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ay 54 – 돌 위에 돌 하나도 남지 않을 때

가장 화려한 것과 가장 조용한 것의 차이

by 나그네 한

사람들은 언제나 눈에 보이는 것에 감탄하고, 들리는 말에 귀를 기울인다. 크고 화려한 것이 진짜라 믿고, 많이 가진 이의 말에 무게를 싣는다. 하지만 그날, 무게를 바꾼 건 눈에 띄지 않는 손끝의 떨림이었다.


부자는 금화를 넣었고, 여자는 동전 두 닢이었소. 하지만 누가 더 무거운 걸 넣었는지는 아무도 몰랐지.”


예루살렘에서 만난 어느 노인이 말했다. 그는 성전 뜰 근처에서 장사를 하던 사람이었다고 했다. 예수에 대해 기억나는 것이 있느냐 물었을 때, 그는 망설이지 않았다. 그러곤 마치 아주 오랜 세월 마음속에서만 간직해 온 장면 하나를 조심스럽게 꺼내 보이듯 이야기를 이어갔다.


“그날, 그는 말없이 서 있었소. 성전 앞 헌금함 가까이에. 부자들이 오가며 헌금을 넣는 모습을 말없이 지켜보고 있었지. 사람들은 그가 그 자리에 있다는 걸 눈치채지 못했소. 그만큼 조용했으니까.”


나는 그 장면을 머릿속에 그려보았다. 무거운 발소리들, 장식된 옷자락, 부딪히는 금속 소리. 부자들은 화려한 옷을 입고 있었을 것이다. 그들의 손에 들린 돈주머니는 두툼했을 것이다. 흔히 ‘렌톤’이라고 부르던 동전 중 가장 큰 값어치의 것들을 넣었을 것이다. 하지만 예수는 말이 없었다. 아직...


“그런데, 그다음이 있었소.”


그 노인의 눈이 잠시 멀어졌다. 마치 먼 데를 바라보듯, 아니면 마음속에 다시 그 장면을 불러들이는 듯 고요해졌다. 나는 말없이 기다렸다.


“어떤 여자가 나타났소. 과부였지. 옷차림만 봐도 알 수 있었소. 다 해진 치맛자락, 닳아버린 신발. 말도 없었고, 고개도 숙인 채였소. 그녀는 조심스레 헌금함에 다가가 렙톤 두 닢을 넣었소.”


나는 ‘렙톤’이라는 동전이 얼마나 작고 가벼운지를 알고 있다. 그것은 당시 팔레스타인에서 유통되던 동전 중 가장 작은 단위였다. 로마의 데나리온에 비하면 거의 품꾼이 한 시간 일해서 얻는 품삯의 4분의 1 정도였다. 말 그대로, 살아가기 위한 ‘생활비’의 일부가 아닌 전부였다. 그러니 그 여인의 손끝에서 떨어진 그 두 닢은 가벼웠지만, 어떤 의미에서는 세상 가장 무거운 것이었는지도 모른다.


노인의 목소리가 낮아졌다.


“예수가 그때 입을 열었소. 조용히 그러나 단호하게 말했지. 그 여자가, 그 누구보다 많은 것을 넣었다고. 다른 사람들은 남는 것 중에서 조금씩 꺼냈지만, 그녀는 가진 전부를 드렸다고. 생활비 말이오.


나는 그 장면에서 시선을 떼기 힘들었다. 당시 그 자리에 있었던 이들은, 어쩌면 예수가 말한 그 ‘가장 많이 넣었다’는 말을 이해하지 못했을지도 모른다. 세상은 숫자와 양으로 비교하고, 무게를 달고, 모양을 본다. 하지만 그날, 예수는 보이지 않는 것을 보았다.


그리고 나는 그 이야기를 들으며, 자연스레 그 직전에 예수가 하셨다는 말을 떠올렸다. 그는 제자들에게 서기관을 조심하라고 경고하셨다. 회당의 윗자리를 차지하고, 긴 옷을 입고 다니며 인사를 받기 좋아하던 이들. 과부의 가산을 삼키고도 외식으로 기도하는 그들. 예수가 과부의 헌금을 높이 평가한 것은 단지 그녀의 헌신 때문이 아니었다. 그 앞에 있었던 구조의 비틀림, 힘 있는 자들의 위선과 억압이 함께 보였기 때문이다.


