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면 평가의 늪
우리 회사에서는 매년 연말 동료 평가를 진행한다. 스스로 평가받을 사람을 X명 고를 수 있고 반대로 내가 평가할 사람을 X명 고를 수 있다. 세부적인 시스템을 알지 못하지만 인사팀에서 적합한 사람들을 매칭해서 나를 평가해주고자 자원한 사람 Y명과, 내가 평가받고 싶은 사람 Y명 정도에게 평가를 받는다. 나름 IT기업, 대기업에서 최근에 하고있는 '다면평가', '360도 평가' 같은 시스템을 선제적으로 경험해본 셈이다.
평가받을 사람을 고를 때는 당연하게도 1년 동안 같이 일 사람들을 고를 수 밖에 없다. 나에 대해서 조금이라도 알고 같이 프로젝트를 진행했어야 팀 멤버로서 나의 성과를 측정하고 피드백 해줄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다보니 다면 평가 때 사람들에게 평가 받기 어려운 두 부류가 있다. 직급이 높은 경우, 그리고 일을 많이 안한 경우. 사실 첫 번째 부류가 두 번째 부류와 교집합일 가능성도 있다. 나를 평가해줄 수 있는 사람이 없다는 건, 그만큼 사람들과 일을 하지 않았다는 것. 그런 면에서 다면 평가는 그 사람의 회사 성과를 투명하게 공개하는 것과 다름없다.
다면평가에도 여전히 틈은 있다. 1년 동안 같이 일을 많이했다면 당연히 인간적인 관계도 쌓였을터, 서로에게 좋은 평가를 해주자는 일종의 담합이다. 그래서 평가 매칭시켜주는 룰이 중요해보인다. 담합으로 측정의 오류를 만들지 않게 충분히 모수를 많이 가져갈 필요성이 있다.
처음 신입사원으로 들어가서 다면 평가를 받았을 때, 피드백 내용에 적잖은 충격을 받았다. 사람들이 생각보다 솔직하게 평가한다고 해야할까? 신입사원이다보니 프로젝트를 맡아서 하는 것보다는 남들이 시키는 것을 성실히 따라할 수 밖에 없는 입장이었다. 그런데도 피드백은 적나라게 '이 사람은 1년 동안 한 게 뭐가 있는지 모르겠다.' 라는 평가를 받았다. 동봉된 피드백 평가 점수도 당연히 낮았다. 분명 크게 틀린 평가가 아니지만 결과를 받았을 때 얼굴이 붉어지는게 느껴졌다. 익명 평가라는 뒤에 숨어서 '속으로는 이렇게 생각하고 있었구나'라는 배신감에 말 그대로 열이 받았다. 반사적으로 누가 이런 평가를 했는지 찾아내고 싶었다. 신입사원이다 보니 같이 일한 사람의 스펙트럼이 적을 수 밖에 없어 대충 누가 평가했을지 지금까지도 추측만 할 뿐이다.
반대로 회사를 몇 년 다니고 나름대로 다양한 사람들을 돕는 위치에 있다보니 이제는 좋은 다면 평가 결과 위주로 받는다. 아직도 부족하다라면서 따끔한 채찍질 평가를 주시는 분들이 있긴 하지만 무엇이 부족하고 어떻게 채워야할 지에 대해서는 이야기 해주지 않는다. 단답은 아니더라도 한 문장과 몇 개의 점수 등급으로 내 1년을 평가 & 피드백 받는 건 아쉬움이 남는다.
좋은 피드백을 주기 위해서는 상대방에 대한 많은 관심과 애정이 필요하다. 관심이 없다면 말 그대로 '할 말'이 없다. 무엇이 왜 부족한지, 그리고 어떻게 개선해야지 알려줘야하는데 이는 잠깐 스쳐가는 사이에서는 절대로 나올 수 없는 피드백이다. 평소부터 오랜 시간을 지켜봤어야 유의미한 피드백을 생각해내고, 전달할 수 있다.
피드백을 좋은 태도로 받는 것도 어렵다. 감정적으로 받아들이기 쉽상이기 때문이다. 게다가 한국 정서 상(혹은 교육환경 상) 어렸을 때부터 항상 좋은, 긍정적인 피드백만 받아왔을 가능성이 크다. 좋게좋게 이야기하는게 예의이자 미덕인 문화 환경 상 솔직한 피드백을 담백하게 받아들이는 것은 따로 훈련없이는 불가능하다. 그리고 더 중요한 피드백 수용 거부. 타인이 나에게 남긴 피드백은 특정 인물이 만들어낸 하나의 의견일 뿐이다. 그 의견조차 피평가자의 입체적인 모습보다는 자신의 관점에서 보이는 단면적인 부분만 보고 판단했을 가능성이 높다. 그렇기 때문에 나에게 부적합한, 부적절한 피드백은 수용 거부를 할 수 있어야한다. 하지만 상대방의 말이나 의견에 반박하거나 거부하는 것도 한국 정서에서는 훈련이 필요해보인다.
나는 피드백을 누군가에게 들을 때나, 타인에게 피드백을 줘야할 때 항상 좋은 피드백 예시와 넷플릭스의 4A를 여러 번 읽어보고 간다. 좋은 피드백 연습은 회사에서 벗어나더라도 필요한 스킬이다. 상대방이 친구, 연인, 배우자, 아이, 부모, 어떤 관계에 있더라도 우리는 서로 간 영향을 주고 받는다. 이때 조금이라도 유익한 방향으로 서로에게 영향을 주고 받고자 한다면 지금이라도 피드백 연습을 해보자.
1. Aim to Assist
상대방에게 진심으로 도움이 될 피드백을 준다는 마음가짐이 필요합니다. 인격적인 비판이나 현재 피드백과 무관한 과거 이야기를 꺼내는 건 큰 도움이 되지 않을 것입니다.
2. Actionable
피드백 대상자에게 피드백을 줄 때는 수정 가능하고, 개선이 가능한 부분에 대해서 피드백을 줘야합니다. 애초에 개선할 수 없는 부분에 대해서 피드백을 주는 건 비난 밖에 되지 않습니다.
3. Appreciate
일상생활에서 타인에게 어떤 말을 했을 때 그 사람의 표정과 답변에 따라 기분이 달라지는 경우가 많습니다. 일대일 피드백에서는 사소한 반응이 더 크게 작용할 수도 있습니다. 나에게 피드백을 준다는 전제조건은 '나에 대한 관심'입니다. 나의 성장에 도움을 주는 피드백에는 항상 감사함을 표시해야합니다.
4. Accept or Discard
타인이 주는 피드백은 자체 필터링을 한 번 거쳐서 수용해야합니다. 모든 피드백을 수용하고 개선해나갈 필요는 없습니다. 나의 상태를 제일 잘 알고 있는 건 나 자신 뿐입니다. 상대방이 오해하거나 잘못된 피드백을 줄 수도 있음을 항상 경계해야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