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386세대의 그늘 아래 자라며

피 흘려 얻은 자유의 무게

by 나그네 한

사진 출처: https://www.khan.co.kr/article/200807301822365



“군경을 동원하여 국회 등 헌법기관의 권한을 훼손하고 국민의 기본적 인권을 침해함으로써 헌법수호의 책무를 저버렸습니다.”




헌법재판소의 판결문을 읽던 중, 오래전 내 기억의 문이 열렸다.


나는 중학생이었다. 서울에서 학교를 다녔고, 그날도 여느 때처럼 전철을 타고 집으로 돌아가던 길이었다. 전철에서 내려 계단을 오르며 바깥 공기를 마신 순간, 갑작스레 코를 찌르는 화학 냄새가 코끝을 스쳤다. 체류탄이었다.


어디선가 젊은 대학생들이 몰려나와 거리를 가로질렀고, 그들 뒤로 무장한 경찰들이 달려왔다. 나는 길가에 멈춰 서 있었다. 그들은 남자든 여자든 가리지 않고 곤봉으로 내리쳤고, 군화발로 밝고, 옷깃을 잡아 바닥에 내리꽂았다. 도망치려는 누군가는 나의 바로 앞에서 잡혀 바닥에 내동댕이쳐졌다. 나는 얼어붙은 채, 그 장면을 목격했다.


그들이 왜 그렇게 맞고 있었는지, 당시엔 몰랐다. 그저 두려웠고, 혼란스러웠다. 하지만 그 기억은 지워지지 않았다. 지금 생각해보면, 그들은 386세대였을 것이다. 나보다 10년, 혹은 15년 앞선 시대를 살아간 이들이었다.


그들은 무엇을 위해 거리에 나왔던 것일까.

그 자유는, 과연 어떻게 흘러나왔을까.


나중에 30대 초반이 되었을 때, 두 명의 선배와 이런 이야기를 나눈 적이 있다. 군 복무 시절을 회상하며 서로 웃었고, 남자들답게 군대 이야기로 꽃을 피웠다. 그런데 놀라운 사실을 알게 되었다.


한 명의 선배는 대학생 시절, 데모를 하며 거리로 나갔었다. 또 다른 선배는 특공 경찰로서, 그 데모를 진압하던 부대에 있었다.

같은 시기, 같은 장소, 같은 거리.

한 사람은 소리를 지르며 경찰의 벽을 뚫으려 했고, 다른 한 사람은 명령을 따라 그들을 막고 있었다. 그들은 어쩌면 서로를 바라보았을지도 모른다. 시간이 흘러, 그들은 웃으며 서로를 이해하게 되었다. 경찰이었던 선배는 말했다.


“시민을 때리라는 명령, 그건 사람을 망가뜨리는 거였어요. 오랫동안 꿈에서조차 그 장면이 반복됐어요.”

대학생이었던 선배도 말했다.


“우리도 무서웠어요. 하지만 말하지 않으면, 아무것도 바뀌지 않을 것 같았어요.”


그들의 기억은 다르지만, 그들의 상처는 닮아 있었다. 그리고 나는 그 이야기를 들으며, 알게 되었다. 민주주의는 누군가의 외침과, 또 다른 이의 침묵 속에서도 고통스럽게 만들어졌다는 것을... 거리에서 맞은 사람도, 거리에서 때린 사람도, 모두 같은 시대의 피해자였다는 것을.







나는 그 시대를 직접 살지 않았다. 다만, 그늘 아래에서 자라났을 뿐이다. 거리에서 외치던 이들의 용기와, 침묵 속에서 견디던 이들의 눈물이 지금의 내 삶을 지탱하는 바닥이 되어주었다. 우리는 너무 쉽게 말한다.

“자유롭다.” “말할 수 있다.”

그러나 그 한마디를 위해, 누군가는 맞아야 했고 또 누군가는, 아무도 보지 않는 골목 어딘가에서 울어야 했다.


그날 전철역 밖에서 내가 본 것.


도망치던 젊은 대학생들과, 곤봉을 휘두르며 그들을 쫓던 무장 경찰들.


그들은 지금 어디에서 무엇을 하며 살아가고 있을까.

그날 거리에서 소리 지르던 이들, 곤봉을 들고 뛰던 이들.

그들은 과연 다들 평범한 일상을 살아가고 있을까.

아니면, 여전히 그날의 트라우마 속에서 말하지 못한 이야기들과 함께 침묵하고 있을까.


나는 그 자리에 있지 않았다. 하지만 그 자리를 상상할 수는 있다. 그리고 지금 이 시간, 헌법재판소가 남긴 단호한 문장을 되뇌인다.



“군경을 동원하여 국회 등 헌법기관의 권한을 훼손하고 국민의 기본적 인권을 침해함으로써 헌법수호의 책무를 저버렸습니다.”



그 문장은 그날의 기억을, 다시 불러낸다. 국가 권력이 국민을 지키는 이름으로 국민을 짓밟을 때, 민주주의는 뿌리째 흔들리고 그 진실을 바로 세우는 데는 십 년도, 이십 년도 모자란다는 것을. 나는 그들의 자리를 대신할 수 없다.

하지만 그들이 만들어낸 민주주의의 무게를 결코 가볍게 여기지 않겠다. 그리고 지금, 다시 민주주의가 위협받는 이 시대에 그날의 체류탄 냄새를 기억하는 사람으로서 또 한 걸음, 더 나아가 목소리를 보태고자 한다.


그날의 젊은 이들이, 단지 더 나은 세상을 꿈꾸었을 뿐이라는 것을 그리고 그 꿈이 지금도 이어져야 한다는 것을...

기억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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