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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좋은음악수집가 Apr 08. 2023

아직 '죽음'을 생각하기엔 이르지만 Part. 2

산울림 7집 / 김창훈과 블랙스톤즈 - 독백

 습관이라기 뭐 하지만 아주 가끔씩 나는 그런 말을 한다.


"1년에 목숨이 8개 정도였으면 좋겠어."

"왜요?"

"뭔가 삶에 치일 때마다 자살 한번 하고 한 4일 정도 후에 다시 살아나게."

"???"

"대신 매년 횟수 초기화 되어야 해 안 그럼 안 해."

"??????"


정말 뚱딴지같은 소리겠지만 불과 몇 달 전에도 실제로 했던 말이고 일부는 공감대를 형성하기도 했고 일부는 나를 이상하게 쳐다보기도 했지만 어차피 친한 사람 아니면 절대 하지 않는 말이기도 하다. 내가 고등학생 때 봤던 김규삼 작가님의 명작 <입시명문 사립 정글고등학교>에 나오는 주인공 '불사조'가 딱 그러했다. 자살을 해도 다음날이면 아무렇지도 않게 살아났다. 어쩌면 이 만화를 봤기 때문에 내가 저런 허튼소리(?)를 할 수 있는 게 아닐까?


문제의 그 장면, 만화는 만화일 뿐! (출처 - 네이버)

 방학이 필요하다는 생각을 아주 가끔씩 한다. 초등학생 때부터 대학생 때까지 허락했던 그 방학! 하지만 대학생 시절의 방학은 사실 방학이라 할 수 없는 것이 그때는 근로장학생 신분이어서 방학에도 일을 했고 어찌 4년 내내 논스톱으로 다니면서 긴 방학이 주어졌을 때 하고 싶은 것을 못했다는 것에 아쉬움이 많이 남는다. 그래서 더더욱 방학이 필요하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그래서일까 안타깝게도 대부분의 직장인들은 약간의 휴가는 허락하지만 방학은 없다. (좀 주면 안되나요?)




 나는 성인이라는 타이틀을 달았을 때도 외로웠다. 이 외로움을 평소에는 가만히 있다가 집에 있으면 서서히 발동이 되어서 내가 뭘 해야 할지를 모르게 했다. 그래서 외로움을 어떻게든 몰려오지 않기 위해서 학교에서 막차시간까지 동아리방에서 사람들과 이야기를 나누기도 했고 막차시간이 지난 것도 모르고 떠들다가 집까지 걸어서 가는 날도 부지기수였다. 대학교 1학년 때, 외로움을 끊어내 보고자 연애를 한 적도 있지만 그건 서로의 외로움을 달래주지 못했다. 외로운 두 사람의 만남은 순식간에 불타올랐다가 금방 꺼지는 휘발유 같았다. 20대의 첫 번째와 두 번째가 그랬다. 둘 다 외로웠거나 한쪽이 외로운 사람이면 어떻게든 실패하더라. 그리고 또 외로움의 늪에 빠지는 길로 들어섰다.


나의 20대는 마음속에 있는 길이 너무 길었다. 반대로 걸었어야 했는데 그저 눈에 보이는 길로 계속 걸었던 것 같다. 그리고 너무 걸었다 싶어서 잠시 쉬었을 때 뒤를 돌아보니 내가 걸어온 길이 보이지 않았다. 외로움이 딱 그런 느낌이었다. 끝은 없는데 돌아갈 길도 없는 길이었다.




 브런치에 막 입문하였을 때 나의 소개글에는 '27세 클럽에 가입하려 하였으나 실패한 후'라는 문구를 적어놓았다. 27세 클럽은 만 27세에 요절한 아티스트들을 모아놓은 일종의 명예의 전당(?) 같은 것인데 지금 생각해 보면 아주 말도 안 되는 것이었다. 이루어 놓은 것이라고는 또래에 비해 아주 조금 일찍 '취업'을 했다는 것 하나뿐이었고 27세 클럽과는 아무런 관계도 없었다. 훨씬 이전에 음악을 하겠답시고 자작곡을 만들어 보긴 했지만 어째 천재와는 거리가 멀었다.


"원래 내가 27세 클럽에 드는 게 목표였는데... 벌써 내년에 스물일곱 살이네."

"어차피 들지도 못하는 건데 그냥 오래오래 사십쇼!"


