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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엄마오리 Dec 03. 2023

독서가를 위한 종합 선물 세트

<서평가의 독서법-분열과 고립의 시대의 책읽기> 미치코 가쿠타니 지음

책을 좋아하는 사람들 중에는 타인의 독서를 궁금해 하는 유형이 종종 있다. 지하철에서 책 읽는 사람을 보면 어떤 책을 읽고 있는지 알고 싶어 하고, 공공 도서관의 반납 카트를 유심히 살펴보는 버릇이 있으며, 뉴스 중 전문가 인터뷰 장면이 나오면 배경의 책장에 무슨 책이 있는지 확인하느라 정작 그 사람이 무슨 말을 하는지는 뒷전으로 미룬다. (만화 <익명의 독서 중독자들> 이창현 글, 유희 그림) 다른 사람의 독서리스트에 관심이 많은 독자라면 ‘영어권의 영향력 있는 서평가’ 미치코 가쿠타니(1955~ )의 <서평가의 독서법 Ex Libris: 100+ Books to Read And Reread>(2023, 돌베개)에 눈길이 가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미국 코네티컷에서 태어난 가쿠타니는 일본계 미국인으로 예일 대에서 영문학을 전공했다. 1979년 뉴욕타임즈에 입사해 1983년부터 2017년까지 서평란을 담당했고 1998년 비평 분야 퓰리처상을 수상한 문학비평가이자 서평가이기도 하다. <서평가의 독서법>은 인터뷰집 <피아노 앞 시인>, 정치·문화비평집 <진실 따위는 중요하지 않다>에 이은 저자의 세 번째 책으로, 서평집으로는 첫 작품인 셈이다. 책에는 100권 이상의 소개가 실려있는데, 소설, 시, 그림책에서 회고록, 전기, 역사서, 과학 기술서 등 다양한 분야를 망라하고 있다. 그는 “정치와 사회의 분열로 쪼개진 세계에서, 문학은 시간과 장소를 가로질러, 문화와 종교 그리고 국경과 역사 시대를 가로질러 사람들을 연결할 수 있다”(p.24)고 말하며 “비평가보다는 책을 좋아하는 사람으로서 책을 소개”(p.22)하는 역할에 충실히 임한다. 


“훌륭한 문학작품이란 먼지투성이의 오래된 고전이 아니라 인간이 영원히 씨름해야 할 문제를 다루는 대담하고 창의적인 작품”(p.248)이라고 말하는 저자는 <모비딕>(허먼 멜빌)에서 <해리포터 시리즈>까지 종횡무진 아우른다. 책에 대한 오명(<모비딕>은 고등학생과 대학생 사이에서 고래에 관한 온갖 내용으로 터무니없이 꽉 차 있는 따분한 소설이라는 평을 얻었다(p.247))을 벗기기 위해 작품을 입체적으로 조망하며 가능성을 드러내 보이고, ‘문학사상 최고의 성장소설 중 하나’라는 칭호를 부여해 독자의 관심을 끌기도 한다(<해리포터 시리즈>). 어렸을 때 ‘처음 읽은 책’인 닥터 수스의 작품(<모자 쓴 고양이>등)에 대한 애정을 시로 표현한 챕터는 사랑스럽기까지 해 ‘독설 서평가’로 알려졌다는 사실이 새삼스럽다. 


하지만 서평가로서의 가쿠타니가 돋보이는 장면은 따로 있다. 「미국 민주주의의 토대」에서 <연방주의자 논집>과 <조지 워싱턴의 대통령직 고별 연설>을 통해 저자는 민주주의를 위협하는 파벌의 권력과 삼권 분립의 중요성을 역설하며 워싱턴의 목소리로 ‘갈등과 파벌의식이 신성한 유대를 약화시키려는 모든 시도의 조짐을 분연히 물리쳐야’한다고 말한다. 균열과 틈에 민감하게 반응하기를 촉구하며 “이성의 지배가 얼마나 빠르게 가장 광포한 잔인성의 승리에 자리를 내줄 수 있는지”에 대한 츠바이크(<어제의 세계>)의 경고를 상기시키기도 한다. 일찍이 저서 <진실 따위는 중요하지 않다>에서 트럼프 정부의 거짓과 혐오의 정치를 날카롭게 해부했던 저자는 이 책에서도 자신의 생각을 서평의 언어로 풀어 내며 ‘분열과 고립의 시대의 책읽기’에 대한 방향을 제시한다. 


‘1인 가미카제’로 불렸을 만큼 독설과 혹평도 주저하지 않았던 가쿠타니지만, 뉴욕 타임즈를 나온 후인 2020년에 쓴 이 저서를 읽다 보면 책에 대한 저자의 사랑을 느끼지 않을 수 없다. 원제는 ‘Ex Libris’, ‘~의 장서에서’라는 뜻인데 ‘독서법’이라는 제목은 왠지 자기개발서같은 느낌이라 책이 담고 있는 깊이를 전달하기엔 아쉬움이 있다. 중간 중간 본문의 인용문을 넣은 편집 또한 흐름을 끊기도 해 가독성을 떨어뜨린다. 하지만 이빈소연 작가의 독특한 그림과 질감을 강조한 표지 디자인은 책의 물성을 강조해 소장욕구를 자극한다. 1번에서 99번까지 이어지는 리스트에서는 새로운 책, 보고싶은 책, 다시 읽고 싶은 책을 찾아 볼 수 있다. 책을 좋아하는 당신, 가쿠타니의 이 저서를 100번째의 책으로 올리고 싶어질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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