어쩌면 그 과부는 스스로 원해서 헌금을 드린 것이 아닐 수도 있다. 누군가의 강요, 혹은 관습, 혹은 그럴 수밖에 없는 분위기. 하지만 예수는 그녀의 중심을 보았다. 그녀가 드린 것이 작지만, 그것은 자신의 전부였고, 그러므로 하느님께는 가장 큰 헌신이었다.


이야기를 들려주던 노인은 말을 멈췄다. 나는 천천히 질문을 꺼냈다.


“그 여자의 이름을 아십니까?”


그는 고개를 저었다.


“모르오. 이름은 아무도 모르지. 하지만 사람들은 그 장면을 오래도록 기억했소. 그건 이름보다 오래가는 거니까.”


나는 조심스럽게 다음 질문을 던졌다.


“예수는 그 여인에게 다가가 말을 걸거나, 축복하거나, 칭찬하셨나요?”


노인은 고개를 가로저었다.


“아니오. 그는 말없이 지켜보다, 그저 제자들에게 말했을 뿐이오. 그게 다요. 하지만 그 말이... 우리 모두에게 한 말처럼 느껴졌소.”


말없이 드린 헌금, 아무도 보지 않는 것 같은 순간, 하지만 그 모든 것을 보고 계셨던 시선. 예수는 숫자를 보지 않았다. 구조를 보았고, 마음을 보았고, 놓인 처지를 보았다. 어떤 이의 드림은 과시이지만, 또 다른 이의 드림은 기도였다.


그날 예수는, 그 여인의 드림을 기도처럼 받아들이셨다. 말없이, 조용히... 그리고 잠시 후였다. 노인은 그날 있었던 또 다른 이야기를 덧붙였다.


“예수는 이어서 성전 건물 이야기를 꺼냈소. 누군가가 그에게 성전이 얼마나 아름다운지, 돌이며 예물이 어쩌고 하면서 자랑하듯 말했지.”


나는 그 부분도 알고 있다. 성전은 당시 이스라엘 백성에게 있어 단지 예배의 장소가 아니었다. 하느님이 머무시는 곳, 하느님이 자신들의 편이라는 증거, 민족의 정체성 그 자체였다. 성전의 크기와 웅장함은 곧 민족의 영광이었다. 거기에 바쳐진 금과 은, 화려한 장식물들, 자원예물들. 그것들은 부자들의 헌금에서 비롯된 것들이기도 했다.


“하지만 예수는 그렇게 말씀하셨지. ‘이 모든 것이, 돌 하나도 돌 위에 남지 않고 무너질 날이 올 것이다.’


노인은 낮게 읊조렸다. 나는 그 말의 무게를 가늠해 보았다. 그 말은 단순한 경고가 아니었다. 그것은 이미 오래전 예언자 예레미야가 전한 말과 닮아 있었다. 주전 6세기, 예루살렘과 그 성전이 바벨론에게 무너질 것을 경고했던 그 예언자처럼, 예수도 오늘의 이 성전이 무너질 것이라 말했다. 하느님의 보호를 믿고, 자신들의 정당함을 주장하며 자랑하던 그 성전이, 사람들의 눈에는 영원해 보이던 그 성전이, 사라질 것이라 말했다. 나는 조심스럽게 노인에게 물었다.


“그 말을 들은 사람들은 뭐라고 했나요?”


노인은 입가에 쓴 미소를 지으며 대답했다.


“처음엔 못 들은 척했지. 누가 그런 말을 믿겠소. 이렇게 단단하고 화려한 성전이 무너진다고? 하지만... 그 말을 마음에 담아둔 사람들도 있었을 거요. 시간이 지나고, 정말로 성전이 무너졌을 때... 아마 그제야 기억했겠지.”


나는 노인의 말을 들으며 속으로 중얼거렸다. 어떤 기억은 사라지고, 어떤 기억은 뒤늦게 불쑥 떠오른다. 마치 그때는 몰랐지만, 시간이 흐른 후에야 그 의미가 드러나는 것처럼...


과부의 렙톤 두 닢, 성전의 거대한 돌덩이들, 그리고 그 사이에 선 예수의 침묵. 그 모든 것이, 언젠가는 무너질 것을, 혹은 무너진 후에야 드러날 진실을 담고 있었다.






나는 노인과 헤어진 후, 성전 뒤편 골목길을 따라 천천히 걸었다. 오래된 돌담이 이어졌고, 벽 틈 사이로 자라난 풀잎이 흙먼지를 머금고 있었다. 그 길을 걷는 동안, 나는 자꾸만 한 장면을 떠올렸다. 과부의 두 닢. 그리고 예수의 침묵. 그다음 그가 말했던 성전의 멸망.


