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화) 보랏빛 꽃, 내 마음 한켠에

오래 매달려 있던 작은 기억들

푸른 페인트가 군데군데 벗겨진 철문이 있는 집이었다. 손때 묻은 문고리와 녹슨 경첩에서는 오래된 집들의 모습을 그대로 보여주고 있었다. 철문의 페인트는 비와 바람에 씻겨 군데군데 벗겨졌고, 그 틈 사이로 녹이 스며들어 갈색 얼룩을 남기고 있었다. 문고리 주변에는 수없이 열리고 닫히던 날들의 흔적이 남아 있어, 이 문이 지나온 시간의 무게를 말해 주는 듯했다.

철문 옆에는 녹슨 TV 안테나가 가늘게 하늘을 향해 서 있었다. 붉은 녹이 묻은 기둥과 조금씩 휘어진 금속 막대들 위로 나팔꽃 덩굴이 담장과 지붕을 따라 천천히 흘러내리고 있었다. 덩굴은 처음에는 담장을 더듬듯 오르다가, 어느새 철문을 휘감고 위로 위로 길을 찾았다. 문살 사이로 파고든 초록 줄기는 담장의 틈을 타고 올라가더니, 마침내 안테나까지 붙잡았다. 세월에 삭아 갈색 녹이 번진 안테나는 마치 하늘을 향해 팔을 벌린 앙상한 뼈대처럼 서 있었고, 그 위를 나팔꽃 덩굴이 천천히 감아 올랐다.

기와지붕은 오랜 햇빛에 빛이 바랜 채 잔잔한 곡선을 이루고 있었다. 기와 사이사이에는 얇은 이끼가 내려앉아 있었고, 그 틈을 따라 나팔꽃 줄기가 부드럽게 뻗어 있었다. 둥근 기와의 굴곡을 따라 덩굴은 물결처럼 번져갔고, 어느 여름 아침이면 보랏빛 나팔꽃들이 지붕 위에서 하나둘 피어났다. 새벽 햇살을 받은 꽃들은 조용히 입을 열었고, 담장과 철문, 그리고 녹슨 안테나까지 온통 초록 잎과 보랏빛 꽃으로 뒤덮였다. 마당에 서 있으면 집 전체가 살아 있는 덩굴처럼 숨 쉬며 하늘을 향해 자라고 있는 듯 보였다.

그러던 어느 한여름, 갑자기 태풍이 몰아쳤다. 거센 바람이 담장을 울리고 철문을 덜컹거리게 했다. 안테나는 삐걱거리며 흔들렸고, 기와지붕 위에서 바람에 밀린 나팔꽃 덩굴이 사납게 뒤엉켰다. 비는 굵은 줄기가 되어 쏟아졌고, 보랏빛 꽃들은 바람에 찢기듯 허공으로 흩어졌다. 밤새 골목을 휩쓸고 간 폭풍이 지나간 뒤, 마당에 나가 보니 젖은 잎과 떨어진 꽃들이 여기저기 흩어져 있었다.

처마 끝까지 올라가 하늘을 향해 나팔을 불던 꽃들은 비바람에 꺾여 담장 아래로 뒤엉켜 떨어져 있었다. 어제까지만 해도 여름 아침을 환하게 열어 주던 그 푸른 덩굴과 꽃들이, 이제는 젖은 줄기와 시든 잎이 뒤섞인 채 마당 한켠에 수북이 쌓여 있었다. 하나하나 주워 담다 보니, 어느새 한 짐 가득이 되었다.

그 모습을 바라보고 있자니 마음 한구석에 허전함이 내려앉았다. 하루 사이에 무너져 내린 것은 꽃들만이 아니라, 여름 아침을 기다리던 나의 작은 기대와 기쁨도 무너졌다.

지금도 길을 걷다 담장을 타고 오른 나팔꽃을 만나면 그 마당이 문득 떠오른다. 그 시절 나는 나팔꽃을 참 좋아해서, 이사를 갈 때마다 새 집 마당에 씨를 심곤 했다. 담장과 지붕 끝을 따라 조용히 올라가던 그 보랏빛 꽃들은, 어쩌면 내 마음 한켠에 오래 매달려 있던 작은 기억들이었는지도 모른다.

Morning glories that had climbed to the edge of the eaves and blown their trumpets toward the sky lay broken by the wind and rain, tangled beneath the wall. Until yesterday, those blue vines and blossoms had opened the summer morning with brightness; now their soaked stems and withered leaves were mixed together, piled quietly in a corner of the yard.

As I stood looking at them, I felt that what had collapsed in a single day was not only the flowers, but also my small anticipation and joy that had waited for those summer morning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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