그래 맞다. 나도 이제 30대! 어차피 27세 클럽의 가입은 오래전에 이미 물 건너갔다. 짐 모리슨 형님, 재니스 조플린 누님, 지미 헨드릭스 형님 등등... 가는데 좀 오래 걸릴 겁니다. 더 기다려주세요!





산울림은 이 시기에 서라벌레코드에서 대성음반으로 소속사를 옮기며 7집을 발표하게 된다. (1981년 작품)

 산울림의 7집은 여러 가지로 의미가 깊은 음반이다. 김창완의 두 동생 김창훈김창익제대를 한 후 다시 합류하였으며 이 음반을 기점으로 오리지널 멤버가 모인 것이다. 산울림 1~3집에 비해 연주력이 향상되었고 4~6집에 비해 조금 더 깊어진 음악세계를 보여준다. 그리고 산울림의 명반을 꼽을 때 1~3집이 차례로 나오고 7집이 항상 그다음으로 지목이 되는 것도 삼 형제의 합이 제일 잘 느껴지기 때문인 것도 한몫할 것이다.


7집이라도 버전이 두 가지로 나뉘는데 뒷면 좌측 하단에 '주식회사 대성음반'이 한글로 적혀있으면 반이고 한자로 적혀있으면 초반이라고 한다더라 (정확하지는 않다.) 그리고 수록곡 중 '청춘', '독백'이 버전이 조금 다르게 취입되어 있는 것으로도 구분할 수 있다고 하는데 내가 가지고 있는 버전이 기존에 알려진 것과 다른 버전이 수록된 음반이다.




위의 버전이 내가 가지고 있는 음반에 수록된 '독백'이고 아래의 버전이 세상에 많이 알려진 또 다른 버전이다.


난 이 곡에서 '나 혼자 눈감는 건 두렵지 않으나 헤어짐이 헤어짐이 서러워'라는 가사를 듣고 한동안 멍하니 있었다. 그래서 나는 죽음에 관해 이야기를 아주 가끔씩 나눌 때 이 가사를 항상 언급을 한다. 만약 세상을 떠나는 마지막 길에서 내 주변사람들과의 이별은 정말 그 자체로 서러울 것 같다. 더 이상 볼 수 없는 것에 대한 서러움, 다른 세상에서 기다려야 한다는 서러움, 더 이상 함께할 수 없음에 대한 서러움 등등.


그래도 마음속에 나를 기다려주리라 믿는다.


김창훈과 블랙스톤즈의 0집 <황무지>. 0집인 이유는 기존의 곡을 새로운 멤버들과 함께 재편곡을 했기 때문에 그렇게 칭한 것이라 한다.


 3형제 중 막내 김창익이 불의에 의한 사고로 세상을 떠나고 산울림의 재결성이 무산된다. 맏형 김창완김창완밴드를 결성하고 김창훈은 2009년에 솔로음반을 내기도 했다. 그러다가 2017년, 김창훈과 블랙스톤즈를 결성하여 이전에 가수들에게 제공한 곡들을 모아서 새롭게 편곡한 후 '0집'을 발표했다. 그리고 <나 홀로 뜰앞에서>로 히트를 한 김완선이 이 음반에서 피처링을 하여 기대감을 모았다. 그리고 기존의 곡들을 조금 더 화려하고 세련된 편곡을 거칠 수 있었던 것은 블랙스톤즈의 역할이 상당히 컸는데 밴드 '비 갠 후'에서 활동했던 기타리스트 유병열, 드러머 나성호, 베이시스트 김태일이 김창훈과 함께 블랙스톤즈로 태어난 것!


그리고 기타리스트 유병열은 윤도현밴드(현, YB)에서 활동하기도 한 굉장한 실력의 기타리스트라는 것도 눈여겨볼 만하다.


음반을 활짝 펼치면 이런 모습이 나온다. 언젠가 꼭 사인을 받아야지.


 언젠가 퇴근길에 이 곡이 흘러나온 적이 있다. 적당히 지는 노을을 벗 삼아 집으로 가는 길이 너무도 고독함 그 자체였고 요즘도 퇴근길에 이 곡을 일부러 트는 경우도 종종 있다. 그 짧은 시간 동안 느낄 수 있는 직장인의 느낌. '그래도 오늘 하루는 안전히 지나갔구나'하는 안도감과 어느 정도의 해방감. 아오! 나도 결국은 현실을 사는 사람이다.



김창훈과 블랙스톤즈 - 독백 MV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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