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9년생 시민이 겪은 두 번의 파면과 그 너머
사진 출처: 4일 MBC '뉴스특보'의 한 장면.
출처 : 미디어오늘(https://www.mediatoday.co.kr)
나는 1979년에 태어났다. 독재자가 총탄에 쓰러지던 그 해, 대한민국은 한 시대를 끝내고 또 다른 시대를 준비하고 있었다. 하지만 그 끝과 시작의 경계는 늘 불분명했다. 학교에서는 애국과 질서를 가르쳤고, 거리에서는 눈물과 구호가 흘러넘쳤다. 민주주의는 교과서에 있었지만, 내 일상 속에서는 좀처럼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나는 386세대의 그늘 아래 자랐다. 선배들은 거리에서 싸웠고, 우리는 그들이 흘린 피와 땀 덕에 자유로운 공기를 마시며 자랄 수 있었다. 하지만 시간이 흐르자 민주주의는 점점 더 말하기 어려운 단어가 되어갔다. 사람들은 정치에 환멸을 느꼈고, 나 역시 점점 냉소의 언어에 길들여져 갔다. 어느새 우리는 ‘그래도 그나마 나은 사람’을 고르는 법에 익숙해졌고, ‘민주주의’는 더 이상 설렘이 아니라 체념의 관성처럼 느껴졌다.
그러던 어느 날, 2013년. 내가 서른다섯이 되던 해였다.
놀랍게도 1960~70년대의 독재자의 뒤를 잇는 그의 딸이 대통령이 되었다. 사람들은 그 시절을 미화했고, 경제 성장을 말했다. 하지만 나는 곧 알게 되었다. 그녀의 정권 아래에서 국정은 사유화되었고, 권력은 사리사욕에 종속되었다.
수많은 시민들이 분노했고, 광장으로 모였다. 20만, 50만, 100만… 촛불은 거대한 파도가 되어 광화문을 뒤덮었다. 그리고 2017년 3월 10일, 헌법재판소는 그녀를 파면했다.
나는 그날, 대한민국이 마침내 민주주의를 향해 한 걸음 더 나아갔다고 믿었다.
하지만 그로부터 불과 5년 뒤, 역사는 다시 어둠 쪽으로 몸을 기울였다. 검사 출신의 한 인물이 대통령으로 선출되었다. 그는 민주주의를 이해하려 하지 않았다. 오히려 민주주의라는 제도 속에서 독재자의 유령처럼 움직였다. 말로는 자유를 외쳤지만, 행동은 권력을 향한 집착으로 가득했다. 그를 선택한 건 시민들이었다.
민주적 절차를 통해 ‘최악’을 선택할 수도 있다는 현실을, 나는 그때 처음 실감했다.
그리고 3년 뒤, 그는 계엄령을 선포했다. 2024년, 그것도 광주학살이 벌어졌던 그 1980년으로부터 45년 만에... 그의 계엄은 시민들의 저항으로 약 330분 만에 해제되었다. 그리고 2025년 4월 4일, 헌법재판소는 만장일치로 그를 파면했다.
그날, 나는 한 편의 판결문을 읽었다.
긴 문장들, 하지만 복잡하지 않게 쓰인 헌법 용어들, 조목조목 나열된 그의 위헌 행위들. 그 안에서 나는, 낯선 감정 하나를 느꼈다. 분노가 아닌 감동이었다.
"피청구인은 국군의 정치적 중립성을 침해하고 헌법에 따른 국군통수의무를 위반하였다."
그 한 문장을 읽으며, 나는 민주주의가 아직도 살아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아주 간신히, 그러나 분명히.
이제 나는 묻고 싶다.
민주주의는 어디에 있었는가.
우리는 어떻게 그것을 잃었고, 어떻게 다시 찾고 있는가.
그리고 앞으로, 그것을 어떻게 지켜야 하는가.
이 글은 그 질문에서 시작된다.
한 시민으로서, 한 시대의 증인으로서, 그리고 다음 세대에게 민주주의를 물려줘야 할 책임 있는 어른으로서, 내가 기억하고 싶은 이야기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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