왜였을까. 그날 예수의 그 말은 단순한 예고로 들리지 않았다. 마치 오래전부터 쌓여 온 질문이 끝내 입 밖으로 터져 나오는 듯한, 그런 말이었다. 그리고 그 말을 들은 이들이 조용히 다가가 물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스승님, 그렇다면... 그런 일이 언제 일어나겠습니까?”


처음엔 말문이 막혔다. 성전이 무너진다는 건 그들에겐 상상조차 할 수 없는 일이었을 것이다. 그곳은 단순한 건물이 아니었다. 하느님이 머무시는 곳, 이스라엘이라는 이름의 마지막 자부심, 모든 축제의 중심, 역사의 증언. 그런데 그 돌 하나도 남지 않고 무너질 것이라니. 그것은 예루살렘이 아니라, 그들 자신이 무너진다는 예고처럼 들렸을 것이다.


그러니, 그들은 물었다.


“그 일이 벌어지려고 할 때에는 어떤 표징이 있겠습니까?”


나는 그 질문이 두려움에서 비롯되었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예수가 성전을 언급한 순간, 사람들의 시선은 돌에서 자신들의 존재로 옮겨갔을 것이다. 정체성이 흔들릴 때 사람은 본능적으로 예측 가능한 무언가를 찾는다. 시간, 징조, 신호. 그것을 통해 대비하고자 한다.


그런데 예수는 그들의 기대와는 전혀 다른 방향으로 대답하셨다고 했다.


“너희는 속는 일이 없도록 조심하여라.”


이 말은 예루살렘 북쪽에서 장사를 하던 또 다른 남자가 들려준 이야기였다. 그는 성전과 가까운 길모퉁이에서 향을 팔던 사람이었다. 어느 날 예수가 그런 말을 했다고 기억한다며, 낮은 목소리로 이야기해 주었다.


“많은 이들이 나타날 거라고 하더군. 내 이름으로, ‘내가 그리스도다’, 또 ‘때가 가까웠다’며 사람들을 유혹할 거래. 하지만 그들을 따르지 말라고 분명히 말했소.”


나는 잠시 멈춰 그 말을 되새겼다. 사람들이 기다리는 건 명확한 시간표와 예측 가능한 메시지였다. 하지만 예수는 그보다 더 깊은 경계를 요구했다. 흔들리는 세상 속에서, 더 무서운 것은 바깥의 전쟁보다 속이는 자라는 뜻일까. 사람들의 두려움에 덧입혀진 거짓이 더 큰 파괴를 부를 수 있다는 경고처럼 들렸다.


그는 이어서 또 다른 말을 했다고 했다.


“전쟁과 반란 소문이 들려도 무서워하지 말아라. 그런 일은 먼저 있어야 할 일이지만, 그것이 바로 끝은 아니다.”


나는 그 말을 따라 한참을 걷다가, 오래된 회당 근처에 머물렀다. 거기엔 그날 예수를 멀찍이서 바라보았다는 노파가 있었다. 그녀는 내가 기록하려는 이야기에 대해 듣자, 조용히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민족과 민족이 싸우고, 나라와 나라가 서로 등을 돌릴 거래요. 땅은 흔들리고, 하늘은 닫히고, 병과 배고픔이 사람들 곁을 떠나지 않을 거래요. 하지만... 아직은 끝이 아니라고 했지.”


그녀는 손을 뻗어, 가까운 담장에 자라는 이끼를 가볍게 쓸었다. 나는 그녀의 손등에 굽은 세월의 흔적을 바라보며, 그날 예수의 말이 담고 있었던 무게를 다시 생각했다.


예수는 재난의 목록을 나열하지 않았다. 그보다, 사람들이 그것을 어떻게 받아들이는가에 집중했다. 땅이 흔들리는 일은 피할 수 없다. 전염병과 기근은 누구의 잘못도 아닐 수 있다. 하지만 그 속에서도 미혹에 이끌리지 않고, 무서움에 휩쓸리지 않고, 무엇을 바라보고 서 있을지를 묻는 것이다.


나는 그런 말을 들으며 생각했다. 사람들은 늘 이상한 징조에 마음이 끌린다. 하늘이 붉게 물들거나, 바람결이 뒤집히는 밤이면 무언가 불길한 일이 생길 것 같다고 느낀다. 아이가 이유 없이 울음을 터뜨리고, 동물들이 방향 없이 달릴 때, 사람들은 그 이유를 징조에서 찾는다. 그러한 일들은 언제나 있어왔다. 그러나 그때마다 진짜 흔들리는 것은 세상이 아니라, 사람들 안의 두려움이었다.


