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이야기를 발견하는 마음찾기
가장 오래된 기억은 문틀에 걸린 그네 의자다. 하얀 문틀에 매달린 앙증맞고 샛노란 그네. 사실 그네가 노랗다고 자신 있게 말할 수 없다. 유아용 그네라는 게 노란색과 빨간색 그리고 파란색 중 하나일 것이다. 기억이란 그런 것으로 생각하면 마음 편하다.
어렸을 적 기억은 늘 그렇게 불현듯 떠오른다. 아무 이유 없이 문득. 친구나 지인과 대화를 하던 도중이라던가, 혼자서 밥을 먹다가, 버스 유리창에 기댈 때라던가. 가끔 머릿속 기억 서랍은 어떻게 열리고 닫히는지 궁금해진다. 머릿속은 컴퓨터 폴더처럼 정리되어 있다기보다, 뒤죽박죽 엉켜버린 실타래 같다. 어떤 기억은 구글링하듯이 검색하고 싶다. 기억을 기억하는 건 눈썹을 찌푸리며 애를 써도 되는 일이 아니다. 단지, 기억은 먹고 싶은 간식처럼 꺼낼 수 없다는 사실만은 분명하다.
그렇다면 마음에 대한 가장 오래된 기억은 무엇일까?
욱신거리는 기억이 하나 떠오른다. 이 기억에는 인덱스가 달려있어서 검색이 어렵지 않다. '마음이 아픈 기억'이라는 키워드의 검색 결과를 최신순으로 정렬하면 맨 아래에 있는 기억. '널빤지', '대못', '욱신거림'이라는 태그가 달려있다. 어렸을 적 부모님에게 혼나거나 형과 투닥거리고 나면 마음속에서 널판지를 그렸다. 엄마에게 야단맞으면 가슴이 욱신거리며 '엄마 널판지'에 대못이 하나 박혔다. 아빠도 형도 마찬가지였다. 욱씬거린다는 건 혼자서 만든 비유인 줄 알았는데, 공감능력이 좋거나 민감성이 높은 사람은 신체적으로도 반응이 있다는 걸 알고 나니 더는 기억을 의심하지 않게 되었다.
이 기억은 마음을 찾는 이야기의 머리말이자 프롤로그이다.
언젠가부터 마음을 잃어버렸다는 기분이 들었다. 알 수 없는 이유로 마음의 스위치를 스스로 꺼버렸다. 그게 나에게는 유일한 생존방식이었다. 대학 입시를 거쳐 공대를 나와 대학원을 지나 개발자가 되기까지 감정은 불필요한 방해물이었다. 그렇다고 믿었다. 지나온 환경은 나와 같은 감성적이고 민감한 사람에게 삭막하고 견딜 수 없는 곳이었고, 나다워질 수 있는 피신처를 찾지 못했다. 결국 자신을 지우고 세상에 맞는 모습을 연기했다. 그렇게 나는 유령이 되었고 그게 나라고 믿어버렸다.
살아남기 위해서 부정했던 마음은 억누를수록 커져만 갔다. 스물 여덟살이 되어 견딜 수 없던 마음은 눌러왔던 시간만큼 터져 나왔다. 견딜 수 없는 공허감의 크기만큼 방황은 길어졌다. 꾹꾹 눌러왔던 마음의 목소리를 외면할 수 없게 되었다. 그렇게 나는 지난날의 나와 이별하기로 했다.
앞으로의 이야기는 마음을 복원하는 이야기다. 동화 속 빵 부스러기를 줍는 아이처럼 기억 속에서 마음에 대한 기억을 찾아 글로 비추어본다. 새까만 밤하늘에서 희미하게 빛나는 별을 찾는 마음으로 글을 쓴다. 잃어버린 마음을 되찾는 일은 나를 찾는 일이자 나만의 이야기를 만들어가는 여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