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적 치매를 해결할 사상의 인물들

미하엘 슈미트잘로몬, 《생각의 진화》

by EN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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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이렇게 읽으면 참 혼란스럽다. 긍정적인 면과 부정적인 면이, 그냥 혼재되어 있는 것이 아니라(대부분의 책이 그렇다) 서로 완전히 다른 측면에서 긍정적인 면과 부정적인 면이 도드라진다. 이럴 경우 이 책을 어떤 관점에서 평가하고 얘기를 해야 할지 난감하다. 하는 수 없다. 둘 다 얘기하는 수밖에.


우선은 긍정적인 면부터.


신선했다. “생각의 진화”라는 제목은 내용과는 좀 어긋나 있다. 책은 현대 인류의 사상에 영향을 준, 혹은 현대의 사상적 문제를 해결하는 데 의미가 있는 생각을 남긴 인물들을 소개하고 있지, 어떤 사상의 진화를 보여주고 있지는 않다. 그것이 결국은 진화적 인본주의로 귀결된다고 할지라도 말이다. 그런데 이 책에서 신선한 점은 저자가 고른 인물의 면면이다. <머리말>에서 좀 장황하게 자신의 선택에 대해 방어하고 있다. 설문 조사도 아니고, IQ 순도 아니고... 그냥 자신의 기준이다. 그러면서도 왜 백인 남성 위주인지에 대한 비판에 대해서도, 조금은 비논리적인 방어를 하고 있다. 사실 그런 것은 필요 없었다. 그가 “‘인류세’에 인간의 문제를 더욱 합리적으로 해결할 수 있는 현대적 세계관을 발전시키는 데 특별한 방식으로 도움이 되는 생각을 정립”한 인물을 골랐다고 했을 때, 정말 그런지에 대한 판단만 하면 되니까 말이다.


신선한 점은 그런 인물들이 다른 책에서도 흔하게 거론되는 인물들의 조합이 아니라는 데 있다. 찰스 다윈이나 알베르트 아인슈타인, 프리드리히 니체, 카를 마르크스 같은 인물들은, 이련 류의 책이라면 누구라도 넣거나 넣기를 고민하는 인물이다. 마리 퀴리나 칼 포퍼 같은 인물은 어떨까, 좀 고민되지만 그래도 보편적인 선택 쪽에 기운다. 그런데 대륙이동설의 알프레트 베게너(‘판구조론’의 베게너라는 표현은 틀리지만)나, 칼 세이건, 줄리언 헉슬리는 상당히 의외고, 거기에 에피쿠로스는 와! 이랬다. 니체에 카뮈를 연결하고, 카를 마르크스와 에리히 프롬을 함께 언급하는 것은 정말 ‘나로서는’ 뜻밖이었고, 조금 통쾌하다는 생각도 했다.


그러나 읽다 보면 왜 이들을 선택했는지를 상당히 이해할 수 있다. 이를테면 에피쿠로스의 사상은, 그의 모든 저작들이 거의 망실된 상태이긴 하지만, 상당히 현대적이고, 현대의 문제를 해결하는 데 ‘특별한 방식으로 도움이 되는 생각’이라고 판단할 수 있다. 과학자이면서 유네스코 초대 사무총장을 지낸 줄리언 헉슬리 역시 마찬가지다. 낯익은 인물들에 대한 반복되는 상찬보다는 이렇게 새로운 인물들을 새롭게 해석하고 전체를 이루는 책은 좋아할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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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편집과 번역이 정말 실망스럽다.

잘못된 내용도 쉽게 눈에 띈다.

몇 가지 예를 든다(다 체크할 수도 없었다).


32쪽. “하지만 월리스의 배려 덕분에 두 사람은 ‘신서적인 합의’에 이르렀고 마지막 순간에 이를 막을 수 있었다.”

