
자기 전 애인과 이야기를 나누는 게 하루 마무리 루틴이다. 보통은 그날 있었던 일을 이야기하거나 시답잖은 이야기를 나누곤 하는데, 가끔 고민이 나를 짓누를 때면 고민을 털어놓곤 한다. 이때의 나는 누구보다 비관적이고 냉소적이며, 부정적인 사람이 된다. 낮에는 작게 느껴졌던 고민들이 밤이 되면 거대해져 나를 짓누른다. 애인이 해주는 위로도 잘 들리지 않고, 나라는 사람이 너무 별로 같다는 생각만 든다. 이렇게 엉망으로 살다가 인생이 끝나버릴까 봐 두렵다. 예전부터 장난 반 진담 반으로 "일찍 죽고 싶다"는 말을 해왔지만, 돌이켜보면 죽고 싶은 게 아니라 이렇게 사는 게 싫었던 것 같다.
어린 시절 상상했던 어른의 삶은 좀 더 반짝이고 멋졌는데, 지금의 내 삶은 흐리멍텅하고 볼품없어 보인다. 원하지도 않았는데 태어나서, 지루한 삶을 이어가는 게 싫다. 태어난 의미는 내가 찾아가는 거라는 데 너무 늦었다는 생각만 들고, 찾고 싶은 의미도 없다. 스스로를 좋아하려고 애써봐도 부정적인 생각들이 몰려오면 다시 나를 싫어하게 된다. 어떻게 하면 고민의 굴레에서 벗어날 수 있을까? 평생 이렇게 부정적으로 살다가 이도저도 아닌 상태로 죽게 될까 봐 겁이 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