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거에 대한 꿈을 자주 꾼다

by 단우

어젯밤 꿈의 배경은 일본이었다.


왜 갔는지는 기억나지 않지만, 가라오케에서 일본 노래를 한참 부르다가 숙소에 돌아오니 일본 여행 1일 차 아침이었고, 여행을 해야 한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창밖 도로변으로 보이는 세븐일레븐을 보며, 일단 현금을 뽑아야겠다는 생각에 외출용 짐을 쌌다. 짐을 싸던 중 웬 종이가 있어서 보니 과거 일본인 친구였던 '카나'의 번호가 있었다. 그 종이가 있다는 것에 이상함을 느끼지 못하고, '내가 보관해두었나 보다!' 생각하며 한참 종이를 바라봤다. 이미 끊어진 지 몇 년 된 관계인데 '연락해볼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망설이다가 종이와 노트, 펜을 챙겨 외출 준비를 마쳤다. 근처 카페라도 가서 종이에 마음을 적은 뒤 문자로 옮겨 연락할 생각이었다. 원래 같으면 절대 연락하지 않았을 텐데, 왜인지 연락하겠다고 결심하고는 방을 나섰다. 그렇게 꿈에서 깼다.


잠에서 깼을 땐 괜히 마음이 복잡했다. 이제 와서 내가 할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없는데. 왜 이렇게 자주 일본에서 사귀었던 친구들이 꿈에 나오는걸까. 지난번에도 비슷한 꿈을 꿨었다. 함께 부활동을 하던 친구들과 우연히 일본에서 만나 오해를 푸는 꿈. 교환학생하던 학교에 찾아갔다가 만나 다시 친해지는 꿈 등...


꿈에서 깨고 나면 그들과 함께 웃고, 함께 부활동을 하고, 맛있는 걸 먹으러 다녔던 순간들이 생각난다. 그 시절로 돌아갈 수는 없지만, 내 무의식은 아직 그 장면들에 머물러 있는 것 같다.


관계를 끊은 건 나였다. 모든 건 한 사람과의 이별에서 시작됐다.


일본 교환학생 시절 대부분의 일본인 친구들은 부활동에서 만났고, 그 안에서 연애도 하게 되었다. 그러나 한국에 돌아오기 직전에 그와 헤어지게 되었다. 이제는 내가 이성으로 느껴지지 않는다는게 이별사유였다. 아직 그를 좋아했기에 한국에 돌아와서도 연락을 이어갔다. 그도 미안했는지 연락을 계속 받아주었는데, 몇 달 지나지 않아 장문의 연락이 왔다. 다른 친구와 사귀게 되었으니 연락은 그만해야 할 것 같다고. 그 친구는 부활동을 하며 가깝게 지냈던 친구 중 한 명이었다.


그와 아무 관계도 아니었던 나는 애써 축하한다고 말하며 마지막 연락을 했다. 헤어진 후에는 온갖 생각이 나를 괴롭혔다. '내가 좀 더 예뻤다면 나를 좋아해줬을까?', '그 친구를 좋아하게 되어 나와 헤어진 걸까? ','그 친구는 우리 관계 때문에 좋아하는 걸 숨기고 있었던 걸까?' 생각의 크기가 커질수록 배신감도 커졌다.


당시의 나는 졸업을 앞두고 있었기에, 졸업 이후 다시 그 학교로 가서 대학원에 진학할 생각도 하고 있었다. 일본어 공부를 열심히 해서 다시 일본에 가면, 그와의 관계를 다시 바로잡을 수 있을 거라 생각했고, 잘해주었던 일본인 친구들과도 더 가까워지고 싶었다.


그 소식을 듣고 나니 그와 엮여 있던 공간과 사람들까지 한꺼번에 지워내고 싶었다. 부활동의 단톡, 친구들과의 연락이 남아있는 라인도 지워버리고, 아무것도 보지 않고 듣지 않는 것을 선택했다.


'그 친구들도 어차피 나와 연락하는 게 불편할 거야.' 라고 합리화하며 개인적으로 연락할 생각도 하지 못했다. 나는 이방인이었으니까 다들 그 친구의 편을 들거고, 나를 나쁘게 생각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했다. 다른 친구들의 진심과 마주하는 것이 무서워서 1년 동안 쌓아온 관계들을 한순간에 무너뜨렸다.


그때의 나는 어렸기에 내가 받은 상처를 외면했고, 순간의 감정을 다룰 줄 몰라 상황에서 회피하기만 했다. 나를 지키고 관계를 유지하는 법을 알지 못했다. 많은 시간이 흘러버리고 나서야 '내가 좀 더 용기 내어 다가갔다면, 나머지 관계는 지킬 수 있지 않았을까' 하는 아쉬움이 들었다. 그 아쉬움이 자꾸만 뒤를 돌아보게 만들었다.


거의 8년이 지난 지금은 그들이 그리운 건지, 그들과 함께했던 시절의 '가능성으로 가득했던 나'가 그리운 건지 헷갈리기도 한다. 일본에서도 잘 적응하고 생활했던 나, 일본어로 사람들과 마음을 나누던 나, 근거 없이 잘될 것 같다고 생각했던 긍정적인 나.


현재의 내 모습과 삶에 확신이 없어서인지, 과거의 반짝이던 순간들이 더 자주 떠오른다.


그 시절이 꿈에 자꾸 나오는 건, 그만큼 제대로 해내지 못한 게 후회된다는 뜻 아닐까. 그렇다면 지금부터라도 다시 조금씩 시도해봐야 하는 걸까? 일본어 공부를 다시 하고 싶다는 생각도 여러 번 했다. 하지만 '요즘은 AI가 번역 다 해주는데 뭐하러 해', '어차피 이제 쓸 데도 없는데…' 같은 자기합리화를 하며 번번이 포기했다.


그게 정말 일본어가 필요 없어서였을까? 아니면, 빚이 바래버린 지금의 나와 마주하기가 싫어서였을까? 지금 돌아보면 나는 일본어가 싫어진 게 아니라, 그때의 나와 다시 마주할 용기가 없었던 것 같기도 하다.


마음의 여유가 생긴다면 일본어 공부도 다시하고, 단기 체류라도 좋으니 일본에서 다시 한 번 살아보고 싶다. 그때와 같은 배경이어도 상처받아 어쩔줄 몰라하던 나는 없다는 걸, 지금의 나로도 괜찮게 살수 있다는 걸 확인하고 나면 더 이상 그런 꿈을 꿀 일도 없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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