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민주주의는 멈추지 않는다

두려움에서 희망으로, 나의 민주주의 이야기

by 나그네 한

사진 출처: https://namu.wiki/w/%EB%B0%95%EA%B7%BC%ED%98%9C%20%EC%A0%95%EB%B6%80%20%ED%87%B4%EC%A7%84%20%EC%9A%B4%EB%8F%99


광주에서 시작된 민주주의의 외침, 그리고 내 안의 기억...


나는 1979년생이다.
1980년, 대한민국 헌정사의 가장 비극적이고도 위대한 장면이 펼쳐질 때, 나는 두 살이었다. 너무 어렸기에 그날의 함성과 총성은 기억에 없다. 하지만 나는 그때 광주에 있었다. 그 땅에서 자라났다. 나의 유년기는 늘 그날의 그림자 속에서 숨 쉬었다.


어른들은 그 일을 '광주 사태'라고 불렀다.

나는 자라면서 부모님, 외삼촌, 고모들로부터 그날의 이야기를 들었다. 광주 시청 앞에 수많은 시민이 모였다고 했다. “민주주의를 돌려달라”며 데모를 했고, 공수부대가 시민들을 진압하러 들어왔단다. 군홧발에 사람들의 몸이 짓밟혔고, 거리엔 총성이 울렸고, 어떤 이들은 눈앞에서 피를 흘리며 죽어갔다고 했다.

그 끔찍한 장면을 말하면서 어른들은 늘 눈을 피했다. 그러나 침묵 끝에 늘 같은 이름이 튀어나왔다. 전두환. 그가 TV에 나올 때면, 어른들은 욕부터 했다.


“저놈이 다 죽였어.”

“전두환, 저 사람은 인간이 아니야.”


그 공기를 내가 모를 리 없었다.

어느 날 국민학교 등굣길이었다. 도로에 진열된 신문 한가운데 전두환 얼굴이 실려 있었다. 나는 아이처럼, 아니 아이였기에 참지 않고 외쳤다.

“전두환 나쁜 놈!”

내 옆에 있던 어머니가 나를 잡아끌며 다급히 내 입을 막았다.


“쉿, 그런 말 하면 경찰이 너 잡아간다...”

나는 정말 그날 이후 한동안 경찰이 나를 잡아가진 않을까 무서웠다. 어릴 적 내게 있어 경찰, 군인, 정치인, 그리고 공권력을 휘두르는 사람들은 ‘도움을 주는 존재’가 아니었다. 그들은 ‘조심해야 하는 사람들’이었다. 나는 어쩌면 그때 처음으로 권력의 얼굴을 본 것인지도 모른다. 그것은 힘이었고, 두려움이었다.


광주에서 시작된 민주주의의 외침은 그렇게 내 안에 새겨졌다. 사실을 몰랐던 어린 나, 그러나 진실은 내 유년기의 공기처럼 스며들어 있었다. 숨을 쉬는 것처럼, 나는 그 시절을 통과했다. 그리고 지금, 어느덧 마흔다섯이 된 나는 다시금 되묻는다.

민주주의는 과연, 어디까지 왔는가? 그리고 지금 나는, 무엇을 지켜야 하는가?






6월 항쟁, 촛불 혁명, 그리고 다시 타오른 불빛


사진 출처: https://www.ohmynews.com/NWS_Web/View/at_pg.aspx?CNTN_CD=A0002934732



1987년 6월, 나는 국민학교 2학년이었다. 아직 전두환이 대통령으로 집권하던 시절, 그해의 여름은 평소와 달랐다. TV를 틀면 매일 거리로 쏟아져 나온 사람들의 모습이 화면을 채웠고, 경찰의 방패와 최루탄이 도시를 덮었다. 나는 그 모든 것을 부모님 옆에서 지켜보았다.


어린 마음에도 뭔가 큰일이 벌어지고 있다는 건 알 수 있었다. 그리고... 한 청년의 죽음이 내 눈앞에 비쳤다. 이름은 이한열. 어느 대학생이었고, 머리에 최루탄을 맞아 피를 흘리며 쓰러졌다. 그 장면은 지금도 흐릿한 화면 속으로 남아 있다. 내 가슴에 박힌 첫 ‘국가폭력’의 기억이자, 민주주의가 사람의 목숨과 맞바꾸는 것임을 처음 배운 순간이었다.


