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속에 잠든 어린 여름의 시간1
여름 해가 유난히 길게 느껴지던 1970년대 어느 날, 남상면의 한 국민학교에서 오후 수업이 끝나자 아이들이 교실 밖으로 한꺼번에 쏟아져 나왔다. 교실 창문으로 스며들던 더운 바람과 칠판 위에 흩어진 분필가루를 털어내는 순간, 아이들의 마음은 이미 마을 아래로 흐르는 냇가로 달려가고 있었다.
그 시절 아이들의 책가방은 지금처럼 양어깨에 메는 것이 아니었다. 사각형의 하얀 천 한 장에 교과서와 공책을 가지런히 올려놓고 그 위를 접어 덮은 뒤, 빠지지 않도록 몇 번이고 돌돌 말았다. 그러면 길게 늘어진 천 꾸러미가 되었고, 아이들은 그것을 어깨에 둘러메거나 허리에 동여매고 다녔다. 책이 흘러내리지 않도록 단단히 묶인 천 가방은 몸에 착 붙어 있었고, 아이들이 뛰면 그 꾸러미가 등 뒤에서 툭툭 흔들렸다.
아이들은 그 천 가방을 멘 채 학교 앞 흙길을 달렸다. 길가의 키 작은 들풀들이 바람에 살짝 흔들리고, 발뒤꿈치에서는 고운 먼지가 가볍게 일어났다.
마을 길로 접어들기 전, 낮은 돌다리가 놓인 제법 넓은 냇가가 있었다. 커다란 자연석을 이어 만든 다리였는데 물이 많을 때면 돌 사이로 물살이 스치며 졸졸 소리를 냈다.
아이들은 다리 위에서 잠깐 멈춰 아래를 내려다보기도 했다. 맑은 물속에서는 자갈과 차돌이 햇빛을 받아 반짝였고, 작은 물고기 떼가 은빛으로 번쩍이며 지나갔다.
“야, 먼저 들어간다!”
누군가 외치면 아이들은 천 가방을 바위 위에 툭 던져 놓고 옷을 대충 벗어 돌 위에 올려두었다. 반바지 차림으로 냇물 속으로 풍덩 뛰어들면 시원한 물이 허리까지 차올랐다. 물살은 세지 않았고, 바닥에는 둥글고 매끈한 돌들이 깔려 있어 발바닥 밑에서 부드럽게 굴러갔다.
어떤 아이는 개헤엄을 치며 물 가운데로 나갔고, 어떤 아이는 바위 위에서 다이빙 흉내를 냈다. 웃음소리와 첨벙거리는 물소리가 냇가 가득 퍼졌다.
냇가 한쪽에서는 차돌을 찾는 아이들도 있었다. 물속에 손을 넣어 자갈을 뒤집다 보면 유난히 하얗고 단단한 돌이 나타났다. 아이들은 그것을 집어 들어 서로 부딪혀 보기도 했다.
돌은 막 물속에서 건져 올린 것이라 표면이 촉촉이 젖어 있었다. 아이의 손등에는 물방울이 맺혀 있었고, 손가락 사이에는 작은 모래 알갱이가 붙어 있었다. 그러나 아이의 시선은 오직 돌 하나에만 머물러 있었다. 마치 그 하얀 돌 속에서 무언가를 발견하려는 듯, 눈을 가늘게 뜨고 천천히 돌의 결을 살피고 있었다.
그 아이에게 차돌은 단순한 돌이 아니었다.
다른 아이들은 물고기를 잡고 있었다. 자갈 틈을 양손으로 막아 물길을 좁히다가 순간적으로 덮치면 작은 피라미가 손안에서 파닥거렸다. 잡았다 놓아주기를 반복하며 아이들은 환호성을 질렀다. 그 냇가는 아이들의 여름 놀이터였고, 하루의 끝이 시작되는 장소였다.
그러나 세월이 흐른 어느 해 여름, 큰 장맛비가 며칠이고 퍼부었다. 산에서 쏟아져 내려온 흙탕물은 평소의 냇가 모습을 완전히 바꾸어 놓았다. 큰 물이 한밤중에 마을을 지나며 냇가를 휩쓸고 지나갔다. 아이들이 놀던 자갈밭은 통째로 쓸려 내려갔고, 매끈하던 차돌과 돌다리 주변의 돌들은 흙과 함께 뒤섞여 사라졌다. 물길도 이전과는 다르게 넓어지고 깊어졌지만, 더 이상 예전의 그 냇가는 아니었다.
한참 뒤 어른이 되어 그곳을 다시 찾았을 때, 예전의 냇가는 더 이상 그 자리에 없었다. 아이들이 차돌을 찾던 자리는 거친 모래와 큰 바위들, 그리고 온갖 잡초들로 뒤덮여 있었고, 물고기가 숨던 자갈 틈도 보이지 않았다. 돌다리를 건너며 물장구를 치던 여름 오후의 풍경은 그 홍수와 함께 멀리 떠내려간 듯했다.
그러나 기억 속의 냇가는 여전히 맑다.
사각 천에 책을 싸서 어깨에 둘러메고 돌다리를 뛰어 건너던 아이들, 물속에서 반짝이던 차돌과 손으로 잡던 작은 물고기,
그리고 여름 햇살 아래 웃음이 넘치던 그 냇가.
세월과 홍수가 모습을 바꾸어 놓았어도,
어린 시절의 그 냇물은 마음속에서 지금도 조용히 흐르고 있다.
When a hand slipped into the water and turned over the pebbles, a stone unusually white and hard would sometimes appear. The back of the child’s hand was beaded with droplets, and tiny grains of sand clung between the fingers. Yet the child’s gaze rested only on the stone. As if searching for something hidden within that pale rock, the child narrowed their eyes and slowly examined its surface.
Perhaps, to the child, that white stone was not merely a ston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