괴물은 인류의 가혹한 진실

나탈리 로런스, 《매혹의 괴물들》

by EN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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괴물은 존재하지만, 존재하지 않는다.

실제 존재하거나 존재했던 동물(예를 들어, 뱀, 천산갑, 공룡 같은 것들)이 괴물이 되기도 하고, 상상의 존재(이를테면, 용, 미토타우로스, 그렌델, 리바이어던 같은 것들)가 괴물이 되기도 한다. 그러나 존재하거나 존재했던 동물들도 그 존재 자체만으로 괴물이 되지 못한다. 그것들이 괴물이 되기 위해서는 인간의 상상력이 보태져야 한다. 인간의 상상력이 만들어낸 존재들은 말할 것도 없다.


나탈리 로런스의 《매혹의 괴물들》은 작년에 읽은 이산화의 《근대 괴물 사기극》과 비교할 수밖에 없다.


비교하자면 이렇다.

이산화의 《근대 괴물 사기극》가 근대 이후에 인간이 만들어낸 괴물들을 하나하나 목록을 만들어 이야기를 전개하는 데 반해(https://blog.naver.com/kwansooko/223887374617), 나탈리 로런스의 괴물 이야기는 괴물을 유형화했다.

이산화의 《근대 괴물 사기극》이 인문적이지만, 또 어떤 면에서는 과학 교양 도서에 속한다고 한다면, 나탈리 로런스의 《매혹의 괴물들》은 역사적이고, 신화적이다.

그리고, 결정적으로 이산화의 《근대 괴물 사기극》은 오롯이 가짜 존재인 괴물을 만들어낸 인간의 어리석음 내지는 기괴성을 비판하고, 현대에도 끝내 퇴치하지 못한 괴물에 대해 이야기하는 데 반해, 나탈리 로런스의 괴물 이야기는 괴물을 만들어낸 인간의 상상력에 대해 부정과 긍정이 섞여 있다. 사실은 이 부정과 긍정을 구분해 내는 것이 이 책 읽기에서 가장 중요한 면이라고도 할 수 있다.


나탈리 로런스가 괴물에 대해 부정적으로 보는 것은, 거기에 편견이 담겨 있어서다. 동물에 대한 무지에 기초한 편견, 여성에 대한 편견, 소수자에 대한 편견, 인종에 대한 편견 등등이 괴물을 만들어내고, 그 괴물을 무찌르는 것을 사명으로 삼게 되었다. 어찌 되었든 괴물은 존재하지 않는 것이니(존재하더라도 존재하지 않는 것이라는 얘기는 이미 했다), 그것은 가짜다. 그런 괴물을 만들어낸 편견은 잘못된 것이다. 그래서 그런 괴물을 상상해낸 인간이 그 괴물에 파괴될지도 모른다고 경고하기도 한다(“인간은 온갖 괴물을 상상해 왔으나 결국은 자신의 괴물성이 인간을 집어삼길지도 모르는 일이다.”)


그러나 그것만이 전부가 아니다. 나탈리 로런스는 350쪽에 이르는 본문의 거의 대부분을 앞에서와 같은 기조를 이어갔다(맨 처음의 인류 조상이 남긴 동굴 벽화는 아니고). 그런데, 마지막 부분에 와서 갑자기 기조를 전환한다(그렇지 않았다면 이 책 제목을 <매혹의 괴물들>이라고 짓지는 못했을 것이긴 하다. 아무리 우리말 제목이더라도). 괴물을 상상해 낸 것은 인간의 창의력이고, 그런 상상력이 현대에 와서는 메말라 버리는 것이 아닌가 하는 아쉬움을 드려내는 것이다. 인간이 세상, 즉 자연과 맺는 관계에서 괴물은 불완전한 존재로서 스스로를 인식하는 존재라는 얘기도 한다. 그러면서 마지막 말은 우리 안의 괴물을... '받아들일 수 있는 길'을 찾자고 한다.


조금은 혼란스러운데, 다시 앞에서 한 괴물들 얘기로 돌아가 보면 그런 뉘앙스가 없지는 않았음을 깨닫는다. 결국은 왜 인간이 괴물을 만들어낼 수밖에 없는 지에 대한 이야기이니, 어쩔 수 없이 인간성에 대한 통찰로 나아가갈 수밖에 없다. 그리고 인간이 지나온 길을 모조리 부정할 수 없다면, 받아들여야 한다면, 괴물의 긍정성을 찾아내야 하는 것이다. 과거의 인류가 자신의 어둠을 자꾸 자연에 투사해 왔다면, 그럴 만한 이유가 있는 것이다. 다만 거기에 담긴 바람직하지 못한 편견을 제거할 수만 있다면... 그러나 그건 쉬운 일이 아니다.


“괴물을 아주 지워 버릴 수는 없다. 괴물은 인류의 가혹한 진실이며 어디로든 가지 않는다. 괴물들이 들어오지 못하게 문을 걸어 잠가도 바깥에 남겨진 존재들은 악몽이 침투하듯 난폭하게 밀고 들어온다.” (194~195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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