노파는 내게 마지막으로 이렇게 말했다.


“그 말은 듣는 이마다 다르게 느꼈을 거요. 어떤 이에겐 두려움이었고, 어떤 이에겐 준비였고, 또 어떤 이에겐 단지 지나가는 말이었을 수도 있지. 하지만 말이오…”


그녀는 천천히 시선을 들어 나를 바라보았다.


“예수는 겁주려는 사람이 아니었소. 그 사람은, 그저 눈을 뜨게 해주려 했던 거요. 보이는 것을, 그 안의 것을.”


나는 그 말이 오래 남았다. 성전이 무너지는 날을 예고하는 그 장면은 단지 건물의 이야기만이 아니었다. 그것은 마음 안의 성전이, 더는 하느님의 집이 되지 못하는 순간에 대한 이야기이기도 했다.


그렇기에 예수는 돌 하나도 남지 않고 무너질 것이라 말했다. 그리고 사람들은 물었다. 그게 언제입니까. 어떤 징조가 있습니까. 하지만 그는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을 말하고 있었던 것 같다.


누구를 따라갈 것이며, 무엇을 두려워할 것이며, 어디에 마음을 둘 것이냐고...






그날, 예수가 했던 말은 단지 성전의 돌들이 무너질 것이라는 선언만이 아니었다. 그는 그 돌들보다 더 빨리, 그리고 더 조용히 무너지기 시작할 것들에 대해 말하고 있었다. 한 사람이 내게 조심스럽게 말한 적 있다.


“그 사람은, 마치 모든 걸 알고 있는 듯했소. 누가 먼저 끌려갈지도, 어디서 일이 터질지도. 아무것도 정해지지 않은 듯 보여도, 이미 시작된 것처럼 말했소.”


그는 회당에서 종종 말씀을 들었던 사람이라고 했다. 예수를 가까이서 따라다닌 제자는 아니었지만, 그의 말을 들었던 순간을 기억한다고 했다.


“예수는 그러더군. 전쟁이며 하늘의 징조보다 더 먼저 일어날 일이 있다고.”


그것은 박해였다.


“사람들이 너희에게 손을 댈 것이다. 회당으로, 감옥으로, 총독과 임금 앞에까지 끌고 갈 것이다.”


그는 그 말을 들으며 마음이 철렁했다고 했다. 말하자면 이건 ‘언제 성전이 무너지느냐’는 질문에 대한 답변이기도 했지만, 그보다 먼저, 누가 먼저 무너질 것이냐에 대한 말이기도 했다. 성전이 무너지기 전에 사람들의 일상이 먼저 무너질 것이고, 공동체의 평화가 깨질 것이며, 제자들의 삶이 흔들릴 것이라는 예고였다.


예수는 이 말을 할 때, 목소리를 높이지 않았다고 했다. 조용하고 담담하게, 그러나 피할 수 없는 사실처럼 그렇게 말했다고...


“너희는 내 이름 때문에 미움을 받을 것이다.”


그 말은 멀게 들리지 않았다. 이 말을 전해준 이들은 대부분 그런 미움의 자리에 있었거나, 그 곁에 서 있었던 사람들이었다. 가족 중 누군가가 붙잡혀가고, 친구였던 사람이 갑자기 등을 돌리고, 오래 알고 지낸 이웃이 돌연 차가워졌던 순간들. 그것은 단지 예수가 떠난 후의 일이 아니라, 그의 말이 천천히 현실이 되어가는 시간이기도 했다.


나는 북쪽 도시에서 만난 한 여인이 들려준 이야기를 잊을 수 없다. 그녀는 오래전, 자신의 오빠가 회당에 끌려가는 것을 본 적이 있다고 했다. 이유는 단 하나였다. 예수라는 사람을 따른다는 이유였다.


“그날 아침, 아무도 몰랐지요. 오빠가 아침밥을 다 먹고 나가던 순간까지도. 그런데 낮이 조금 지나고 나서, 갑자기 회당 사람 몇이 집으로 왔어요. ‘그 사람, 데려간다’고요. 누군가는 미리 말한 거겠죠. 이웃인지, 친구인지, 어쩌면… 우리 아버지였을지도 몰라요.”


