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비아 나사르, 『사람을 위한 경제학』
이 책을 읽다 중간 여백에다 이렇게 적었다.
“경제학자, 어쩌면 예언자, 어쩌면 해결사, 혹은 허풍쟁이”
경제학이란 학문을 제대로 공부해보지 않은 입장에서 나의 경제학, 내지는 경제학자에 대한 평가는 당연히 인상에 그치고, 피상적일 게 분명하다. 그렇지만 그 피상적인 인상도 하나의 평가라는 점을 인정할 수 있지 않을까?
오래전 대학 입학 후 처음 접했던 경제학은, 당시의 조류에 따른 것이었다. 지금의 시각에서 보면, 아니 당시의 관점에서 보더라도 치우친 것이었다. 사실 경제학이라기보다는 하나의 고정된 관점에서 해석되는 정치학이었고, 사회학이었다.
시야가 조금 넓어지면서 서로 대립되는 관점의 경제학을 읽게 된 것은 그로부터 시일이 좀 지나서였다. 나의 시각은 이동했지만 어느 지점을 건너가지는 않았던 것 같다. 물론 지금도 여전히 이동하고 있지만 여전히 어느 근처에서 헤매고 있다고 봐야할 것 같다. 실은 그 헤맴이 얕긴 하지만 공부의 결과이고, 고민을 싹 티우고, 생각의 여지를 주는 것이라 여긴다.
실비아 나사르의 『사람을 위한 경제학』 (원제: “Grand Pursuit: The Story of Economic Genius”)는 다시 한번 경제학에 대한, 경제학자에 대한, 그리고 사회와 역사에 대한 나의 시각을 넓히고 흔들어댄다.
원제처럼 ‘거대한’ 흐름을 만들어냈던 경제학자들, 이른바 ‘경제학의 천재들’의 활약을 보여준다. 책이니 글로 쓰여 있지만, 많은 장면을 보여준다. 옮긴이가 ‘옮긴이의 말’을 대신해서 시즌제 드라마 형식의 장면들을 이야기하는 것은 신선하면서도 굉장히 타당한 시도다. 옮긴이의 글을 읽기 전부터 나는 장편 다큐멘터리를 생각하고 있었으니.
각 회차마다 주인공이 있다.
엥겔스와 마르크스에서 시작해서, 앨프리드 마셜, 비어트리스 포트(결혼 후에는 웨브), 슘페터, 존 메이너드 케인스, 하이에크, 어빙 피셔, 조앤 로빈슨, 폴 앤서니 새뮤얼슨, 아마르티아 센.
이들 대부분은 한 차례 등장하고 마는, 그런 일회적 주인공이 아니다. 엥겔스와 마르크스가 주인공으로 활약하는 장은 첫 장뿐이지만, 끝까지 그 이름과 이론, 생각을 인용할 수밖에 없다. 인도의 복지경제학자 아마르티아 센이야말로 마지막 장에만 등장하지만, 그에게 이르는 길은 첫 장부터였다는 점에서 내내 주인공이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마르크스에서 경제사상가의 이야기를 시작한다는 것은 경제학이 사람과 사회의 빈부를 생각하기 시작한 이후부터 경제학자 사이의 논쟁이 생겼고, 이 책은 바로 그것을 다루겠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때부터 가난이 불가피하고 받아들일 수밖에 없는 운명이라는 것을 거부한다는 점에서 경제학이 적극적인 역할을 하기 시작한다. 경제학이 국가의 정책을 좌지우지하고, 그렇게 함으로써 사회를 바꾸는 역할을 한다는 자각을 하게 된 것이다. 이 책의 주인공들은 바로 그런 역할을 자임했던 이들이다.
아무래도 가장 우뚝 서 있는 주인공은 케인스다. 그가 주장한 것을 중심으로 옹호하거나 반대하는 편으로 경제학자들이 나뉘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보다 더 국가의 역할을 강조한 이들도 있었고, 단순한 좌파적 경향에서 벗어나 소련의 현실을 잘못 인식한 경제학자도 있었다. 반대로 처음에는 그의 편에서 경제학을 시작했다가 반대편으로 넘어간 경제학자도 있고, 반대편에서 결국에는 케인스의 생각을 옹호한 이도 있다. 지금도 경제에서 국가의 역할을 부인하는 이가 없는 한에는 케인스는 모든 경제학 논쟁의 중심이 있다고 할 수도 있을 것 같다.
여기의 경제학자들은 먼 미래를 보거나, 혹은 당면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현상을 파헤치고, 이론을 세우고, 수학적 방법을 써왔다. 그 진지하거나 편협하거나 개인적 영광에 집착하고 욕망에 휘둘리거나 하는 경제학자들의 모습들을 선명하게 바라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