- 다윈이 월리스의 논문과 함께 린네 학회에서 자연선택설 논문을 발표한 것은 월리스가 배려하거나 합의를 한 것이 아니었다. 후커와 라이엘 등의 조언에 따라 단독으로 한 것이었고, 월리스가 나중에 인정하고, 심지어 감사를 표했다. 이것은 내가 아는 내용이라서 이렇게 수정해서 알아차릴 수 있는데, 이런 것이 책 전반부에 눈에 띄면 뒤의 내가 잘 모르던 내용 중 어떤 것이 잘못된 내용일 수도 있는데 알아차리지도 못할 것이란 염려가 든다.


16쪽. “좋았으리라 생각하는 인물 10인의 인물


61쪽. “아인슈타인은 이후 평생 베른에 살면서도”

- 아인슈타인이 평생 베른에 살다니... 아마도 베른에 평생 살았던 친구들 얘기일 것이다.


67쪽. “‘신체의 에너지 함량(E)은 나머지 질량(m)에 광속의 제곱(c^2)을 곱한 결과’라는 통찰”

- 신체가 아니라 물체일 것이다.


69쪽. “1914년 베를린으로 이주한 후 알베르트와 밀레바는 두 아들 한스와 에두아르트를 사이에 두고 헤어지게 되었다.”

- 아들들을 사이에 두고 헤어졌다는 게 무슨 의미일까?


72쪽. “아인슈타인은 처음에 이 개념을 불필요한 학식으로 간주했지만”

- ‘학식’이 아니라 ‘수학식’이겠지?


74쪽. “코페르니쿠스, 뉴턴과 어깨를 나란히 하며 ‘세계사의 새로운 위인’으로 불리게 되었지만 끊임없는 의심을 피할 수는 없었다.”

- 무슨 의심일까? 앞에는 그런 내용이 없는데...


76쪽. “테레지엔슈타트 강제수용소로 추방되었고”

- 강제수용소로 추방되는 경우도 있나?


92쪽에선 ‘앙리 베크렐’, 93쪽에선 ‘앙리 베케렐’. (멀리 떨어져 있지도 않다. 마주보고 있다.)


124쪽. ‘탄소기’

- ‘석탄기’


126쪽. “마지막 탐험(1913)에서 목숨을 걸고 탈출한 지 얼마 되지 않은 쉰 살에”

- 1913년에서 1930년 사이가 얼마 되지 않은 걸까? 원문이 뭐였을까 궁금하다.


129쪽. ‘하러’라 쓴 바로 네 줄 아래에 ‘해러’.


147쪽. ‘유세포’

- 정말 심각하다. 영어로 ‘eukaryotic cell’의 번역일 텐데, ‘진핵세포’다. 여기엔 괄호를 하고 ‘핵과 세포 소기관을 가진 세포’라고 친절하게 설명까지 달았다. 그런데도 유세포라고 번역하다니...


147쪽. “소화관과 같은 기관의 지원 없이는 생존할 수 없는 약 100조 개의 외부 박테리아도 서식하고 있다.”

- 소화관에 박테리아가 산다는 말 같은데...


177쪽. “에피쿠로스의 교훈 시 <사물의 본성에 대하여>”

- 에피쿠로스가 아니라 루크레티우스이든지, <사물의 본성에 대하여>가 아니라 <자연에 관하여>일 텐데, 뭔지는 알 수 없다.


304쪽. “아인슈타인의 양자 이론을 반대했던 노벨 물리학상 수상자 닐스 보어와 베르너 하이젠베르크”

- 정반대다. 닐스 보어와 베르너 하에인베르크의 양자이론을 반대했던 아인슈타인.


347쪽. “<종의 기원>이라는 제목에서 알 수 있듯 그는 새로운 종이 어떻게 생겨나는지 제대로 설명하지 못했다.”

- ‘종의 기원’이라는 제목과는 달리... 설명하지 못했다.


348쪽. “식물 왕국”

- 아마도 Kingdom을 ‘왕국’이라고 번역한 모양이다. 분류학에서 Kingdom은 ‘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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