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원 졸업
물론 그렇지.. 회사원일 필요는 없는데.
갑자기 이 무슨.
그도 그럴 것이 논문학기는 정말 바쁘다. 만약 누군가가 내 글을보고 '아하하. 대학원 졸업하기 쉽네 그까이꺼 대충~ 그냥~' 이라고 생각하시면 경기도 오산이다. 대학원은 들어오긴 쉬워도(?) 수료가 아닌 졸업이 굉장히 관문이 높다.
추후에 얘기하겠지만 나는 그래서 4학기에 졸업 못하고 논문 투고가 밀려 다음학기에 졸업했다.
훗.
그림 전시를 하기 이전에 어떻게 그림을 그리게 됐는지 부터 알아보자.
엄연히 '디자이너'와 '예술가'는 다른 얘기니 말이다.
국가 지원 사업 x 아티스트
일단, 갑자기는 아닌게 대학원에서 친해진 박사과정 선배가 있었다.
그의 나이는 아직도 모른다. 그냥 '형님'이라고 하면서 정말 잘 따랐다. 직업이라고 하자면 프리랜서 디자이너였는데, 막연히 그 처럼 살아보고 싶었다.
그는 여러가지 국책사업을 많이했었다. 여기서 말하는 국책사업중에서도 예술의 성향을 많이 띄는 사업 위주로 하셨었는데, 마지막으로 내가 기억하는건 을지로에서 하는 지속가능한 재생 프로젝트였다.
정확히 기억은 나지 않았지만 인쇄물 즉, 종이에 대한 본질적인 지속 가능에 대해 이야기를 파는 행위의 과제였고 사용자들은 씨앗을 키워 나무가 되는걸 경험 하게끔 하고. 어느 시인 하나의 시를 아날로그 타자기로 활자를 찍어가며 인쇄되는 과정을 결과물로 주는 것과 동일하였다.
'예술'이었다.
분명 붓과 펜을 사용하지 않았지만 사람들의 마음속에 무언가가 새겨질 수 있는 그런 행위 예술이였다.
선한 영향력.
이전에도 말했던가 나는 특정한 사람을 보고 세상을 많이 배우는편. 이라고
또 푹 빠져버렸다. 나는 그림을 다시 그리기 시작했다. 나만의 '획'을 가지고 싶었고 회사에서 시키는 모양새가 아닌, 오로지 내가 좋아하는 선과 색으로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다.
주제는 있었다. 'Ordinary specialist' 번역하면 '평범한 전문가'. 쯤 될까 내가 되고 싶은 사람은 좀 더 딥했다.
자기 자신이 무엇을 좋아하는지 알고, 겉으로 보기에는 평범하지만 그 일을 하기까지 많은 경험들로 단단해진 사람을 일컫는 단어였다.
그래서 주변인물들을 많이 그렸다. 각자 자신의 위치에서 빛나는 그들.
그렇게, 습작과 함께 미디어에 노출시킨 그림은 50장정도 되었지만 꾸준히 앞서말한 지속가능한 종이 인쇄에 대해서도 결과물을 멈추지 않았다.
UV인쇄 방식과 전사 인쇄도 경험해보고, 판화 방식의 인쇄인 실크인쇄까지 다양하게 그림들을 종이 그리고 제품에 인쇄를 해보았다.
결과물들이 차츰차츰 쌓여가는게 재미있었다. 누군가가 시켜서 하는게 아닌 내가 스스로 과제를 부여하고 실행해 갔으니 말이다.
인생을 최고로 여행하라 - 니체
니체는 말했다. 가만히 있으면 아무일도 일어나지 않는다. 의미없이 바쁘기만한 일을 하면서 사는 삶은 행복한 삶이 아니다. 즐겨라. 모든일을 유쾌하게하라
재밌었다. 내가 하는 일이 재미있었다. 유쾌하고 내일이 궁금했다.
졸업을 앞둔 대학원생의 3학기
미디어의 노출은 새로운 방향을 만들어 냈다. 그림을 보고는 신사동 한 갤러리의 관리원으로 부터 연락을 받았다.
모아둔 그림이 좋아서 전시를 해보면 어떻겠냐는 의뢰였고, 한참 미국뽕이 사라지지 않은 상태여서 나는 갤러리의 큐레이터님의 말씀중 이 단어에 끌려 전시를 시작했다.
'작가'님 전시해보시는거 어떠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