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리스마스를 기다리게 되었다

by 단우

내일이면 벌써 인생에서 서른한 번째 맞이하는 크리스마스다. 요즘엔 크리스마스가 다가오면 그저 설레고 즐겁다. 편안한 사람과 함께해서 그런 걸까.


초등학교 저학년까지 산타를 믿었다. 매번 산타할아버지는 내가 원했던 것과 다른 것을 선물로 두고 갔다. 원하는 건 장난감 세트였지만 머리맡에 놓여있는 선물은 파스넷이었다. 머리맡에 양말을 걸어둬야 한대서 평소에 신던 양말을 머리맡 서랍에 끼워두었는데, 크리스마스 아침에 확인했을 땐 양말 안에 새 공깃돌이 들어있었다. 그럴 때마다 선물을 받아서 기쁜 마음과 내가 원한 선물을 받지 못했다는 실망감이 교차했다.


어느 순간부터 선물을 두고 가는 것이 산타가 아니고 부모님이라는 것을 자연스레 깨닫게 되었다. 그럼에도 순수한 척 산타에게 편지를 썼고, 부모님이 혹시 보지 못할까 봐 친히 보여주기까지 했다. 그렇게 했지만 역시나 원하는 선물은 받지 못했다. 그래도 크리스마스 아침에 일어나 동생과 함께 머리맡을 확인하고 포장된 선물을 뜯어보는 기분이 좋아 크리스마스라는 이벤트를 기다렸다. 그런 기분들도 오래가진 못했지만 말이다.


동생은 원인불명의 간질로 병원을 오가다가 절에 맡겨졌고, 고부갈등을 겪던 엄마는 집을 나갔다. 그해 크리스마스 아침, 머리맡에는 아무것도 없었다. 아빠와 같이 선물을 준비할 엄마도 없었고, 나와 같이 선물을 풀어 볼 동생도 없었다. 남아있는 나의 동심을 챙기기엔 아빠도 마음의 여유가 없었을 것이다. 그 후로 더 이상 크리스마스에 양말을 끼워두고 선물을 기다리는 바보 같은 짓은 하지 않았다.


조금 더 머리가 크고 나서는 그 시절 사귀고 있던 남자친구에게 손수 뜬 목도리와 편지를 전해준다거나, 모은 용돈으로 친구와 크리스마스 선물을 교환하거나 하면서 크리스마스 분위기를 만끽하려 노력했다. 서로 주고받는 것이긴 했지만 그렇게라도 선물을 받을 수 있다는 게 좋았다.


시간이 흘러 성인이 되었지만, 크리스마스라는 이벤트는 이전과 별다를 바 없었다. 오히려 더 감흥이 없어진 것 같기도 하다. 성인이 되고 처음 사귀었던 사람과는 크리스마스 데이트랍시고 홍대에 있는 곱창집에 방문해 추위에 덜덜 떨며 웨이팅을 했었다. 지금 같으면 절대 하지 않을 일이지만 크리스마스 데이트라는 걸 처음 해봤기에 크리스마스에 연인들은 다 이런 불편함을 감수하며 데이트를 하는구나 싶었다.


그 데이트 이후 20대 초반은 크리스마스 시즌마다 솔로였다. 심심하면 본가에 내려가서 가족과 케이크를 먹고 tv를 보며 시간을 보냈다. 어쩔 땐 그대로 눌러앉아 새해 떡국까지 먹고 올라오기도 했다. 20대 중반즈음의 크리스마스에선 다시 남자친구가 있었던 적도 있었으나 엎드려 절 받기 같은 분위기에서 눈치 보느라 신경 쓰였던 기억만 난다. 그 사람이 선심 쓰듯 사준 인형. 그게 뭐가 그리 좋다고 행복해했는지. 얼마 안 가 그 사람과는 헤어졌다. 내가 너무 가족같이 느껴진다나 뭐라나.


그 연애를 마지막으로 3년 넘게 솔로로 보내며 20대 후반이 되었고, 29살의 가을날 지금의 애인을 만나게 되었다. 3개월 동안 썸 아닌 썸을 타다가 서로의 마음을 확인하고 크리스마스가 되기 10일 전 사귀기 시작했다. 크리스마스날엔 같이 장을 보고 자취방에서 맛난 걸 먹으며 함께 재미있는 영상을 보았다. 예상치 못하게 애인에게 편지도 받았다. 성인이 되고 나서 누군가에게 마음이 꽉꽉 담긴 편지를 받은 것이 처음이었을뿐더러 내용도 감동이라 편지를 읽다가 울어버렸다. 울면서도 그 상황이 너무 행복해 웃다 보니 우는 건지 웃는 건지 알 수 없는 이상한 표정이 되었다.


그렇게 크리스마스날 울었던 게 엊그제 같은데, 벌써 함께하는 네 번째 크리스마스를 앞두고 있다. 예전엔 크리스마스가 다가오면 24일에 잠들어 26일에 깨고 싶다고 생각했는데, 이젠 한 달 전부터 크리스마스 캐롤을 들으며 어떻게 25일을 보낼지 기대하게 된다.


크리스마스에 마실 와인은 벌써 몇 주 전에 사두었고, 곁들여먹을 방어회는 오픈런까지 해서 사 왔다.(둘 다 내향인이라 크리스마스이브 저녁은 집에서 보내기 때문에 맛있는 걸 쟁여두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 저녁에 방어회와 어묵탕을 먹으며 흑백요리사2를 볼 생각에 벌써 너무 설렌다. 크리스마스에 대한 설렘은 어린 시절에 다 두고 온 줄 알았는데, 두고 온 게 아니라 잠시 접어서 마음 깊숙한 곳에 넣어두었던 건가 보다.


내게 선물을 주는 산타할아버지는 이제 없지만 남은 크리스마스들을 함께할 선물 같은 사람이 곁에 있다. 이 사람 덕분에 앞으로의 크리스마스도 기대가 된다. 이렇게 크리스마스를 기다리게 되다니, 진짜 산타할아버지가 내게 몰래 주고 간 선물이 아닐까.


IMG_2573.JPG


작가의 이전글폴댄스 일기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