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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엄마오리 Nov 15. 2023

서평가가 삶을 읽는 법

<서평의 언어>메리케이 윌머스 (돌베개, 2022)

『런던 리뷰 오브 북스(London Review of Books, LRB)』는 서평과 다양한 에세이를 싣는 영국의 잡지다. 우리에게는 런던 리뷰 북샵 에코백으로 더 잘 알려진 듯하지만 1979년에 창립되어 격주로 발행되고 있는 이 서평/문예지는 유럽에서 가장 성공적인 문예 잡지 중 하나로 꼽히고 있다. 공동창립자인 메리케이 윌머스(1938~ )는 1992년부터 2021년까지 LRB의 편집장으로서, 이후엔 컨설팅 편집자로 현역에서 활약하고 있는 베테랑 저널리스트다. 그의 에세이 <서평의 언어>(돌베개, 2022)는 1972년부터 2015년에 걸쳐 『런던 리뷰 오브 북스』를 비롯한 다양한 매체에 실렸던 산문을 엮은 책이다. 


책의 원제는 <Human Relations and Other Difficulties>로, 서평을 엮은 책이라기 보다는 책을 통해 인간을 읽는 통찰이 담긴 에세이라고 말할 수 있다. 영국의 소설가이자 저널리스트인 존 랜체스터는 서문에서 ‘젠더 자체보다는 젠더들 사이의 관계, 특히 남성의 기대, 남성의 시선, 남성의 권력이 여성에게 미치는 영향’(p.12)에 대한 윌머스의 관심사가 책을 관통하고 있다고 소개한다. 저자는 ‘좋은 어머니’라는 관념의 불편부당함에 대해 털어놓기도 하고 (‘나는 황폐해져갔다’) 어린시절의 기억과 자신의 먼 친척을 통해 러시아 장군의 회고록을 소개하기도 한다(‘브뤼쉘’, ‘먼 친척’). 앨리스 제임스, 퍼트리샤 허스트, 메리앤 무어, 조앤 디디온 등 (영국)독자에게 잘 알려진 유명인의 삶을 통해 ‘인간관계와 그밖의 다른 어려움’을 피력하기도 한다. 


편집자로서 화제성을 가진 책을 선정하고 그에 대한 서평을 통해 윌머스는 자신의 생각을 거침없이 설파하는 동시에 스스로에 대한 날카로운 분석 또한 멈추지 않는다. “나는 우리 세대 남성들에 대한 불만을 수없이 토로했다....(중략) 나는 1960년대 후반 자매들의 의식 고양에 함께하지 않았다. 당시 나는 기혼이었으며 의식이 1밀리미터라도 더 성장하면 정신이 나가버릴 것 같았기 때문이다.”(p.285) 저자가 쓴 서평은 다양한 삶을 살았던 여성들에 관한 책이 많은데, 인물과 사건, 세간의 관심과 평가 등 책의 안팎을 아우르며 서평가로서, 여성으로서의 시선을 견지한다. <유혹에 관한 앤솔러지>와 <지하세계로의 여행>에 대한 서평인 “약속들”에서는 20년 전 쓰여진 한 서평을 예로 들며 외모에 대한 성차별적 발언을 언급한다. “크리스토퍼 릭스는 오늘날의 무한 경쟁이 평범한 외모를 가진 여성에게는 부당하다 여기기에 성해방에 반대한다고 했던 게 떠오른다. (평범한 남성의 경우는? 여성은 별 볼 일 없는 놈팡이로도 만족한다는 건가?)”(p.261) 성차별이라는 오명에 반박하는 작가의 투서에 대해 윌머스는 유감을 표하면서도 “우리가 오늘날 살아가는 세상도 남성의 세상”이라고 일침을 놓는다. 


“어떤 지면에 실린 것이건, 아마 서평을 읽는 사람들 대부분은 이 서평에서 다룬 소설 자체를 읽어보는 일이 없을 것이다. 이런 점에서 서평은 소설의 대체물로서, 서평을 읽는 이들에게 서평가의 경험이라는 또 하나의 차원을 더해준다.”(p.98) 장편소설의 서평에 대한 윌머스의 의견은 냉소적으로 느껴질 수도 있지만 사람들의 서평을 대하는 태도에 대한 날카로운 분석으로도 읽힌다. 이러한 관점은 이 책에도 여지없이 해당하게 되는데, 본문에 등장하는 책들 중 번역된 작품이 거의 없는 것은 아쉽지만 굳이 이 책들을 찾아 읽지 않더라도 서평가로서의 윌머스를 이해하는 데는 무리가 없을 것이다. (그래도 역시 번역된 책이 적은 것은 짙은 아쉬움을 남긴다.) 산문에 종종 등장하는 낯선 인물들은 영국식 문화에 익숙하지 않은 독자에게는 결점으로 작용할 수 있지만, 배경지식이 있다면 한층 재미있게 읽을 수 있다. (인터넷 검색을 권장한다.) 곱씹어 읽어야 통하는 영국식 유머 또한 씹을수록 맛이 나는 칡뿌리 같은 느낌이다. 이다혜 작가는 ‘여성의 삶과 문학의 세계에 대한 이 책의 수많은 편린’을 보며 메리케이 윌머스를 ‘든든한 선배’로 호명했다. 책으로 세상을 읽었던 선배의 등을 보며 그의 걸었던 길을 따라가 보는 것도 좋은 독서 경험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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