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읽어본 피에 대해 쓴 책으로는 빌 헤이스의 《5리터》와 로즈 조지의 《5리터의 피》가 있다. 피에 관해서 우리가 알게 되어온 역사를 자신의 경험과 버무린 책들이었다. 그에 비하면 더글러스 스타의 《피의 역사》는 보다 본격적이다.
더글러스 스타가 집중하는 것은 수혈에 관한 것이다. 시작부터 순한 송아지의 피를 사람에게 수혈하는 장면부터 시작한다. 거의 만병통치약처럼 여겨졌던 방혈(혹은 사혈)의 시대 이후 급혈자와 수혈자를 직접 연결하여 피를 공급하는 장면에 이어 란트슈타이너에 의해 혈액형의 존재를 발견되는 이야기가 이어진다. 여기서부터 피에 관한 이야기는 보다 촘촘해진다.
혈액은 공기 중에 노출되면 굳어버린다. 이는 생명을 보호하는 현상으로 이 특성을 잃어버린 사람이 바로 혈우병 환자다. 그런데 이 성질은 수혈에 큰 장애였다. 그래서 급혈자의 동맥과 수혈자의 정맥을 바로 잇는 방식으로 수혈을 수행했던 것이다. 그러나 구연산나트륨(sodium citrate)의 농도를 조절하는 방식으로 피의 응고를 방지하는 방법을 알아낸 이후 피를 일정 시간 보존할 수 있게 되면서 본격적인 수혈의 시대가 열리게 되었다.
여기서 그치게 되면 수혈의 역사, 피의 역사는 밋밋한 역사로 그쳤을 것이다. 그러나 연구자들은 피를 성분별로 나눌 수 있다는 것을 알아내고, 그 부분적인 성분만으로도 충분히 사람을 살리거나 약을 만들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러면서 전쟁(1차, 2차 세계대전)에서 많은 사람을 살리는 역할을 하게 되었다. 그러나 더글러스 스타가 더 관심을 갖는 것은 그 이후의 역사다. 바로 '혈액 산업'이라고 불리는 분야의 역사다.
우리나라는 헌혈을 자원봉사에 의존하고 있지만, 다른 나라에서는 매혈(實面)이 중요한 벌이 수단이 되는 경우가 있었고, 지금도 그렇다. 자발적인 헌혈에 의한 피의 공급으로는 부족한 경우, 안정적인 수급을 위해서 피를 사게 된다. 그렇게 사들인 피를 성분별로 분석하여 제약회사에 팔게 되는데, 이는 꽤 수익이 남는 장사라고 한다. 과연 피를 상품으로 봐야하는지, 서비스로 봐야 하는지는 오래전에도 재판에서 다뤄졌던 문제이지만 여전한 문제이기도 하다.
더글러스 스타는 이런 혈액 산업에서의 추문을 이야기한다. 바로 오염된 혈액, 처음에는 간염이었고, 나중은 에이즈였다. 최근의 수혈의 역사는 바로 혈액을 가지고 어떻게 수익을 창출하는지와 병원체를 포함한 혈액을 어떻게 배제할지 두 방향을 전개되었다고 할 수 있다. 그런데 에이즈와 관련해서는 당시(80년대) 혈액 산업에 종사하는 이들의 무지와 부주의가 어마어마한 피해로 남았다는 점은 그 두 방향이 절대 분리되어서는 안 된다는 것을 말해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