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ay 40 – 멀쩡해 보여도 무너지고 있는 사람들

재앙과 고통에 대한 오래된 질문, 예수의 뜻밖의 대답

by 나그네 한

그날은 예루살렘 바깥 어느 좁은 길목에서 들은 이야기로 시작되었다. 말하는 이의 얼굴은 오래전에 갈릴리에서 내려온 이민자의 주름진 표정과 닮아 있었다.


“빌라도 말이오... 성전에서 제물 드리던 갈릴리 사람들, 그 피를 제물에 섞이게 만들었다지요.”


그 말은 혀끝에서 맴돌다 이내 무겁게 가라앉았다.

“피가, 제단 위에요?”

“응. 사람의 피가 짐승의 피에 섞였대.”


사람들은 낮게 수군거렸다. 어떤 이는 무표정했고, 어떤 이는 고개를 저었다. 한 사람은 속삭이듯 내게 물었다.

“누가 봐도 그건 죄에 대한 벌이겠지요? 그런 끔찍한 일을 당한 걸 보면.”


나는 대답하지 않았다. 단지 오래 전에 들었던 말 하나를 떠올렸다.

“그들이 다른 사람들보다 죄가 많아서 그렇게 된 줄 아느냐? 아니다.”


예수는 그렇게 말했다고 했다. 누구보다 명확하게, 누구도 예상하지 못하게. 그 말은 단지 갈릴리 사람들을 변호하는 말이 아니었다. 그 말은, 예루살렘 사람들... 즉 말하고 있는 그들을 향한 말이었다. 고난이 죄 때문이라는, 오래된 믿음. 병든 이는 벌을 받은 것이고, 가난한 자는 하느님께 버림받은 자라는 생각. 그러한 질서 안에서 사람들은 안심한다.


‘나는 아직 저 지경은 아니니까.’


하지만 예수는 그 믿음을 부쉈다. 그리고는 다시, 실로암 망대에서 죽은 열여덟 사람을 언급했다. 예루살렘 중심부에 있던 그 저수지 근처에서, 무너진 망대에 깔려 죽은 이름 없는 자들. 예루살렘은 갈릴리와 달리 변두리가 아니다. 그러나 그곳에도 똑같이 재앙은 닥쳤다. 예수는 말한다.

“그들이 너희보다 죄가 많아서 그렇게 된 줄 아느냐? 아니다. 너희도 회개하지 않으면 다 그렇게 될 것이다.”


그 말에는 무게가 있었다. 한 개인의 도덕성보다 깊은, 공동체 전체를 향한 부름이었다.


‘갈릴리든 예루살렘이든, 재앙의 지역은 변두리에만 있지 않다. 누구나 회개하지 않으면 망할 것이다.’


그 순간 나는 알았다. 예수는 단지 누군가의 죄를 따지거나 예외를 설명하려 한 것이 아니었다. 그는 모든 인간이 회개해야 할 존재임을 선언한 것이었다. 그의 말은 예리했고, 그러나 그 안에는 은혜의 시간이 담겨 있었다.

모두가 죄인이고,

그렇기에 모두에게 아직 기회가 있다는 말.
아직은 늦지 않았다는 것.


며칠 뒤, 또 다른 이야기를 수소문해 들었다. 이번엔 예수가 비유로 말한 이야기였다. 무화과나무 한 그루, 포도원 한켠에 심긴 나무였다.


삼 년.

농부는 그 나무가 열매를 맺기를 기다렸다. 하지만 돌아오는 것은 빈 가지와 메마른 잎뿐이었다.


“잘라버려라.”

포도원의 주인이 말했다.

“쓸데없이 땅만 썩히고 있다.”


삼 년.
충분한 시간이다.
무화과는 처음 심고 나서도 그 사이 열매를 맺을 수 있다. 그렇지 않다면 그것은, 이미 죽어 있는 나무와 같다. 예수의 이 말은 예언자 예레미야의 말을 다시 떠올리게 했다.

그는 말했었다.

