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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야광 Jun 11. 2020

[배유기] 7화_ 김연경 복귀, 그리고 페이컷 이슈

- 초보기자의 배구판 3년 유랑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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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연경이 한국으로 돌아온다. 그가 은퇴하기 직전에야 가능할 줄 알았던 일이 현실로 다가왔다. 지난 10일 열린 공식 기자회견장에서 ‘김연경’이 새겨진 핑크색 유니폼이 펄럭였다. 그가 한국을 떠난 지 11년 만이다.


김연경은 자타공인 ‘슈퍼스타’다. 다 말하자면 입 아픈 수상경력, 독보적인 배구실력에 화려하고 시원시원한 입담까지 갖췄다. 최근 물오른 여자배구 인기는 김연경이 물꼬를 텄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국가대표 에이스로서 여러 국제무대서 호성적을 이끌고 소속팀에 가서도 맹활약을 펼치며 이제는 정말 한국 배구 아이콘으로 자리 잡았다.


이렇게 배구 계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사람이다 보니, 배구기자들에겐 가장 주목해야 할 선수였다(한국에서 뛰는 선수들에겐 미안하지만). 내가 막내였을 당시 김연경 이슈가 한 차례 터진 적이 있었는데, 이에 대해 보도를 하지 않는다고 회사 윗분에게 혼났던 기억이 난다. 아, 난 그때 입사 3개월도 안 됐을 땐데...


이전까지 김연경은 해외에서 뛰었으니, 그를 실물로 볼 수 있던 건 주로 여름 국가대표 훈련장이었다. 처음 본 김연경은 그야말로 ‘스타’였다. TV 화면에 나오는 모습대로 당당하고 소신을 갖춘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보통 기자들이 인터뷰를 요청하면 선수들은 아무래도 좀 딱딱해지기 마련이다. 인터뷰에 거부감이 있어 빼는 선수들도 여럿 있다. 김연경은 그런 것 하나 없었다. 오히려 “밥은 먹고 왔어요?”라고 묻거나 “좀 이따 해요”라고 너스레를 떨면서 분위기를 확 풀어준다. 덕분에 질문하는 기자도 편하게 물을 수 있다. 


또 김연경은 정말 인터뷰를 ‘잘’ 한다. 빼지 않고 적극적이며, 그렇다고 너무 가볍거나 무겁지 않고 적정선을 잘 유지한다. 내용도 기가 막힌다. 말을 정말 청산유수로 잘 한다. 덕분에 인터뷰가 짧아도 그 속에 좋은 이야깃거리가 넘친다. 


흔히 기자들끼리 ‘인터뷰 야마가 좋다’라는 속된 표현을 쓴다. ‘야마’는 기사 헤드라인, 주제 등을 의미한다. 김연경과 인터뷰는 정말 ‘야마’로 넘친다. 기자들이 기사로 쓰기 좋은 이야기들을 정말 맛깔나게 꺼내준다. 한번은 친한 기자들과 모인 자리에서 “김연경은 ‘이렇게 기사 쓰세요’라고 던져주는 기분이다. 기자들 입맛을 정말 잘 안다”라는 우스갯소리가 나오기도 했다.


이렇게 분위기도 좋고, 내용도 풍부한 인터뷰는 밝고 긍정적인 기사가 나오게 하는 기본 원동력이다. 내용이 너무 딱딱하고 틀에 박혀 있으면 쓰는 사람도, 읽는 사람도 재미없는 기사가 나온다. 이걸 맛있게 포장하는 건 자칫 ‘각색’의 영역이 될 수 있어 주의해야 한다.


김연경처럼 긍정적인 인터뷰, 기사가 많다는 건 곧 선수 본인 가치를 높이는 일이다. 또 김연경은 본인의 영향력이 배구계 전체에 큰 영향을 미친다는 걸 잘 아는 것 같다. 방송 출연도 적극적이고 유튜브를 통해 팬들과 소통하는 것 역시 배구가 보다 많은 사람들에게 알려지는 방법 중 하나라고 생각하며 하고 있다. 이런 리더 마인드 또한 분명히 존경해 마땅한 점이다.


이런 일도 있었다. 한 번은 국가대표에 소집된 김연경 인터뷰를 대한배구협회에 요청한 적이 있다. 그런데 협회가 선수단에 이야기하는 과정이 매끄럽지 않아 혼선이 생겼다. 그래서 김연경이 사전에 모르는 상황에서 인터뷰를 하게 됐다. 김연경은 사진 촬영만 있는 줄 알고 온 것이었다. 그런 돌발상황에서도 김연경은 웃으며 인터뷰에 응해줬다. “아, 밥 먹을 시간인데~”라는 농담을 던지고 정말 정성스럽게 이야기해줬던 기억이 난다. 그날 아침에 협회와 선수단 사이 의사소통이 제대로 안 됐다는 말을 듣고 정말 망연자실해 있었는데, 한 시름 놓으며 집에 돌아갈 수 있었다.


