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치 볼 거 없다: 체면과 긍정 피로 사회에 맞서

I Don’t Give a Damn

by 김광훈 Kai H

한국인의 클래스 포비아에서 내려오는 순간


보병에서 조리사로 전직된 지 얼마 안 되었을 때였다.

키가 2미터였던 한 하사관이 음식 서빙을 받으며
옆에 서있던 동료에게 I don’t give a damn이라고 말했다.

실제로는 f***였는데 차마 여기에 옮길 수는 없어

damn으로 표기한다. 어찌나 단호하고 자연스러웠는지

수십 년이 지난 지금도 그 장면이 생생하다.


장교들 중에는 미국 최고 명문대라고 하는 Northwestern이나

West Point 출신들도 있었지만, 보병 부대라 강조할 때는

슬랭이나 욕설 사용하는 건 사병이나 장교나 차이가 없었다.


눈치 보는 게 일상이 되어 버린

한국 사회에서 우리는 늘 계산한다.
말 한마디, 옷 한 벌, 밥값 하나까지.
이게 내 체급에 맞는지,
이 자리에 어울리는지,
혹시 나를 낮게 보지 않을지.

그래서 ‘신경 쓰지 않겠다’는 말은
무례의 선언이 아니라
자기 삶의 주권을 회수하겠다는 선언이 된다.


어차피 사람들은 말한다

(People will talk anyway.)


얼마 전에 타계한 로버트 레드포드와 제인 폰다가

주인공으로 나왔던 영화 "아워 소울즈 앳 나이트

(Our Souls at Night)"는 노년의 사랑을 다룬 이야기다.

사람들이 자신들의 만남에 대해 입방아를 찧는데

대한 걱정을 털어놓자, 어차피 사람들은 이러쿵

저러쿵 얘기할 거니 신경 쓸 거 없다는 이야기를 한다.


이 말을 늦게 깨닫는 사람이 많다.


조심해도 말하고

잘해도 말하고

내려와도 말하고

올라가도 말한다


그런데 우리는 늘
“이번엔 말 안 나오게 해야지”라며
다음 선택을 조정한다.

집을 고르고,
차를 바꾸고,
식당을 정하고,
자리를 계산한다.

하지만 어느 순간 알게 된다.
말은 통제 대상이 아니라 자연현상이라는 걸.

비를 막을 수 없듯,
타인의 입을 막을 수는 없다.


클래스 포비아는 이렇게 작동한다


한국인의 불안은 가난보다 분류에 가깝다.

어느 클래스냐

어디쯤 사람이냐

아직 유지 중이냐, 내려왔느냐

이 질문을 받지 않기 위해
사람들은 필요 이상으로 버티고,
필요 이상으로 소비하고,
필요 이상으로 자신을 설명한다.

이게 바로 클래스 포비아다.
가난해질까 봐가 아니라,
낮은 클래스의 사람으로 읽힐까 봐 두려운 상태.

그래서 가장 힘든 사람들은
실제로는 이미 충분히 살고 있는 경우가 많다.


“I don’t give a damn”이 진짜 의미하는 것

이 말은 포기가 아니다.
막살겠다는 선언도 아니다.

그 뜻은 이렇다.

나는 더 이상
나를 증명하기 위해 살지 않겠다.

싸든 비싸든
밥값을 낼 수 있고,
안 내도 설명하지 않아도 되고,
누가 뭐라 해도 마음이 크게 흔들리지 않는 상태.

이건 체급이 올라가서 가능한 게 아니라,
체급의 언어에서 내려왔기 때문에 가능한 상태다.


Yesterday is dead and gone


어제의 서열,

어제의 비교,
어제의 기준은
이미 끝났다는 말.

한국 사회는 늘 어제를 들고 오늘을 평가한다.
어디서 시작했는지,
어디까지 갔는지,
왜 거기 멈췄는지.

하지만 어떤 시점 이후에는
그 모든 질문이 의미를 잃는다.

남은 건 하나다.

오늘을 내 기준으로 살 수 있느냐.


내려오는 용기

성공담은 넘치지만

내려온 이야기는 드물다.

왜냐하면 내려오는 순간,
설명이 필요해지기 때문이다.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설명이 필요 없어지는 순간이 있다.

그때 사람은 이렇게 말할 수 있게 된다.

I don’t give a damn.
어차피 사람들은 말하니까.

그 말이 욕처럼 들리지 않는 날,
우리는 비로소
자기 삶의 소음을 하나 내려놓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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