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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ENA Feb 20. 2021

마침내 책!

박균호, 《그래봤자 책, 그래도 책》


책을 읽으며 가슴이 뛸 때가 있다. 자주 있는 일은 아니다. 금방 떠오르는 기억으론 대학원 입시 준비할 즈음 읽었던 유홍준의 《나의 문화유산 답사기》가 그랬다. 뛰쳐나가고 싶었다. 박균호의 《그래봤자 책, 그래도 책》을 읽으면서도 그렇게 가슴이 뛰었다. 여기에 언급된 책 모두를 다 섭렵하고 싶은 욕망이 일었다. 책을 좋아하니까 책에 관한 책을 읽으면 늘 그럴 것 같지만, 책에 관한 책을 읽는 게 늘 좋은 느낌만을 주는 것은 아니다. 자랑하는 느낌이 과한 경우가 종종 있다. 또 너무 감상적인 경우에도 그렇게 좋은 기분을 주지 않는다. 하지만 《그래봤자 책, 그래도 책》은 그런 느낌을 주지 않는다. 그냥 가슴을 뛰게 한다.


책에 관한 책이고, 책을 쓰는 사람에 관한 책이지만 책의 줄거리를 늘어놓지는 않는다. 책의 내용이 어떤 의미를 지니는지에 대해 평가하지도 않는다. 대신 책 자체에 대해 이야기한다. 그 책이 겪은 일들, 그 책과 함께 한 저자의 경험을 이야기한다. 그런데 그게 정보이기도 하지만(귀하고 매우 재미있는 정보다), 또 묘하게 감동적이기도 하다. 내가 읽어본 책에 대해서는 그 책에 대해 다시 생각하게 하고, 읽어보지 못한 책에 대해서는 관심을 갖게 한다. 율리시스가 유명해진 이유도 그렇고, 소월의 《진달래꽃》에 얽힌 이야기도, 솔제니친에 관한 이야기도, 여러 출판사의 전집에 관한 이야기도, 나쓰메 소세끼의 작품에 관한 이야기도, 《샘터》의 창간과 집필진에 관한 이야기도, 평생을 고쳐 쓴 최인훈의 《광장》에 대해서도, <세월이 가면>이라는 노래가 탄생한 사연도, 《성문 종합 영어》의 송성문 선생에 관한 이야기도. 알고 있던 것도 없지는 않지만, 모두 흥미로운 책 뒷얘기면서 동시에 감동적인 사연들이기도 하다. 그걸 박균호는 잘 엮어내고 있다.


사실 책을 읽다 몇 번이나 서가를 왔다 갔다 했다. 내가 가진 책의 판본이 어떻게 되는지 확인하기 위해서다. 어떤 책의 가격이 얼마까지 치솟았다는 말에 혹하기도 했고, 대체로는 그냥 궁금했다(특히 신경림 시인의 《농무》와 《민요기행 1》이 그랬다). 딸이 옆에서 보며 하는 “갱지 아니에요?”라는 핀잔을 뒤로하고 먼지 날리는 책을 뒤적이며 추억에 잠기기도 했고, 그어놓은 밑줄을 다시 읽어보기도 했다(그 밑줄 때문에 내 책의 판본이 어떻든 가격은 제대로 받지 못할 게 분명하다). 또 몇 권은 인터넷 서점의 카트에 넣어두기도 했다. 매혹적인 책 얘기에 마음이 동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책은 독자로 하여금 또 다른 책으로 안내해 주고 또 다른 인연을 만들어준다.”는 말이 딱 그거다.


책은 그저 종이 쪼가리일 수도 있고, 넘쳐나는 정보의 홍수 속에서 뒤처진 매체일 수도 있다. 그래도 나는, 우리는 책을 읽는다. 그게 책이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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