실시간으로 화젯거리를 몰고 다니는 선수인 만큼, 김연경의 복귀는 다음 시즌 V-리그 여자부에 큰 에너지가 될 거다.


인터뷰하는 모습을 사진기자께서 찍어 내게 전달해줬다. 내 뒤에서 찍고 계신줄 알고 자세를 삐딱하게 해서 피하고 있었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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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김연경 복귀에서 다소 문제시되는 부분이 있다. 20억 가까이 되던 연봉을 3억 5천으로 확 줄이고 한국으로 돌아온 점이다. 한국 V-리그에는 여자부 각 팀 별로 23억(연봉 18억, 옵션 5억) 샐러리캡이 존재한다. 본래대로라면 김연경 한 명 연봉으로 팀 샐러리캡이 거의 다 소진되기 때문에 사실상 영입이 불가능하지만, 김연경은 자진해서 연봉을 낮추고 다음 시즌 한국행을 선택했다.


이런 페이컷(Pay-cut)은 사실 샐러리캡 제도를 운영하는 리그에선 금기시되는 것이다. 샐러리캡의 기본 목적은 ‘리그 내 팀 전력 평준화’다. 다시 말해 한 곳에 좋은 선수가 몰려 리그 질이 떨어지는 것을 막기 위해 존재하는 제도가 바로 샐러리캡이다. 만약 김연경이 정상적인 연봉(예컨대 20억)을 받아 한국으로 돌아온다면, 그 팀은 남은 3억으로 나머지 열댓 명 수준의 선수단을 꾸려야 한다. 당연히 나머지 선수들은 연봉을 낮게 받거나, 아니면 아예 낮은 연봉을 받는 선수들로만 구성되어야 한다. 


심지어 흥국생명은 지난 FA 시장에서 국가대표 세터 이다영을 영입했다. 기존 팀 에이스인 이재영에 쌍둥이 동생 이다영까지 오면서 ‘김연경 없이도’ 우승후보 전력을 갖췄다. 아직 시즌 시작까진 시간이 남았지만, 다음 시즌 흥국생명 전력은 이미 독보적이다.


다만 김연경의 한국행 결정에 특수한 이유가 있어 어느 정도 용인이 되는 분위기다. 최근 유럽 여러 팀이 코로나19로 인해 훈련조차 제대로 안 되는 상황이다. 다음 시즌 리그가 제대로 운영될 수 있을지도 불확실하다. 이런 상황에서 김연경은 내년으로 밀린 도쿄올림픽 본선 메달권을 노린다. 기량 유지를 위해선 한시라도 빨리 훈련할 팀을 정해 안정적일 필요가 있었다. 또 한국에서 뛰며 이재영, 이다영과 호흡을 지속적으로 맞추면 국가대표 준비에도 훨씬 도움이 된다.


여기에 김연경이 연봉 삭감을 두고 “후배들 권리를 빼앗고 싶지 않았다”라는 말까지 언론을 통해 전하면서 이번 페이컷이 ‘대의를 위한 희생’으로 많은 이들에게 받아들여졌다. 


물론 큰 금액을 삭감하고 국가대표를 생각한 점에 대해서는 분명 리스펙할 부분이다. 그렇지만 ‘샐러리캡’이라는 리그 규칙에 다소 해를 입힌 점은 김연경이 안고 가야 할 문제다. 당장 지금은 다른 팀 팬들의 푸념 정도로만 보일 수 있다. 그러나 시즌이 막상 시작되고 흥국생명이 정말 선두를 치고 달린다면 비난의 목소리는 훨씬 더 심각해질 것이다. 



3


‘예상되는 프로리그’만큼 재미없는 게 없다. 지금대로라면 내년 V-리그 여자부는 굉장히 재미없는 리그가 되어 버린다. 물론 그 외에 변수는 얼마든지 나타날 수 있지만, 지금 그림은 핑크색 유니폼이 선두를 달리는 것이 자명하다.


그런 뻔한 상황이 오더라도, 부디 김연경의 복귀가 긍정적인 효과를 일으켰으면 한다. 김연경의 복귀로 보다 많은 팬들이 여자배구에 관심을 갖기 시작하고 이슈를 불러일으켜 마이너스(-)가 플러스(+)에 묻히길 바란다. 김연경 정도의 슈퍼스타라면 충분히 가능할 일이다.


개인적인 아쉬움은 김연경이 한국에서 뛸 때 기자신분이 아니라는 점 정도다. 아마 취재가 훨씬 더 재밌지 않았을까. ‘아픈 거 조금 참을 걸 그랬나’하는 생각이 문득 들지만, 이제는 팬 입장에서 볼 수 있으니 그 부분은 또 좋은 게 아닐까 싶기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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