그해 4월, 전두환 대통령은 남은 임기가 얼마 남지 않았다는 이유로 “현행 헌법대로 정권을 이양하겠다”며 대통령 직선제를 거부했다. 국민은 분노했고, 야당과 재야 민주화 인사들은 연합해 국민운동본부를 만들었다. “호헌 철폐, 독재 타도”라는 구호가 온 나라에 울려 퍼졌고, 서울의 거리는 다시금 ‘민주주의’를 외치는 함성으로 가득 찼다.


결국 전두환은 물러났고, 국민의 손으로 대통령을 뽑는 직선제가 부활했다.

그러나 결과는 다소 씁쓸했다. 광주에서의 학살 책임이 있었던 노태우가 대통령이 되었다. 김영삼과 김대중, 두 거두의 단일화 실패로 표가 갈리면서, 그는 어부지리로 권력을 이어받았다. 그래도 그 선거는 내게 민주주의의 첫 발걸음처럼 느껴졌다. 비록 상처투성이였지만, 우리는 ‘투표’라는 이름으로 권력을 바꾸는 법을 배워가고 있었다.


그리고 시간이 흘러, 2016년 겨울. 나는 어느새 아이의 손을 잡고 광화문 광장에 서 있었다. 박근혜 대통령 탄핵을 외치는 촛불의 물결. 거기에는 분노만 있지 않았다. 질서가 있었고, 연대가 있었다. 그리고 그것은 단순한 집회가 아니라, 헌법의 회복을 위한 시민의 재판이었다. 결국 2017년 3월, 헌법재판소는 대통령 파면을 인용했고, 우리는 스스로에게 되물었다.


“이것이 민주주의다.”


그로부터 7년 뒤, 2024년.
다시 우리는 촛불을 들었다. 이번엔 윤석열이었다. 검찰권의 사유화, 언론 탄압, 사법 체계의 파괴 그리고 45년 만에 비상계엄... 45년 전의 악몽을 다시 떠올리게 했다.

‘이래도 되는가?’라는 질문은 곧 ‘가만히 있어도 되는가?’라는 자각으로 바뀌었다. 그리고 국민은 또다시 헌법 앞에 섰다. 2025년 4월 4일, 헌법재판소는 말한다.


“피청구인의 위헌․위법행위는 국민의 신임을 배반한 것으로 헌법수호의 관점에서 용납될 수 없는 중대한 법 위반행위에 해당합니다.”


이것은 단지 한 사람의 파면이 아니었다.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

이 짧은 헌법의 문장이 실제로 작동할 수 있다는 것, 그것이 한국 민주주의의 가장 위대한 증거였다. 어쩌면 우리는, 민주주의의 완성형이 아니라 과정형 시민으로 살아간다. 그리고 그 과정 속에서 우리는 배운다. 언제나 민주주의는 거리에서 다시 시작된다는 것을... 그리고...


그 불빛 하나하나가 모여, 세상을 바꾸는 힘이 된다는 것을...





그래서 헌법은 살아 있는가?


우리는 종종 묻는다.


“헌법은 살아 있는가?”

책장에 꽂힌 책처럼, 혹은 교과서에 적힌 구호처럼 머물고 있는 것이 아닌가. 권력자들의 손에서 휘둘리는 종이 문서에 불과한 것은 아닌가. 정의가 실종된 사회에서, 법은 과연 살아 숨 쉬고 있는가. 나는 그 질문 앞에 오래 서 있었다.

광주에서 두 살의 나로, 1987년 국민학교 2학년으로, 그리고 2016년 촛불을 들고 광화문에 선 어른으로, 다시 2024년, 또 한 번 거리에서 헌법을 외친 시민으로... 그 오랜 질문의 끝에서 나는 이제 이렇게 답한다.


“민주주의는 멈추지 않는다.”

멈춘 적도 없고, 단 한 번도 완성된 적도 없다. 민주주의는 광장에서 시작되었고, 책상 위에서 논의되었으며, 헌법재판소 안에서 판결되었고, 오늘도 시민의 마음속에서 다시 깨어나고 있다. 어떤 권력이 진실을 덮고, 어떤 정권이 거짓을 제도화해도, 우리는 다시 묻고, 다시 밝혀내고, 다시 거리로 나올 수 있다. 왜냐하면 이 나라의 주권은, 여전히 그리고 분명히, 국민에게 있기 때문이다.


나는 이제, 나의 아이에게 이 말을 남기고 싶다. 민주주의는 누군가 대신 지켜주는 것이 아니라고.


당신이 그 자리에 서야 할 때가 오면, 부디 당당하게 그 자리에 서 달라고. 왜냐하면 민주주의는 멈추지 않기 때문이다.


그것은 살아 있는 우리가 살아가는 방식이며, 우리 모두의 이야기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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