극복 가능한 당연한 일.
무엇이든 할수 있었고, 무엇이든 하고 싶었다.
나는 하늘이 내린 행운의 사람인것 같았고
모든 세상이 나를 위주로 돌아간다고 생각했다.
그날 전까진.
한여름의 땡볕아래 땀이 비질비질 나던 어느날.
외할머니와 손을 잡고 비탈길을 내려가 작은 슈퍼에서
아이스크림을 한개 사고는
다시 올라가는 길에
그 인자하던 외할머니가 격하게 내뱉던 그말.
'망할놈, 두집살림도 모잘라 도박까지.'
사실 어린 나이에도 알고 있었다.
엄마는 아빠의 사업이 IMF라는 것 때문에
힘들어 졌다고만 얘기했었지만
엄마와 아빠의 싸움은 더 없이 커졌었고
고등학생이 되던 해에
엄마와 아빠는 어쩔수 없이 위장이혼을 할수 밖에 없다고.
진짜 이혼을 하는건 아니라고.
전화가 모르는 사람에게 오면 아빠는 집에서 살고 있다고 말하면 안된다는것과,
미행이 따라 붙을수 있으니 곧장 집으로 오라는 말도.
그때 당시 느낌이 기억에 없는걸로 보아
또 내 스스로 기억을 지웠으리라.
그리고는 2학년 마지막 소풍날.
엄마와 아빠의 이혼 재판장에서
내가 증언을 해야한다고 변호사 아저씨가 A4용지 한장을 건내 주었는데
그 종이를 외워서 실제 있었던 내용처럼 증언해야한다고 했다.
그때 당시 ,
너무 가엽고 가여웠던 우리 엄마를 위해서라면
나는 그 미션을 충실히 수행했어야 했다.
소풍대신 증언을 하러 가는 버스 뒷자리에서 우리 모녀는
손을 꼭 잡고 갔었는데.
엄마가 미안하다고 말 했던것 같기도, 아닌것 같기도.
하셨겠지만 또 기억이 나지 않는다.
그리고 나의 법정에서의 기억은
'웃으면서' 매우 잘, 수행했다는 기억만 남아 있는데 ,
나중에 친구들에게 그 얘기를 하면서 그때서야 펑펑 울었던 기억만 있을뿐.
그당시 , 다른 사람들이 나를 불쌍하게 보지 않게 하기 위해
정말 당당해야겠다, 라는 생각만 있었던것 같은데
그게 사실 말도 안되는 이야기임을 나 자신도 알고 있었던듯하다.
사실 나는
다른 사람들이 나를 보는 시선을
너무 많이 생각하고 살아오지 않았나.
그때 당시의 엄마 아빠가 어떤 마음 이었는지,
그리고 내 자신이 어떤 마음이었는지는
전혀 생각 나지 않는다.
그저 내가 그때 엄마의 나이에 비슷한 상황에 놓인 지금 ,
나는 또 사람들의 시선을 생각하고 있다는 것.
왜 내가 사람들의 시선에 예민해져왔는지는 모르겠지만
지금부터 해야하는건 그것에서 벗어나는것.
내가 나를 오롯이 보아주는 연습을 하는것.
가장 어려운 그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