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종이 운동 부족으로 당뇨에 걸렸다고? 그게 아니야!

이지환, 《세종의 허리 가우디의 뼈》

by EN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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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종이 비만이었던 것은 이미 공공연하다(그래서 지폐 등에 그려진 세종의 모습은 전혀 엉뚱한 셈이다). 당뇨였다는 얘기도 여기저기서 읽었다. 워낙 글읽기만 좋아했고, 움직이는 걸 싫어해서 비만해졌고 당뇨에 이르렀다, 고 이야기는 그렇게 이어진다. 정형외과 의사 이지환은 기록(여기선 《조선왕조실록》이 되겠다)을 통해서 그와 같은 진단이 과연 옳은지 추적에 나선다.


세종은 온갖 통증을 달고 살았다. 눈병(책을 많이 읽어서 그렇다고, 세간이 전해지지만 그 연관성에 대한 얘기는 기록에 없다), 허리 통증, 방광염 증상, 무릎 통증, 목마름 증상, 살빠짐 증상 등등. 심각했다. “허리와 등이 굳고 꼿꼿하여 굽혔다 폈다 하기조차 어렵다”고 할 정도였다. 왕의 통증이었으니 모두 심상찮게 여겼을 것이다. 이지환은 이 기록들과 현대의 진단 기법을 동원해서 당뇨를 비롯한 기존의 진단명들을 하나씩 지워간다. 그리고 남은 것은, 바로 ‘강직성 척추염(ankylosing spondylitis)’다. 23세 전후에 생긴 팔다리 통증과 1년 후의 무릎 통증, 굳어가는 허리, 그리고 40대부터 심해진 눈병(강직성 척추염의 가장 흔한 합병증인 포도막염이라 보고 있다). 이 모든 것이 강직성 척추염을 가리킨다. 그렇다면 세종이 말타기 등 운동을 하기 싫어했던 것이 아니라, 할 수가 없었던 것이다. 그런 고통 속에서 한글 창제를 비롯한 숱한 업적을 남겼다. 세종은 임금으로 위대했지만, 개인적으론 측은하단 생각도 든다.


이렇게 과거 인물들의 질병을 추적해나가고 있다. 가우디가 뼈를 닮은 집을 지은 이유를 그의 관절염에서 찾는데, 그중에서도 ‘소아기 특발성 관절염’을 지목하고 있다. 도스토엡스키의 고통과 함께 창작의 원천이기도 했던 간질(요새는 뇌전증이라고 하는데, 여기서는 그냥 간질이라고만 하고 있다)에 대해서 이야기한다. 발작을 유도하는 자극에 그대로 노출되었던 대문호의 삶을 이해하게 된다. 모차르트의 죽음에 이르게 한 원인에 대해서도 추적한다. 레퀴엠을 의뢰한 귀족의 저주라든가, 살리에르의 질투심이야 세간의 호기심에 부응한 영화의 허구라는 것은 잘 알고 있다. 매독, 혹은 기생충 커틀릿 때문이라는 얘기도 있지만(진지한 논문으로 주장했다) 여러 증거가 부인한다. 저자는 연쇄구균 감염으로 인한 사구체신염, 그리고 이어진 급격한 부종을 지목한다(개인적으로 이 진단을 읽으며 아득했다).


화가 로트레크의 콤플렉스였던 작은 키(아예 로트레크 증후군이라 불린다)는 쇄골두개 이형성증이라는 유전병 때문이며, 말년의 니체를 망가뜨린 병은 아마도 뇌종양이라고 본다. 백내장이 인상파의 선구자 모네의 화풍을 완전히 바꾸어놓았다는 것은 잘 알려져 있고, 그래서 많은 화가를 추상화로 이끌었다고 하지만, 그게 모네의 의도는 아니었다는 것을 밝히고 있다. 프리다 칼로의 메마른 다리의 원인이 된 것은 폴리오바이러스(소아마비)였지만, 그리고 처참한 교통사고로 인해 온몸이 망가졌지만 그녀가 초인적인 의지로 그려낸 그림은 삶의 처절함과 동시에 고귀함을 동시에 느끼게 한다. 마리 퀴리는 수십 년간 방사선을 연구하다 백혈병으로, 레게 음악의 선구자 밥 말리는 발 끝에 작은 상처처럼 생기기 시작한 흑색종으로 죽게 된다.


기록을 통해 과거 인물의 질병을 추적하는 일은 그렇게 녹록한 일만은 아니다. 현대의 진단 도구를 통한다면 금방 알아낼 수 있는 것을 단편적인 기록을 통해서 추측할 뿐이다. 그런데 그런 작업을 통해서 질병을 정확히 추론해내고, 그리고 그것이 그의 삶에, 나아가 예술과 과학 등에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를 생각해내는 것은 매력적인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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