‘내가 그들을 없애리니, 포도송이 하나도 없고, 무화과도 없으며, 잎도 시들 것이다.’


그 무화과나무는 바로 그 이스라엘이었다. 예언자들의 수많은 외침 속에서도 변하지 않았던 민족. 그리고 예수의 시대에 이르러도, 여전히 열매는 없었다. 하지만 포도원지기가 말했다.

“주인님, 한 해만 더... 제가 땅을 파고, 거름을 주겠습니다. 혹시 내년에 열매를 맺을지도 모릅니다.”


한 해.
그 말은 들리는 것보다 더 무거운 뜻을 품고 있다. 그것은 단순한 유예가 아니라, 마지막 기회였다. 더 이상의 변명도, 더 이상의 기다림도 없는, 최후의 시간.


예수의 사역은 그 한 해의 연장이었다.

오랜 기다림 끝에 찾아온 마지막 경고. 말씀, 치유, 식탁의 교제, 그리고 십자가. 그 모든 것은, 열매 없는 나무를 향한 마지막 돌봄이었다. 하지만 그 뒤에 따라온 말은 냉정했다.

“그래도 열매를 맺지 못하면, 베어버리십시오.”


회개하지 않으면, 너희도 망할 것이다.








회당 안으로 들어가자 한 노파가 나지막이 말했다.

“그 여인 이야기를 들었는가? 열여덟 해를 구부정하게 살았던 여인 말이야.”


그 여인은 늘 땅만 보고 살았다고 했다. 사람들의 눈길은 피했고, 하루하루를 뼈와 습기 속에 묻은 채 살아냈다고 했다.


예수는 그녀를 보았다.

그리고 손을 얹었다.

그녀는 곧게 섰다.

처음으로 하늘을 올려다봤다. 눈부신 빛이 그녀의 눈동자에 들어왔다. 그녀는 아무 말 없이, 그저 하느님을 찬양했다. 그러나 회당장은 분노했다.

“왜 하필 안식일에 이런 일을 하는가. 일은 엿새 동안에 하시오!”


회당장의 말은, 십계명을 가장 앞세운 말처럼 들렸다. 그러나 예수는 그 말 너머를 보았다. 그는 말했다.

“이 위선자들아. 너희는 안식일에도 소나 나귀에게 물은 먹이면서... 이 여인은 아브라함의 자손이다. 열여덟 해 동안 사탄에게 붙들려 있었는데, 안식일에 풀려나는 것이 당연하지 않느냐?”


그 말 속에는 질병 너머의 현실이 담겨 있었다. 여인은 단지 병든 것이 아니었다. 그녀는 사탄에게 묶인 자였다. 그러므로 그녀의 회복은 단순한 치료가 아니라, 하느님 나라의 해방이었다. 그것은 누가복음에서 예수가 처음 말했던 그 선언의 실현이었다.


“억눌린 자를 풀어주고...”


예수가 행한 이 치유는, 그 여인의 몸을 곧게 펴는 동시에, 안식일의 의미를 다시 세우는 일이었다. 그래서 그의 대적자들은 부끄러움을 당했다.

이사야의 말처럼.

“우상을 만드는 자는 다 수욕 중에 들어갈 것이다.”


회당장은 법을 말했지만, 그 법은 결국 자신을 우상으로 만든 셈이었다. 율법을 통해 자신을 높이고, 남을 판단하며 안심하는 삶. 그 삶은 곧, 죽어 있는 무화과나무와 다르지 않았다.


그 여인이 회복된 뒤, 예수는 조용히 말했다.

“하느님의 나라는 무엇과 같을까?”


그리고 말했다.

“겨자씨 같다.”


그 겨자씨는 처음엔 아주 작지만, 밭에 심기면 자라서 큰 나무가 되고, 공중의 새들이 그 가지에 깃들인다. 그 비유는 단지 성장만을 말하지 않는다. 그 나무는 이방인을 품는 쉼터였다.

에스겔 예언자도 말했다.
‘그 나무에 새들이 깃들고 그늘을 얻으리라.’


