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훈, 《한국인의 눈으로 본 근대 일본의 역사》
어쩌다 보니, 혹은 그래야 할 것 같아서 일본에 관한 책을 간간이 읽게 된다. 물론 그 가운데는 우리와 불행한 역사를 가져온 일본에 대한 분개를 담은 책이 없지 않지만, 될 수 있으면 일본이라는 나라의 국민, 문화, 역사를 조금이라도 알 수 있을 만한 책을 읽으려 한다.
그래서 박훈 교수가 우리의 경제적, 문화적 힘이 이만큼 되었으니 일본에 대해서 비분강개식이 아니라 객관적으로 그들의 역사를 찬찬히 살펴볼 때가 되었다는 말에 동의를 한다. 그런데 사실은 그런 책들이 나와 있다. 그러니까 박훈 교수가 일본사 전문가이긴 하지만, 그만이 독점하고 있는 내용은 아니라는 얘기다. 물론 그게 주류가 아닐 뿐.
한국인이 일본의 역사를 보고 쓸 때 우리와의 관련성을 위주로 들여다보게 된다. 물론 그게 우리의 입장에서는 당연한 것이고 도움이 될 때가 많지만 그 역사에 담긴 맥락과 일본 자체의 성격에 대해서는 놓치게 되는 경우가 종종 있을 듯하다. 박훈 교수는 바로 그 지점을 메꾸고자 한다. 어떻게 일본은 개항 후 근대의 길을 성공적으로 걸을 수 있었는지, 어떻게 제국주의, 팽창주의의 길을 걷고, 그래서 패망하게 되었는지를 한국인의 시각에서, 일본 자체를 바라보려고 노력하는 것이다.
역사는 대체로 다른 책에서 기술하고 있는 것과 그다지 다를 바 없지만, 몇 가지 새로운(?) 시각을 발견한다.
첫 번째로는, 일본이 쇄국에서 개항으로, 혹은 외국에 대한 몰관심에서 광포한 팽창주의로 정말 놀랍도록 신속하게, 거의 아무런 설명도 없이 변화했다는 점이다. 이런 점을 강조하면서 지적한 것은 많이 보지 못한 것 같다.
둘째로는, 근대 이전의 조선과 일본의 비교다. 조선은 중앙집권적이고, 일본은 지방분권적이었다는 게 일반적인 설명이다. 그런데, 조선의 경우는 중앙의 권력이 구석구석까지 미치지 못했고, 일본은 번 체제 하에서, 그리고 국(國)이라는 명칭을 달고서 행정력이 구석구석까지 미쳤다고 본다. 그런 크게 보면 지방분권적이지만, 들여다보면 국가의 권력이 모든 부분에 미치고 있었다는 점이 근대 이후 전 국민이 일사분란하게 행동할 수 있는 토대가 되었다고 보고 있다.
셋째로는, 민주주의에 관한 것인데, 일본은 민주주의에 대한 경험이 일천하고 또 전체주의나 독재에 대한 국민적인 저항이 없다고들 한다. 그런데 박훈 교수는 다이쇼 데모크라시 시기를 예로 들면서 그들은 우리보다 더 민주주의를 치열하게 고민했었다고 서술하고 있다(그런데 그걸 받아들이더라도, 왜 우리나라는 그렇지 않다고 단정적으로 얘기하는 근거는 잘 모르겠다).
넷째로는, 일본이 조선을 식민지화한 것이 매우 무리수였고, 시대에 역행하는 것이었다고 보는 점이다. 근대 시기의 전 세계 많은 식민지화의 역사는 바로 이웃나라는 식민지화한 경우는 거의 없었다. 또한 국가 체제가 분명한 국가, 민족 의식이 깨어 있는 국가를 식민지화한 경우도 없었다. 그리고 당시에는 식민지 국가에 대해 독립의 타임라인을 제시하면서 식민 체제를 해체해가는 상황이었다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일본이 조선을 식민지화한 것은 상당히 이상한 일이었다고 본다. 그리고 한반도를 점령하는 바람에 바로 만주를 건너다보고, 만주에 가보니 중국 대륙이 보이고, 그러면서 어찌할 도리 없이 팽창주의에 빠져들고, 결국은 패망의 길로 접어들게 되었다는 것이다.
일본의 근대사를 정리해서 읽을 수 있었고, 새로운 시각에 대해서도, 그것에 대해 동의하든 그렇지 않든 생각해 볼 거리를 준다.
그런데 끝으로 한 가지. 느닷없는 이승만 칭찬은 좀 거슬린다. 그가 쓴 책 《일본의 가면을 벗기다(Japan Inside Out)》에서 1940년대 세계 정세를 아주 면밀하게 파악하고 있었고, 태평양전쟁이 터지자 라디오 연설을 통해 사자후를 터뜨려 많은 호응을 받았다고 한다(이에 대해서는 몰랐던 사실이긴 하다). 일본 근대사를 다루는 책에 이승만에 대해 쓰고 있는지도 이해가 가지 않지만, 그의 독립 운동 자체를 긍정적으로만 보지 않는 시각이 많은 상황을 애써 언급하지 않는 것도 조금은 균형이 잡혀 있지 않아 보인다(이런 나의 시각을 편향되어 있다고 하려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