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이 망쳐놓은 세계에도 자연은 적응한다

데이비드 패리어, 《자연의 상상력》

by EN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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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이 자연을 파괴하고, 지구의 생명에 위협을 주고 있다는 것을 부인할 수 없다. 귀 아프게 듣고, 정말 많이 읽어왔다. 그 다 알고 있는 얘기를 쓰느라 종이, 그러니까 숲의 나무를 허비한다는 느낌을 받을 때도 가끔은 있다. 그러니 이제는 더 이상 얘기하지 말고, 쓰지 말자는 얘기가 아니다. 뻔한 얘기 말고, 뭔가 의미 있는 얘기를 듣고 싶고, 읽고 싶다는 얘기다(물론 가끔 뻔한 얘기도 필요할 때가 있다).


우리가 자연을 훼손하고, 생명의 운명을 바꾼다. 그런데 자연은, 생명은 그저 수동적인 존재이기만 할까? 생명은 진화의 지배를 받는다. 그러니 인간이 바꾸어놓은 환경은 생명이 진화의 배경이 될 수밖에 없고, 살아남은 생명은 바뀐 환경에 적응한 것일 터이다. 이를테면 독성 물질(폴리염화바이페닐)이 들러붙어야할 지질의 수용체가 변화하여 그 독성을 피해나가며 살아남은 톰코드라는 물고기처럼 말이다.


데이비드 패리어의 《자연의 상상력》에는 이렇게 새로운 환경에 적응해나가는 생명들에 대한 이야기가 한 무더기다. 한두 가지 더 얘기하자면, 인간이 만들어놓은 도로에서 쌩쌩 달리는 차들에 급히 피하기 위해 둥근 날개로 적응한 절벽 제비가 있고, 도심 하천의 빨라진 유속에 체형을 맞춘 미국납줄개같은 여류도 있다. 그러나 이런 예가 한 무더기라고 한다면, 인간이 만든 물질에 의해, 인간이 바꾸어 놓은 자연에 의해 피해를 입고, 사라져가는 생물의 예는 한 가득이다.


이 역시 몇 가지 예를 들어보면 이렇다(이전에는 몰랐던 것들이다).

이산화탄소 농도가 높은 환경에서 자란 자리돔 치어는 원래는 피해야 할 포식자의 냄새에 오히려 끌린다고 한다. 후각에 치명적인 교란이 오는 것이다.

혹등고래 등은 인간이 띄워놓은 배들과 해저를 개발하는 시끄러운 소리에 움직임이 느려지고, 하강 속도가 줄어들고, 먹이를 잡는 행동도 줄어둔다.

기온이 오르면서는 생물들은 이에 적응해나가는데, 이 적응의 속도가 다르다. “양서류는 나무, 새, 나비보다 두 배 빠르게 계절 변화를 따라간다고 하는데, 이 때문에 먹이와 포식자, 풀과 초식동물, 꽃과 수분자 이의 시간이 엇갈리고 있다. 그 결과로 포식자는 먹이를 찾지 못하고, 꽃에서는 수분이 이뤄지지 않는다.


그런데 데이비드 패리어는 이런 자연의 피해와 그에 대한 생물들의 대응을 그려내는데 그저 묘사와 설명만 하지 않는다. 말하자면 비판의 소리만 드높이지도 않고, 희망만 노래하지도 않는다. 이러한 재앙을 이해하려 하고, 이에 대해 대응하는 생물을 연구하고, 또 다른 길을 모색하는 연구자들과 활동가들을 찾아다니고 이야기를 나눈다. 미생물로 만든 단백질 가루, 미생물 연료 전지와 생물반응기 역할을 동시에 할 수 있는 벽돌 ‘리빙브릭(living brick)’로 지은 건물, 폐기물로 지은 집, 바이오플라스틱, 고유지(commons)에 대한 새로운 인식과 활용 등등. 자연에서 배우고, 자연을 통해서 문제를 해결해나가고자 하는 원대한 꿈을 소개하고, 아직은 완벽하지는 않지만 조금씩 나아가는 성과들을 이야기한다. 사실은 바로 그게 희망이다.


이 책을 읽으며 우리의 미래는 어떻게 될까, 정말 궁금해졌다. 현재의 작가들이 한 해 한 명씩 원고를 제출하고, 100년이 지나(2114년) 봉인이 해제되는 노르웨이 미래도서관을 생각하면서 그때 이 세계는 어떻게 될까? 지금과 얼마나 비슷할까? 얼마나 다를까? 어떤 점에서 비슷하고, 어떤 점에서 달라졌을까? 사람들이 생각하는 방식, 살아가는 이유 같은 것은 어떻게 될까? 과연 우리는 잘 살고 있을까? 그리고 그건 많은 부분 이 책에 나오는 많은 절망을 어떻게 이해하고, 희망을 어떻게 이어나가느냐에 달려 있을 것 같단 생각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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