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체통

편지

by 류광현

1. 첫 편지
우체통 앞에 서자, 마음은 이미 앞서 달려가고 있다.
봉투를 쥔 손끝에서 땀이 스며들고, 펜 끝의 말들이 한 줄 한 줄 가슴속을 타고 흘러내린다.
그저 편지를 넣는 순간인데, 왜 이렇게 숨이 가쁘고 심장이 두근거릴까.
철문 틈새로 봉투가 조용히 사라지는 순간,
나는 이미 너의 손길에 닿아 있었다.
아직 너에게 알려지지 않은 이야기, 나는 이미 모든 것을 고백해 버렸다.

2. 비 오는 날의 우체통
빗방울이 굵게 떨어지는 골목,
그 끝에 고요히 서 있는 우체통.
빗물에 젖은 봉투를 조심스레 쥐고, 나는 한참을 그 앞에 서 있었다.
편지를 넣기 전까지 수십 번이나 문장을 지우고 다시 썼지만,
결국 그 안에 담긴 건 '미안하다'라는 세 글자였다.
편지가 철문 속으로 천천히 흡수되고,
빗방울은 그 위를 부드럽게 흘러내렸다.
이제 내가 우는 건지, 우체통이 우는 건지 구분할 수 없었다.


3. 우편배달부의 발걸음
늘 같은 길, 같은 집, 같은 우체통.
하지만 오늘, 나는 평소보다 천천히 걸었다.
혹시 그 안의 봉투가 이별의 소식이라면,
그 편지가 도착하는 순간 누군가의 세상이 무너질까 두려워.
우체통 문을 열고 편지를 꺼내는 손길이 유난히 조심스러웠다.
누군가는 이 안에서 사랑을 고백하고,
누군가는 사랑을 끝맺는다.
나는 그저 메신저에 불과하지만,
가끔은 내 심장마저 편지와 함께 흔들린다.


4. 돌아오지 않는 편지
보낸 지도 한참인데
여전히 답장은 오질 않는다.
혹시 그 우체통이
길을 잃어버린 건 아닐까,
아니면 네 마음은 이미 닫혀버린 걸까.

5. 여름날의 우체통
햇볕에 달궈진 쇠문,
손을 대면 뜨겁다.
그 온기가 네 마음까지
전해질 거라 믿으며
나는 편지를 슬그머니 넣었다.

6. 오래된 우체통
페인트는 벗겨지고
녹슨 우체통,
그래도 그 속엔
누군가의 오늘을 기다리는 희망이 깃들어 있었다.
사람 마음도 그렇게 열려 있으면 좋겠다.

7. 마지막 편지
마지막이라 적으면서도
마지막이 아니기를 간절히 바랐다.
우체통 속으로 사라지는 봉투를 바라보며
나는 천천히 몸을 돌렸다.
그 뒷모습이,
네가 결국 보지 못한 나의 모습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