하느님 나라는 그렇게 외연을 확장한다.
은밀하게, 그러나 확실하게.


또한 누룩과 같다고도 했다.
여자가 서 말 밀가루에 넣은 누룩. 겉으로는 보이지 않지만, 그 작은 것이 온 덩이를 부풀게 한다. 그 반죽은 150명 이상이 먹을 수 있는 양이다.

예수의 사역은 그렇게 보였다. 작고, 주변부적이고, 보잘것없는 것처럼 보였지만, 그 속엔 온 세상을 바꾸는 생명의 힘이 있었다.


하느님 나라는,
작게 시작해서,
크게 완성된다.






시간은 늘 우리보다 먼저 간다. 생각보다 빠르게, 때론 너무 조용하게 스쳐 간다. 무화과나무 아래에서 들려온 그 목소리도, 사라져버린 망대 아래 묻힌 이름들도, 말을 잃은 회당장의 침묵도...

그 모두는 시간을 따라 어디론가 흘러가 버렸다. 하지만 어떤 말은 그렇게 사라지지 않았다. 그 말은 도리어, 시간이 흐를수록 더 선명해졌다.


‘회개하지 않으면, 모두 그렇게 될 것이다.’

그 말은 한 사람만을 향한 경고가 아니었다. 그 말은 이 세대를 향한 것이었고, 또 내가 속한 세계 전체를 향한 부르심이었다. 그리고 동시에, ‘하느님의 나라는...’이라는 속삭임과 나란히 놓여 있었다. 회개의 촉구와 은혜의 확장은, 언제나 나란히 있었다.


나는 종종 생각한다. 무화과나무 곁에 남겨졌던 마지막 한 해의 시간에 대해서. 그 짧은 계절이 어쩌면 가장 긴 인내의 시간일 수도 있다는 것을. 심판은 아직 오지 않았지만, 그렇다고 무한히 유예된 것도 아니라는 것. 하느님은 기다리시되, 그 기다림이 영원할 것이라고 속이지 않으신다.


나는 또 생각한다. 굽은 등을 펴고 처음으로 하늘을 올려다본 그 여인의 심정에 대해. 아마 그녀는 처음으로 자신의 키를 알았을 것이다. 자신이 얼마나 작았는지, 얼마나 눌려 있었는지, 그리고 얼마나 가볍게 여겨졌는지를. 하지만 그날, 그녀는 다시 일어섰다. 회복이란, 단지 건강이 아니라 자신의 존재를 하느님의 손 안에서 새롭게 받아들이는 일이라는 것을 그 여인의 눈빛은 말해주었다.


나는 가끔 한 알의 씨앗과 누룩에 대해 상상해 본다. 아무도 알아차리지 못한 곳에 뿌려진 그 씨앗, 조용히 반죽을 부풀게 한 그 누룩. 그 속에서 일어난 일은 크지도 눈부시지도 않았지만, 어떤 거대한 전환이 거기서부터 시작되었다. 하느님의 나라는 그렇게 자란다. 눈부시지 않게, 그러나 명확하게. 사람들은 잘 알아차리지 못하지만, 그 나라의 움직임은 가장 낮은 곳에서 가장 단단한 방향으로 뻗어나간다.


이제 나는 묻지 않을 수 없다.
그 한 해의 끝자락에 서 있는 나에게,
혹은 이 글을 읽는 당신에게.


당신은 지금, 어떤 열매를 기다리고 있는가. 그리고 그 기다림은, 하느님이 당신을 기다리는 시간 안에 있는가.


이 질문은 아무도 대신 답할 수 없다. 하지만 분명한 건 있다.

지금도 그 무화과나무 곁에 서 있는 그는,
여전히 기다리고 있다는 것을.
말없이, 그러나 물러서지 않은 채.

나는 이 이야기들을 그렇게 다시 곱씹는다.

한 해의 끝자락에서,
그 나무 아래에서,
또 다른 열매가 맺히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위의 글은 신약 성경 "누가복음 13:1-21"을 각색해서 쓴 글입니다. 자세한 내용은 성경책을 읽어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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