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형근, 『우리 안의 친일』
가끔씩 정치권으로부터 불거져 나오는 친일 논란을 보면 씁쓸하다. 일제로부터 독립한 지가 얼만데 아직도 논란이 된다는 것이 불가사의하기까지 하다. 일제 청산을 제대로 하지 못한 대가라고도 할 수 있고, 이웃하는 나라로써 영원히 해결되지 않을 문제라고도 할 수도 있다. 아직도 제대로 된 반성을 하지 않으면서 여전히 제국주의를 꿈꾸는 일본 ‘일부’ 세력 때문이라고도 할 수 있으며, 우리 중에 일본에 대해 제대로 된 요구를 하지 못하는 어정쩡하거나, 혹은 그 세력의 본질에 대해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는 이들이 있기 때문일 수도 있다. 과거에 대한 집착일 수도 있으며, 미래를 위한 제대로 된 과거 해결이 미진한 까닭일 수도 있다. 이것들이 모두 옳을 수도 있으며, 또 모두 그를 수도 있다.
이 문제는 복잡하다. 이 문제를 쾌도난마처럼 단칼에 정리하는 이들도 있지만, 나는 그런 간단한 해결 뒤에 나타나는 또 다른 복잡한 문제들이 걱정스럽고, 또 난감하다. 일제에 나라를 먹히게 된 까닭은 차치하고서라도, 이후 일제강점기라는 시기, 혹은 상황에 대한 제대로 된 성격 규명, 그 시기를 살다 간 보통 사람들의 태도, 그리고 그 이후 일본에 대한 태도의 문제 등등이 모두 논쟁의 주제가 될 수 있다.
조형근의 『우리 안의 친일』은 바로 그 문제들을 간단히 해결하려 들지 않는다. 그리고 자신이 해결할 수 있다고도 나서지 못한다. 다만 어떤 것들을 생각하고, 또 반성하고, 또 주장해야 하는지를 고민하고, 함께 논의한다. 우리의 민족주의에는 과연 제국주의적 요소가 없는지를 반성하고(“민족주의, 제국의 욕망과 동행하다”), 식민지근대화론의 정체를 밝히고, 이 이론의 옹호와 비판 모두에 관련된 한국 학계의 논의 수준에 대해 반성하면서 어떻게 하면 이를 극복해 낼 수 있는지를 이야기한다(“식민지근대화론 넘어서기”).
3장(“실력 쌓아서 좋은 일 하자는 말”)은 가장 인상 깊게 읽은 부분이다. 젊었을 때 독립운동에 나섰다가 고초를 겪은 후 실력양성론을 받아들인 의사들의 이야기다. 물론 어떤 이는 의사의 길을 뿌리치고, 혹은 그 길과 함께 가열찬 독립운동의 길을 끝까지 간 이도 있지만, 친일은 아니지만 실력양성을 주장하면서 상대적으로 편안한 길을 택한 이들이 있었다. 저자는 이들의 삶을 쫓아 살펴보면서 그들의 선의를 의심하지 않는다. 하지만 선의만으로 세상을 바꾸지 못한 현실을 이야기한다. 이는 해방 이후, 혹은 민주화 이후 현실의 문제이기도 하다.
4장에서는 과거사 청산의 모범이라고 일컫는 프랑스와 독일의 사례를 비판적으로 검토하고 있다. 물론 우리보다는 나았지만, 그래도 여전히 불완전했던 과거사 청산이었고, 또 그것을 미화해야만 했던 그들의 사례를 통해 역시 우리의 역사를 반성하고자 한다. 5장은 창씨개명에 관한 이야기다. 창씨개명에 둘러싼 이야기도 간단하지만은 않다는 것을 처음 알게 되었다. 왜 일제가, 정확히는 일본 총독이 창씨개명을 하려고 했는지에 대해서도 제대로 알지 못했다는 게 부끄러울 지경이다. 그리고 그들이 원했던 일본식 이름이 무엇이었는지도, 또 창씨개명을 통해 오히려 가문의 역할이 커진 아이러니한 일이 벌어졌다는 것도 처음 알게 된 이야기다.
이 책은 고민의 산물이며, 또 독자들로 하여금 고민을 요구하고 있다. 전혀 낯선 것은 아니지만, 애써 저 멀리 떼어 놓아 외면했던 문제들이다. 용감해야 고민하고, 또 그 고민을 삶에 통합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