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컷은 왜 필요한가?

후지타 고이치로의 『유감스러운 생물, 수컷』

by EN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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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컷의 불완전성(?)이야 과학자들을 비롯하여 여럿이 언급한 바 있다. 그게 남녀 평등과 어떤 관련이 있는지는 잘 이해가 되지 않지만, 과학적으로, 내지는 자연 현상적으로, 그리고 사회적으로도 수컷의 모자람은 많은 이들이 동의하는 것 같다. 사실 이런 걸 얘기할 수 있는 이유는 수컷, 혹은 남성 위주의 사회라서 그렇다. 여성의 모자람에 대한 걸 다룬 책이 나왔을 때의 반응을 생각해 보면 쉽게 알 수 있다. 그만큼 아직도 인간 세계는 아직까지도 ‘모자라다고 하는’ 남성 위주의 세상이다.


생물학적으로 수컷의 불완전성에 대해서는 여러 차원에서 다룰 수 있다. 후지타 고이치로는 주로 수컷 없이도 자손을 번식시킬 수 있거나, 암컷과 수컷을 왔다 갔다 하는 여러 생물들을 예로 들면서 이 논의를 이어가고 있다. 그 논의는 남성과 여성의 차이, 일부일처제의 한계에 대한 이야기, 나아가 지구상에서의 ‘인류’의 필요성에까지 이어진다. 말하자면 수컷의 한계에 대한 얘기는 결국은 인간의 한계, 혹은 그 위험성에 대한 얘기인 셈이다. 그러나 결론은 확 뒤바뀐다. 멸종을 피하기 위해 필요한 것이 바로 다양성인데, 그 다양성을 위해서는 ‘유감스러운 수컷’이 반드시 필요하다는 것이다. 즉, 생물학적으로 봐서는 없어도 되는 게 수컷인데, 그 수컷이 없으면 다양성의 차원에서 매우 큰 한계에 봉착하고 말 것이며, 그럼으로써 멸종의 대열에 합류할 가능성이 높으므로 수컷은 필요하다는 것이다.


앞의 논의도 맞고, 끝의 결론도 틀린 것은 아닌데, 그 연결이 아리송하단 느낌이다. 사실 이 두껍지 않은 책에서도 군데군데 조금씩 주요 흐름에서 벗어나는 이야기를 하곤 하는데, 결론을 읽고는 결국 이 이야기를 하기 위해서 그 이야기들을 할 필요가 있었나 싶다. 어차피 인간에서 수컷의 존재가 생긴 마당에, 한 동안은(그 한 동안은 꽤 긴 시간일 거다) 그 수컷이 사라질 까닭이 없는 데 굳이 수컷이 다양성을 위해서 필요하다고, 그것도 결론으로 이야기할 이유가 있을까 싶은 것이다.


오히려 후쿠오카 신이치가 『모자란 남자들』에서 다룬 것처럼 남성과 여성에 관하여 과학에서 밝힌(주로 분자생물학적인) 것을 중심으로, 생물 자체로 나아가고, 그 상황에서 마치는 것이 훨씬 설득력 있지 않았을까 싶다. 저자가 책에서 명시적으로 교훈을 반드시 얘기할 필요는 없다. 독자는 상황에 대한 이해만으로도 스스로 결론을 내린다.


*****

이 책에는 흥미롭게도 마스크 얘기가 나온다. COVID-19 이전에도 일본인이 마스크를 많이 쓰고 다녔다(그럼에도 지금 상황까지 이른 것은 어쩌면 아이러니하기도 하지만). 저자는 너무 청결에 강박적으로 신경쓴다는 것에 대해 비판하면서 이 얘기를 꺼내고 있다(지금이라면 이 내용을 넣었을 리가 없지만).

발췌해 보면 다음과 같다.


“일본 특유의 습관으로 ‘마스크 착용’이 있다. … (중략) … 한 방송 프로그램이 마스크를 쓰고 있는 100명에게 조사한 결과, 24명은 실제로 감기에 걸려 있었고 20명은 감기 예방을 위해, 나머지 56명은 감기와는 전혀 관계없이 마스크를 쓰고 있다는 결과가 나왔다.

(중략)

많은 사람이 마스크를 쓰고 거리를 누비는 일본 특유의 광경은 다른 나라 사람들이 보면 상당히 신기하고 이해가 되지 않는다고 한다. 외국에서는 의료 종사자조차도 마스크를 그다지 쓰지 않는다. 기껏해야 수술할 때 쓰는 정도로, 평소 마스크를 쓴다면 반대로 ‘이 사람은 뭔가 이상한 전염병에 걸렸나 보다’라는 의심을 받아 아무도 그 사람에게 접근하지 않는다.

(중략)

이처럼 청결, 소취, 본래의 모습 감추기를 당연하게 생각하는 현대의 일본 사회는 저마다의 개성 인정을 잊어버려서 ‘이질적인 것은 모두 배제하라’는 극단적으로 치우친 사상을 낳고 잇는 것은 아닐까 생각한다.”


물론 그렇기도 하지만, 상황에 따라 다르다는 것은 분명하다. 고집할 것을 고집해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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