날것의 모순적이고 설화적인 소설, 고래

천명관, 《고래》

by EN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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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모한 열정과 정념, 어리석은 미혹과 무지, 믿기지 않는 행운과 오해, 끔찍한 살인과 유랑, 비천한 욕망과 증오, 기이한 변신과 모순, 숨가쁘게 굴곡졌던 영욕과 성쇠”


이 유명한 소설을 이제야 읽었다. 언제부터 이 소설에 관한 소문을 듣고 있었는지는 잘 기억나지 않지만, 아무튼 절정은 부커상 최종 후보에 올랐다는 뉴스를 들은 때였다. 그게 2023년이었으니 2년이 지나도록 계속 의식은 하면서 읽기를 미뤄뒀던 셈이다. 2004년에 발표된 소설을 19년이 지나서 읽으나 20년이 지나서 읽으나 별 차이가 없다는 생각도 했다. 그만큼의 생명력을 지닌 소설이라 생각했으니.


거의 헐떡이며 읽었다. 다음 내용이 궁금했고, 또 그걸 어떻게 쓰고 있는지가 궁금했다. 계속 궁금했다. 정신 차리지 않으면 날밤을 샐 수도 있겠다 싶어 급히 브레이크를 걸었다. 하지만 아침 새벽에 깨자마자 다시 집어 들어 마저 읽을 수밖에 없었다. 뭐, 이런 소설이 다 있어, 그랬다.


어쩌면 황당무계한 내용들이 섞여 있다. 그리고 이야기의 방식도 진지한 소설 같다가 마치 옛 설화의 작자가 이야기하는 투로 넘어갔다가, 무성영화 시대의 변사 같다가... 아무튼 그렇게 종횡무진 독자를 들었다 놨다 하면서 이야기를 끌고 간다. 대체로는 단문인데, 간혹 한 페이지를 한 문장으로 이어가면서 재주를 부린다. 당겼다가 놔주었다가, 다시 한꺼번헤 확 끌어당기며.

- 자, 한번 내 얘기 좀 들어봐. 이게 말야, 어떻게 된 거냐면 말야. .... 그게 그렇게 된 거야. 어때? 재밌어?

그렇다. 천명관은 타고난 이야기꾼이 틀림없다. 이 한 권의 소설로도 충분히 알 만 하다.


몇 인물이 이야기의 중심이 있지만, 그래도 가장 가운데는 금복이 차지한다. 맨 앞에 인용한 것과 같은 삶을 살다 간 여인이다. 파란만장한 그녀의 삶을 요약하는 것은 간단하지는 않지만 불가능한 것도 아니다. 그런데 줄거리 요약보다는 농염한 매력의 그녀가 거쳐간 남성들이(아버지에서 생선장수, 걱정, 칼잡이, 文 등) 모두 비극적인 최후를 맞는다는 설정이 의미 있다. 그리고 결국은 그녀가 남성으로서 변신을 꾀하면서 역시 비극적인 최후를 맞이한다. 한 여인의 생을 따라가면서 천명관은 어떤 교훈을 주려고 하지 않는다는 점도 중요하다. 그런 삶이 있었다는 것을 보여주고, 그 끈질긴 생명력과 거기에 얽힌 놀라운 이야기를 들려주는 것으로 만족한다.


그리고 춘희가 있다. 금복이 걱정 사이에 낳은 것으로 추정되는 거대한 몸집의 벙어리이자 자폐인 딸. 그리고 어미 금복으로부터 단 한 톨의 애정도 받지 못한 딸. 그런데 이 춘희의 존재야말로 이 소설에서 가장 미스터리하다. 분명 걱정을 닮았지만 걱정과 관계를 한 것은 4년 전이고, 태어날 때는 7kg이다. 말은 하지 못하지만 코끼리 점보와 대화를 나눌 수 있다. 마치 짐승 같은 생명력으로 살아남아 홀로 평품 벽돌을 구워낸 ‘붉은 벽돌의 여왕’, 춘희.


난 이런 춘희가 어쩌면 순교자 같다는 생각도 했다. 온갖 굴욕과 탄압, 고통에도 전혀 개의치 않으며 묵묵히 자신이 행하는 일이 구원으로 이어질 거라 믿은 게 춘희였다. 그리고는 실제로 존해했는지, 아니면 사람들의 상상 속에 있었던 것인지 모호해지는 존재. 작가는 이 이야기가 사실인지, 아니면 그냥 꾸며낸 얘기인지, 혹은 요금 얘기로 어느 정도는 근거는 있지만 MSG를 친 얘기인지를 굳이 밝히지 않는다. 역시 이런 재미있고 놀라운 이야기가 있는데 들어보지 않을래? 이런 식이다. 이런 걸 무심하달까, 뻔뻔하달까? 아니면 교묘하달까?


그렇게 관심을 보이는 독자들에게 쉼 없이 쏟아지는 이야기의 폭포가 쏟아지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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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는 “그것이 OO의 법칙이었다.”는 말을 수도 없이 반복한다. 이것을 찾아가는 것도 이 소설을 읽는 재미이기도 한데, 모든 것이 법칙이다. 자본의 법칙, 사랑의 법칙, 세상의 법칙 등등 보통 생각할 수 있는 그럴 듯한 법칙도 법칙이라지만, 모루의 법칙과 같이 모든 것에 법칙을 갖다 붙인다. 말하자면 세상의 모든 것이 그럴 만해서 그렇게 되었다는 식이다. 그게 그런 거야. 어쩔 수 없지만 어쩌겠어. 그것은 허무주의 같기도 하지만, 세상을 비꼬는 해학에 가깝다. 어떤 것이 법칙인 줄 아는 것이 그런 일이 벌어지기 전이 아니다. 어떤 일이 벌어지고 나서야 “그것이 OO의 법칙이었다.”고 하는 것. 말하자면 경험의 법칙인 셈이다. 법칙을 미리 알고 있으면야 이런 일들이 벌어졌을까? 작가는 인간 세상을 비틀고 있다.


이 소설은 정제되어 있지 않다. 하고 싶은 얘기를 쏟아내는 날 것 같은 느낌이다. 그런데 그게 세련되었다. 이 모순적인 소설. 재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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