그녀는 그 말을 끝내며, 한참을 침묵했다. 예수를 따른다는 이유로 가장 가까운 사람에게서부터 배신을 당한다는 것. 그것은 몸보다 더 깊은 상처를 남겼다. 예수는 이렇게 말했다고 했다.


“부모와 형제, 친척, 친구들까지도 너희를 넘겨줄 것이다. 그리고 너희 중 더러는 죽게 될 것이다.”


그녀는 고개를 떨군 채 조용히 말했다.


“우린 그때 다들 알고 있었어요. 누가 오빠를 넘겼는지. 하지만 아무도 입을 열지 않았어요. 예수를 안다고 말한 적이 한 번도 없는 사람이 갑자기 그 이름을 말하는 걸 보고, 다들 느꼈죠. 어딘가에서 무너진 마음이 하나 있었다는 걸요.”


이야기를 듣는 내 마음에도 작고 깊은 균열이 일었다. 그 무너짐은 예수의 말처럼 전쟁이나 지진처럼 드러나는 일이 아니었다. 눈에 보이지 않지만, 아주 가까이에서 천천히 벌어지는 일이었다. 한 사람이 고개를 돌리고, 말없이 자리를 피하고, 뒤돌아섰다가 다시 돌아보지 않는 그런 방식으로.


예수는 그런 무너짐을 ‘기회’라고 말했다. 그 말을 처음 들었을 때, 나는 이해하지 못했다. 어떻게 박해와 배신, 억울한 체포와 재판이 ‘기회’가 될 수 있을까. 하지만 조금씩 그 말의 의미가 선명해졌다.


“이러한 일이 너희에게는 증언할 기회가 될 것이다.”


누구에게든 피해 갈 수 없는 밤이 있다. 하지만 그 밤이 단지 어두운 시간으로만 지나가는 것이 아니라, 어떤 말을 남기는 시간이 될 수 있다는 뜻. 그날 예수는 제자들에게 이렇게도 말했다고 한다.


“명심하여, 변론할 말을 미리 준비하지 마라. 너희에게 언변과 지혜를 줄 것이다. 아무도 반박할 수 없을 것이다.”


나는 그 말이 단지 설득의 기술에 대한 말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사람들이 자주 준비하는 것은 ‘어떻게 살아남을까’라는 말이지만, 예수는 ‘어떻게 증언할까’를 말하고 있었다. 무너짐의 순간에도 중심을 잃지 않는 것, 그 자리에서 여전히 그의 이름을 기억하는 것, 그게 증언이라는 의미였다.


한 노인은 나에게 이렇게 말했다.


“그 사람이 떠난 후, 우린 모두 긴 침묵 속에 있었소. 누가 우리를 넘길지, 언제 잡혀갈지, 무엇을 말해야 할지... 그 모든 것이 두려웠소. 그런데 이상하게도, 어떤 이들은 그런 자리에 설수록 말이 분명해졌소. 두려운 자리에 설수록 그 사람이 가까워졌던 거요.”


그 말은 내게 오래 남았다.

예수는 또 이렇게 말했다고 전해진다.


“너희는 내 이름 때문에 모든 사람에게 미움을 받을 것이다. 그러나 너희 머리카락 하나도 잃지 않을 것이다.”


그 말은 다정하면서도 강했다. 미움을 받는 자리, 배신당한 자리, 죽음마저 가까운 자리. 그 모든 어둠 속에서조차, 하느님의 손은 여전히 제자들을 지키고 있다는 뜻이었다.


마지막으로 그는 말했다고 한다.


“인내로써 생명을 얻어라.”


그 말이 이 이야기를 끝맺는다. 무너지지 않기 위해, 혹은 무너짐 속에서 완전히 사라지지 않기 위해 필요한 단 한 가지. 인내...


돌 하나 남지 않고 무너지는 성전, 눈에 보이는 것들의 끝. 그 앞에서 예수는 말없이 과부의 동전 두 닢을 바라보았고, 성전의 돌들이 무너질 것이라 말했으며, 사람들의 믿음이 흔들릴 것을 경고했다. 그리고 그 모든 말의 끝자락에서 남은 건 이 한 마디였다.


인내로써, 생명을 얻으라.



위의 글은 신약 성경 "누가복음 21:1-19"을 각색해서 쓴 글입니다. 자세한 내용은 성경책을 읽어주세요.
월, 화, 수, 목, 금, 토 연재
이전 24화Day 53 – 살아 있는 자들의 하느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